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는 친구 Y의 초대로 Y의 집에 놀러갔다.

Y 부모님의 환대를 받으며 소, 돼지, 오리 고기를 맛있게 구워먹었다. 맥주도 잔뜩 마셨다. 3시간이 넘는 프랑스식 식사. 나중에 온 Y의 귀여운 동생 S와 Y는 롤드컵을 열심히 봤고 나는 옆에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같이 롤드컵을 봤는데 재미있었다.

부모님이 계신 친구 집에 놀러가는 건 오랜만이었는데, 마치 하이킥의 범이가 된 것처럼 재밌고 편하게 놀다왔다. Y 부모님은 참 좋은 분들이셨고 Y 가족이 머리를 맞대 하나하나 직접 인테리어 했다는 새 집도 참 예뻤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공간에서 갖는 시간이 행복했다.  

나는 내가 낯을 꽤 가리고 어른들을 어려워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하는데 Y네 집에서는 그런 생각이 안들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단지 몇 번 봤을 뿐인 Y의 부모님과 동생은 그냥 오래 전부터 잘 알아온 사람들처럼 편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내 친구와 내 친구의 가족이 좋은 사람들이어서겠지.

Y네 집에서 나올 땐 비가 왔는데, 내가 옷을 얇게 입고 와서 추울 것 같다며 Y가 바람막이를 빌려주었다. 자기가 집에 도로 가져와야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바람막이를 빌려준 Y의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이 글을 볼 것 같아 부끄럽지만. 모른 척 하거라.)  

Y네 집에 다음에 또 가게 된다면 Y의 부모님이 더 좋아하실만한 걸 들고가야겠다.



토요일에 Y네 집에서 자고 일요일에 일어나서 Y와 함께 글쓰기 모임의 오프라인 모임에 갔다. 글쓰기 모임은 나와 남자친구가 우리의 친구들을 모아 만든 온라인 모임이다. 한 달에 한 번 오프라인 모임을 하는데 오늘이 그 날이었다.

오늘은 나도 처음 보는 친구의 친구가 와서 혹시 소외되기라도 할까봐 좀 신경이 쓰였는데 잘 적응한 것 같아 다행이었다.

쭈뼛쭈뼛 시작한 모임이 다같이 너무 웃어서 광대가 아프다고 하면서 헤어지는 것으로 끝났다.

앞서 두 번의 모임도 그랬지만 오늘도 정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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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들과 왁자지껄 웃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시간이 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그 순간이 즐거우면서도 동시에 이 시간이 신기루처럼 느껴진다.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이런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어도 될까? 하는 마음이 든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내 분수에 맞지 않는 것 같고 곧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불안할 때가 있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니가 좋은 사람이니까 주위에 좋은 친구들이 있는 거야 하고 말해주겠지만 난 사실 그냥 운이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이라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게 아니듯이. 그냥 난 운이 좋은 것 같다.

내 남자친구는 인간적으로 친구로서나 연인으로서나 나보다 좋은 사람인데 친구가 몇 명 없다. 그래서 내가 친구 많은 걸 신기해 하면서 좀 부러워하기도 하고 그런다. 처음에는 남자친구가 왜 친구가 없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내가 친구가 많은 것에 이유가 없듯이 남자친구가 친구가 없는 데도 이유가 없다. 나랑 학창시절부터 알았으면 나와 내 친구들과 좋은 친구가 돼서 잘 지냈을 것 같은데, 학창시절에 나나 내 친구들 같은 사람들을 못 만난 탓이겠지. 그래도 이젠 나나 내 친구들이랑 친구를 하면 되니까 괜찮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운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들 자기의 운이 있다. 나는 인생에서 어떤 카드는 꽝을 골랐고 또 어떤 카드는 보통을 골랐고 어떤 카드는 에이스를 골랐다. 오늘 나는 내 친구들이 내가 뽑은 몇 가지 에이스 카드 중에 한 장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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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 대해 부쩍 생각하고 또 쓰게 되는 이유는 15년된 친구들과 꽤 멀어진 일 때문이다. 사실 갑작스러운 건 아니고 최근 몇 년동안 서서히 진행돼온 일이다. 알지만 애써 외면해왔는데 뭔가 자각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와서, 한동안 마음이 참 씁쓸했다. 여러 번 그 친구들에 대한 꿈을 꿨을 정도로. 많은 부분이 내 선택인데도 함께 한 오랜 시간과 추억을 생각하면 뭔가 마음이 허전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인연이 다했음을 인정해야겠지.


그리고 지난 주에는 오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한때는 내가 참 좋아했고 날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그러니까 참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친구였는데, 여러 사정이 있어 오랜만에 만났다. 친구는 예전과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그 모습. 하지만 친구에 대한 내 생각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같이 있는 동안 나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고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빨리 집에 가려했는데 친구가 붙잡아서 더 앉아있다 왔다. 집에 오는 길에 앞으로 한 몇 년간은 이 친구를 다시 볼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친구도 다시 연락이 없었다.


알 수 없는 관계, 알 수 없는 마음. 그래도 그 안에서도 한결 같은 마음과 한결 같은 관계, 그리고 새로운 관계들이 있다는 사실이 내게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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