친구가 지독한 직장내 괴롭힘에 몇 달간 시달리다 폭발했다. 그동안 친구가 겪는 괴로움을 하나부터 열까지 봐온 터라 그 마음이 너무 이해된다. 친구 전에도 여러 명의 피해자가 있었고, 친구는 법적 대응을 진지하게 알아보고 있다. 친구가 직장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그 회사는 내가 1년 전까지 다녔던 그 회사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이었다면 너도 피해입을 수 있으니 잘 생각해보라는 말을 먼저 했을 것 같다. 지금도 그 마음이 조금은 있지만 이제는 터뜨려야할 때 터뜨리지 않으면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터뜨리라고, 할 수 있는 걸 다 하라고 응원해주고 있다.


회사에 다닐 때 나는 부당함을 조용히 참을 만큼의 참을성이 있지 않았지만, 그걸 뒷일 생각 않고 터뜨릴 정도의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터뜨리지 못하거나, 터뜨렸어도 다 쏟아내고 끝까지 가보질 못했다. 지금이야 다 지난 과거라 많이 생각이 나는 건 아니지만 가끔 떠올리면 그때 터뜨릴 걸, 더 쏟아낼 걸, 끝까지 해볼 걸 하는 후회가 남지 터뜨린 것에 대한 후회가 남지는 않았다.


많은 직장에서 부당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이 바닥이 좁다'는 말로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 한다. 하지만 나와 보면 안다. '이 바닥이 좁다'는 말 하는 사람치고 나에게 영향줄 수 있는 사람 없다는 것. 그리고 그 말이 맞다해도 이 바닥이 좁다는 건 나도 그 사람을(혹은 그 회사를) 작정하고 물어뜯으면 그 사람(그 회사)도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걸 의미한다. 인생은 길고, 세상은 넓다. 이 일 아니어도 할 일은 많고 이 회사나 이 업계가 아니어도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많다. 저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물어보자, 그래서 그놈의 평판 때문에 매장 당한 사람이 대체 누구냐고. 대부분의 경우에 사실 그런 사람은 없다. 대다수의 회사고 업계에서는 평판이 나쁜 사람은 커녕 법적 처벌 받은 성폭력범도 뻔뻔하게 다니는 게 현실이다.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나에게 있다. 나도 그 두려움 탓에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몇 개월 동안 회사를 그만두지 못했는데, 막상 해보고 나니 내가 두려워 했던 그 어떤 일도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더 좋은 새로운 일들이 많이 생겨났다. 회사에 다닐 때는 금요일 퇴근 때도 월요일에 출근할 생각에 정말 불행했는데(퇴근길에 버스 안에서 운 적도 있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의 금요일만큼이나 내 월요일이 행복해졌다.


그러고보니 난생 처음 정규직으로 다녔던 그 회사에서 퇴사한지도 1년이 지났구나. 퇴사 후 회사 다닐 때보다 적게, 즐겁게 일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 일을 적극적으로 구하지 않았는데도 항상 나에게 먼저 일하자고 손 내미는 사람들이 적절한 시기에 나타났다. (나타나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다. 일은 내가 찾아 하면 되는 거니까.)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일을 잘한다, 계속 같이 일하고 싶다는 칭찬만 듣는다. 단기 계약직으로 일한 곳의 상사는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연락 와서 만나자고 한다. 계약 기간을 채우고 내가 사업을 할 계획이라 더는 일을 못하겠다고 했을 때, 그곳의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이라면 뭐든 잘할 거라고 도울 게 있으면 알려주라고 했었다. 이전 회사를 마냥 참고 계속 다녔다면. 그런 사람들도, 그런 기회도 못 만났을 거고 난 아직도 괴롭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겠지. 


퇴사 후에 가장 두려웠던 건, 내가 퇴사를 후회하게 되는 거였다.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 갈 곳도 정해놓지 않고 적당한 월급을 주는 정규직을 내 발로 걷어차는 게 맞는 걸까 수 개월동안 고민했다. 그래서 퇴사를 후회하지 않으려고 살았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는 꽤 성공적이다. 퇴사 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하루도 퇴사를 후회한 적이 없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거란 보장은 없지만, 앞으로도 그 회사를 퇴사한 걸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야지. 내 미래를 회사에 위탁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 좀 피곤하지만 내가 자유롭게 살려면 어쩔 수 없는 반대급부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피곤하고 불안하게 살테지만 더 행복해졌기에 그 정도 피곤과 불안은 감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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