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의 뇌구조라는 마광수가 자기 얘기를 쓴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마광수라는 이름을 보고 집어들게된 책이다. 나에게 있어 마광수의 책은 욕하면서 보는 막장드라마다.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쉽게 덮을 수 없다. 솔직하게 말하면, 욕하려고 읽는다는 이야기다.
마광수라는 노친네는 아주 스스로를 프리섹스의 화신으로 설정하고, 자신을 현대인 특히 여성의 성적 욕망 해방에 큰 업적을 가진 순교자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마광수의 대표작이자 최고의 문제작인 즐거운 사라를 아직 읽지 못하고 그의 다른 단편집인 '발랄한 라라'와 '마광수의 뇌구조'만 보고 그를 평가하기는 좀 미안한 감이 있지만, 내 생각에 그는 순교자가 아니다.
그는 제 잘난 맛에 사는 전형적인 '천재 예술가' 스타일이다. 천재 예술가가 아니고, 천재 예술가 스타일이다. 그는 자신이 남과 다르기 때문에 자신을 천재적이라 믿는 사춘기적 망상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인간들은 주위를 조금만 둘러봐도 한 트럭도 넘게 존재하고, 마광수 시대에도 이런 인간이 많았다. 예를 들어 조영남 같은 부류. 뭐 요새는 말할 것도 없이 더 하다. 가끔 일베나 소라넷 같은 곳에 이상한 행위를 한 후 자랑하듯 올리는 또라이들이 이런 마광수적 기질을 가진 이들인데, 걔네가 마광수보다 못한 건 마광수보다 가방끈이 길지 못하거나 지들의 똘끼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다는 것 정도다.
마광수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마광수보다 멍청하며 쓸 데 없는 윤리의식에 집착했던 사회 지도층(?)에 의해 떴다. 단지 그것뿐. 2013년의 내가 읽기엔 마광수의 글은 탁월하게 창의적이지도, 파격적이지도, 천재적이지도 않다.
그는 자신이 여성의 욕망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과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가 볼 땐 머릿속이 온통 섹스로 가득찬 중2수준의 뇌구조를 가진 섹스 집착 노친네일 뿐이다. 자기 머릿속이 섹스로 가득 차 있으니 남들도 그러리라 생각하겠지. 여성의 욕망을 잘 이해하긴 개뿔. 그 자신은 굉장히 남성중심적이고 마초적이고 가부장적이다.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해 무책임한 태도(이것이, 천재예술가 스타일 망상꾼들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가 자신이 가부장적이지 않고 열려있는 사람이라는 증거라도 되는 줄 안다.
그래놓고 페미니스트들조차 '즐거운 사라' 사건에 있어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며 욕하고 있다. 물론 시대의 경직성이 그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던 것은 매우 촌스러운 일이지만, 페미니스트들이 그 촌스러운 흐름에 동참했던 것은 그 시대 특유의, 자유에 대한 인식 부족 보다는 단지 그의 글이 싫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만, 자신이 지지하는 의견의 표현의 자유는 옹호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자 한다. 페미니스트들이 볼테르의 말을 상기해 마광수의 편을 들어주었다면 좋았겠지만, "내 글 너네한테 도움되는 글인데 왜 내 편 안드냐!"하는 마광수의 반응은 틀렸다.
그의 소설 자체는 파격이고 다수의 공감이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기 보다, 지금보다 훨씬 성적인 매체를 광범위하고 쉽게 즐길 수 없었던 시대에나 주목받을 수 있었던 자기만족적 글쓰기에 불과하다. 그의 글들이 있어야할 곳은 지금으로 치면 개인 블로그 정돈데, 뭐 블로그에 대학교수라는 신분을 밝혀놨다면 좀 인기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새로 치면 마광수 같은 인간은 발에 치일만큼 널렸고(예전에도 널렸을 것이다. 그들이 인터넷처럼 자신을 드러낼 곳을 갖지 못했을 뿐이겠지.) 그가 그런 사람들과 다른 건 대학 국문과 교수라는 지위로 책을 출판할, 즉 자신을 사회에 드러낼 기회를 가졌을 뿐이라는 것 정도다.
그의 글에서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는 단지 자신이 애정하는 것만을 애정한다.
단 한 가지, 그에게서도 괜찮은 구석을 찾아본다면, 책임질 일을 저질러 놓고 나몰라라하는 쓰레기보다는 애초에 나는 책임 안 질거다 하고 선전포고 해놓는 쓰레기가 그나마 낫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아무튼 예전엔 어떤 은퇴한 여배우, 서 무슨 숙이었던 것 같은데, 그 여자가 나는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어쩌는 섹스 자서전을 써서 난리가 났던 것도 그렇고, 마광수도 그렇고 지금 보면 별 것도 아닌 성적 자극에도 과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그 여배우가 TV에 기자회견하는 모습이 연일 나오는 것을 보면서, 당시 초등학생 정도였던 내가 엄마한테 포르노그라피가 뭐냐고 물었던 게 기억난다. 시대의 촌스러움이었는지, 마광수나 그 여배우가 갖는 지위의 탓인지 조금 헷갈리기는 하지만, 요새야 뭐 소라넷이나 디씨같은 인터넷 사이트만 가봐도 마광수보다 훨씬 더 또라이들이 넘쳐난다.
음 하지만 나나 마광수나 하루키의 섹스담론은 공통적으로 싫어한다. 마광수는 섹스를 즐겁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닌 허무의 극복을 위한 수단으로 묘사한다는 이유로 하루키를 싫어하고, 난 하루키에게서도 남성중심적 시선의 폭력성을 느끼기 때문에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루키가 젊은 남자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은 건 하루키의 성 담론이 마광수의 그것보단 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반증일 것이다. 물론, 많은 여자들 또한 하루키를 좋아하는 걸 보면 나 또한 남성중심적 시각에 의한 전형적인 여성상에 다른 여자들보다 훨씬 민감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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