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엉덩이가 뭔가 따끔따끔해서 보니, 왕 여드름 같은 게 빨갛게 나 있었다. 가운데는 날 짜달라는 듯이 하얀 고름 주머니가 생겨 있었다. 

엉덩이 종기 원인과 집에서 치료하는 방법

엉덩이 종기는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현대인에게 불쑥 찾아와 고통을 안겨주곤 합니다. 사실 종기는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우리나라 역대 왕들의 역사서에도 여러 차례 기록되었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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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에 맺힌 고름까지 딱 이렇게 생겼었음...

토요일인데 이미 웬만한 병원은 다 닫았을 시간이라 병원 가기도 애매했고, 이때까진 많이 아프지도 않아서 '왕 여드름인가?'하고 안일하게 생각하며 손을 씻고 짠 다음, 포비돈을 발라놨었다.

그런데 다음날도 계속 아팠다. 앉으면 불편할 정도로. ㅜ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종기인 것 같았다. 엄마한테 말하니 이런 것도 아빠를 닮냐고; 아빠도 맨날 엉덩이에 종기가 난다며...

찾아보니 면역력이 떨어지면 원래 피부에 있던 균이 증식하면서 생긴다고 했다. 요즘 수면 패턴이 망가져서 지난 주에는 몇 년 만에 밤을 샜고, 하루 3시간씩 잔 날도 있고 그러다 보니 생긴 모양이었다.

참 신기한 게, 나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무리하면 바로 몸에 병이 생긴다. 사람마다 약한 부분이 다르고 면역력이 떨어지면 그 부분에 문제가 생긴다고 하는데, 나는 피부가 약하다.

어릴 때는 선천적으로 태열성 습진을 앓아 발이 온전하지 않았었고, 성인이 돼서는 두드러기를 앓고 있다. 종기라니...또 피부가 말썽이네.

일요일 밤에도 여전히 아파서, 내일은 병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좀만 아파도 병원에 간다. 복싱하다 다쳐서 무릎에 상처가 났는데 복싱 선생님이 병원 안가고 밴드 붙이면 된다고 밴드 붙여줬는데 무릎에 튀어나온 상처가 생긴 후로...아프면 꼭 바로 병원에 가야한다는 교훈을 얻음.

여튼 어느 병원을 가야할지 모르겠어서 열심히 검색을 했다. 처음 내가 떠올린 피부과 외에 (항문)외과를 가라는 의견이 꽤 있었다. 산부인과에 가도 짜준다는데 왠지 안 맞는 것 같아서 패스. 피부과와 외과 중 어디를 갈지, 아니면 고약이라는 게 있다는데 그냥 병원 가지 말고 약국에 갈지 여러 글을 읽으면서 고민했다.


피부과 갈까?

  • 종기는 왕 여드름 같이 생겼으니 왠지 피부과 담당인 것 같다.
  • 그러나 피부 질환을 진지하게 봐주는 피부과를 동네에서 찾기 힘듦.
  • 전문의가 있는 동네 피부과는 대기가 김. 최소 1시간.
  • 지난 번에 남자친구가 비슷한 질환으로 동네 피부과에 갔는데 1시간 기다리고 환부를 보지도 않는 노룩 진료를 받음. 난 내 종기가 심각한지 의사가 봐줬으면 좋겠는데...왠지 피부과 의사들은 바빠서 잘 안 봐줄 것 같았다.


(항문) 외과 갈까?

  • 째거나 짜는 걸 잘할 것 같다는 믿음...외과 의사라면 더 어려운 수술도 할 줄 아실 테니까.
  • 어제보다 덜 아파서 항생제나 연고만 처방받거나 염증주사 같은 것만 맞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의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자가진단ㅋㅋㅋ)...왠지 외과 가면 꼭 째야할 것만 같은 불안함.
  • 평생 정형외과 말고 다른 외과를 가본 적이 없어서 왠지 무서움.


약국만 가도 되지 않을까?

  • 고약 붙이거나 항생제 스프레이 뿌리고 항생제 먹으면 된다던데...
  • 하지만 고약은 먹히는 경우가 있고 아닌 경우가 있다는데 내가 어떤 경우인지 알 수 없음. 약사 선생님한테 종기 보여줄 수 없음.
  • 무릎에 상처 났을 때 약국 갔는데 약사가 병원 가라고 안해줌...그래서 안갔다가 평생 남는 상처 생김. 또 그러면 어떡하지?
  • 병원가자.


이런 의식의 흐름으로 고민을 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일이 많아서 일이 늦게 끝나버렸다. 일 끝나고 나니 친구들과의 약속 시간까지 여유가 없었다.

피부과 대기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항문외과'를 검색해 시술 내용에 '양성 종양'이 있고, 후기가 좋아보이는 곳에 가게 되었다.

항문외과는 다행히 휴일 전날인데도 대기자가 없었다. 문진표에 종기는 없어서, '기타'에 체크하고 어디가 아파서 왔냐는 간호사 선생님께 "엉덩이에 종기가 나서요..."라고 말을 했다. 

진료실 안에 환자가 있어서, 조금 대기를 해야 했다. 대기하면서 둘러본 벽에는 원장 선생님의 이력이 붙어있었다. 첫 줄에 쓰인 '서울대 의학과 졸업'이 불안한 나를 좀 안심시켰다.

