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에 남자친구랑 친구랑 셋이 술을 마셨다. 1차는 남자친구가, 2차는 친구가 샀다. 이렇게만 쓰면 내가 좀 기생충 같아보이니 지난 번에 셋이 술 마셨을 땐 내가 샀다는 점을 굳이 언급하고 싶다. 여튼 지난 번에 내가 샀더라도 내 남친이 같이 놀았는데 친구가 술을 산다는 건 고마운 일이었다. 그래서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친구에게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메론 선물 세트를 보냈다. 친구가 이게 뭐냐고 해서 추석이니 어머니랑 맛있게 먹으라고 했다. 친구가 왜 하필 메론이냐고 해서 내가 좋아하니까 보낸다고 했다. 추석이 지나고 친구는 메론 인증샷을 보내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메론이다. 참외도 좋아하지만 참외는 뭔가 너무 딱딱한 느낌이 좀 있는데 메론은 부드럽기까지해서 좋다. 맛 없는 메론은 말 그대로 무(無)맛이지만, 맛있는 메론은 천상의 달콤함을 선물해준다. 요즘 먹은 메론들은 다 달콤한 메론이었다. 친구에게 간 메론도 달콤한 메론이었길 바란다. 메론은 과일로 먹는 게 제일 맛있다. 내가 좋아하는 모스 버거에서는 메론 소다를 팔았는데 너무 인조스러운 색과 맛이라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나는 가끔 문방구 앞 불량식품 먹는 기분으로 메론 소다를 먹지만 솔직히 맛은 잘 모르겠다. 그냥 모스버거에만 있으니까 모스버거에 왔으면 이거 먹어야지 하는 느낌으로 선택한다. 메론빵 같은 것도 메론이라는 글자에 눈이 돌아가 사곤 하는데 만족한 적은 없다. 가끔 메론이 올라간 타르트나 뭐 이런 것도 보긴 하는데 솔직히 별 맛이 있는 것 같진 않다. 메론은 그냥 메론대로 먹는 게 좋다.


 진짜 맛있던 메론은 노량진 술집 '오감만족'에서 먹던 메론이다. 여긴 극강의 가성비+맛있는 안주로 내가 한동안 오픈 시간에 맞추어 가던 술집인데, 술자리 분위기들이 무르익으면 주인장께서 잘 익은 메론을 테이블마다 서비스로 돌려주곤 했다. 여기 메론이 진짜 맛있었어서 기억에 남아있다.


 아무튼 추석 선물은 회사 다니면서 받아만 봤지 줘본 적이 없는데 친구에게 추석 선물을 주는 기분이 참 좋았다. 술값 중에 나와 내 남자친구가 먹은 분을 보내줄까 하다가 선물을 보냈는데 이게 서로에게 더 좋고 따뜻한 선택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돈을 잘 벌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주고 싶은 선물을 마음껏 줄 수 있는 넉넉한 주머니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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