짧은 대기 후 진료실에 들어갔다. 혹시 수술을 해야한다고 하면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으니(친구들이랑 노는 약속;) 일단 약만 먹고 며칠 뒤에 하면 안되겠냐고 말할 요량으로 앉았다.

"엉덩이에 종기가 났어요."
"엉덩이 맞죠? 항문 아니고?"
"(아 여기 항문외과지...근데 항문에도 종기가 나나?) 네. 엉덩이요."
"간호사 선생님 모셔서 환부 좀 볼게요."

의사 선생님이 간호사 선생님을 부르자 베테랑처럼 보이는 나이든 간호사 선생님이 나타났다. 나를 베드에 엎드리게 하고, 바지를 내리게 한 후 종기만 보이도록 초록 천을 덮어주셨다.

종기를 본 의사 선생님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이미 인터넷에서 다 보고 간 내용이었지만(종기 글 엄청 보고 감) 귀찮은 기색 없는 친절한 설명이 좀 감동적이었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은 아래와 같았다.

1. 단순한 종기일 수 있는데, 이런 경우 고름을 짜고 항생제 좀 먹으면 낫는다. 고름을 짜지 않으면 항생제가 잘 듣지 않아서, 짜고 항생제를 먹는 게 좋다.

2. 한선염일 수도 있다. 이 경우도 똑같이 고름을 짜고 항생제를 먹으면 되는데, 한선염이라면 같은 부위에 계속 재발할 위험이 있다.

3. 표피낭종일 수 있다. 이 경우는 고름을 짜면 막이 나온다.

"수술실로 가시면 국소 마취한 후 고름을 짜드릴게요."
"많이...아픈가요?"
내 나이 3x세...여전히 주사가 무서운 나이...;;

"마취할 때만 좀 아파요. 괜찮아요."
"네에...(항생제만 받고 싶었는데 뭔가 의사 선생님 말대로 해야 빨리 나을 것 같아서 운명을 받아들임. ㅠㅠ)"

외과답게 내가 들어간 수술실은 아주 본격적인, 의학 드라마에서나 보던 수술실이었다. 아까의 나이 든 간호사 선생님과 젊은 간호사 선생님 두 분이 들어와서 처치(?) 준비를 해주셨다. 나는 수술대 위에 엎드리고, 한쪽 팔을 젤이 묻은 철판 위에 올렸다. 너무 본격적인 느낌이라 두려움이 커졌다. 간호사 선생님께 아까와 같은 질문을 하게 되었다.

"저...많이 아픈가요?"
"마취할 때만 좀 아파요. 근데 잠깐 아프고 낫는 게 훨씬 좋겠죠?"

젊은 간호사 선생님이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는데, 그 말투에서 오히려 안정감을 느꼈다. 이 분에게는 너무나 일상인 것 같은 그 사무적인 느낌.

이윽고 의사 선생님이 들어와서, 마취 주사를 놓겠다고 했다.

"마취할건데, 좀 아파요."
'좀'이라는 단어에서 희망을 찾음. 조금 아프니까 좀이라고 하셨겠지...?

곧 마취 주사가 놔졌다. 처음 한 방은 참을 만했다. 의사 선생님은 "잘 참으시네요"라고 나를 칭찬해주셨다.

근데 뒤이어 놔주신 두 방, 세 방째는 예상하지 못한 고통이었다. 나도 모르게 "아~"하는 신음이 나왔다. 두번째는 한 방만 놓는 줄 알아서 대비가 안됐고, 세번째는 대체 몇 방을 더 놓으시는 거지 하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에 아팠다. 다행히 세 방으로 끝났지만.

주사를 맞은 후에는 아픔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이 고름을 짜고, 환부에 거즈를 붙여주셨다.

"고름도 별로 안 나오고, 막도 없었어요. 수요일에 한 번 더 봐야겠는데 오실 수 있으신가요? 거즈 떼지 말고 그대로 오셔야 돼요."

"네, 올 수 있어요. 근데 거즈 안 떼면 씻을 땐 어떻게 하죠?"

"방수 밴드 붙이고 씻은 후에 방수 밴드를 떼 주세요."

1층의 약국에서 처방받은 항생제와 방수 밴드를 샀다. 그리고 약속 장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는 길에 마취가 풀린 것인지 병원에 가기 전보다 엉덩이가 더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심각한 표정으로 지하철역 앞을 지나가는데 스티커 붙이라는 유니세프 봉사자가 나한테 스티커를 붙이랬다가 내 표정을 보더니 혼자 빵 터졌다...ㅂㄷㅂㄷ

그 후로도 한 1시간 정도는 아팠는데, 친구들이랑 놀다 보니 어느덧 아픔이 사라져 있었다.

앞으로의 경과는 봐야 알겠지만 일단은 안 아프다. 야호!


약 열심히 챙겨 먹고 종기 다 나으면 덧붙여 쓰겠음...여러분 일찍 일찍 자고 면역력 떨어지지 않게 잘 관리합시다...! (라고 오전 2:40에 쓰고 있다.)

종기가 나서 어떻게 할지 고민하시는 분들과 또 엉덩이에 종기가 났지만 이 모든 과정을 까먹었을 미래의 나를 위해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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