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광주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갔었다
다른 친구와 셋이 친구네 학교 앞 칵테일 바에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었다
시험이 끝난 대학교 앞은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칵테일 바 바텐더들이 한복을 입고 있고, 손님은 해리포터 복장을 하고 있어서 뭐지 하다가 할로윈이구나 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한참 수다를 떨고 있는데 남자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난리라고 하는데 난 막 코스튬 같은 게 멋있거나 해서 난리라는 줄 알고 한가롭게 오우 사진기자 갔나요 했는데(남친 사진기자임)
갑자기 압사 사고라구...

같이 있던 친구들한테 말하니까 친구들도 핸드폰 꺼내서 보기 시작했는데 단톡에 막 심폐소생 영상이 돌고...와...말로 다 할 수 없는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칵테일 바에서 친구들이랑 셋 다 뉴스보고 너무 충격받아서 말을 못 잇다가 술 마실 기분이 안 들어서 우리도 그만 들어가자고 하고 친구네집으로 갔다 셋이 집에 가서 내내 뉴스를 보고 같은 말만 반복했다...
이게 말이 되냐고...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그리고 걱정이 엄청 됐다...나도 이제 30대라 이 나이에 할로윈 파티에 갈 정도로 인싸인 친구는 떠오르지 않았는데 친구 동생들이나 사촌동생이나 내가 아는 20대 초중반 동생들이 걱정됐다...정말 무탈하길 기원했다...자고 일어났는데 부고가 날아오지 않기를 바라며...

친구들과 뉴스를 보다가 다른 얘기를 일부러 하다 겨우 잠이 들어 세 시간쯤 자고 일어났다
사망자는 어느덧 150명이 넘어있는데 정말 실감이 안났다...이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거였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질서정연하고 통제에 잘 따르는 사람들이 어딨다고??? 대체 왜??? 어디 불이 난 것도 아니고 건물이 무너진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사람들 사이에 끼어 죽었다는 게 너무 충격적이었다...

살면서 출퇴근 시간 9호선 지하철을 여러 번 타며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에 명동을 걸으며
또 여러 콘서트 스탠딩석에서
너무 가득찬 사람들 사이에서 내 의지로 못 움직이고 그저 군중의 일부로 떠밀려 다닌 경험이 여러 번 있지만 그러다 진짜 죽을 수 있다고는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었는데 그런 일이 발생한 게 정말 충격이었다 나도 20대 때는 몇 번 놀러 가봤던 이태원이라 더 그랬다...

너무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든 책임 소재를 찾으려 하지만
구급차 옆에서 노래 부른 사람들을 욕하고, 초기에 문을 열어주지 않은 가게를 욕하고, 또 누구를 욕하지만
나는 이 일로 누구를 욕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걸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아서 그렇다...

오후가 되니 여러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가까운 친구들도, 친구들의 가족도 무사했지만
친한 친구의 회사 사람이 그 자리에서 명을 달리했고
또 다른 친한 친구의 대학 선배도 그랬다고 했다
할로윈에 이태원에 갔었던 친한 친구의 동생이 문득 떠올라서 연락을 해보니 다행히 친구 동생은 이태원에 안갔지만 친구 동생의 친구가 이태원에 갔다가 해를 입었다고 했다

삶과 죽음이 너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세월호 사건 때도 제천 목욕탕 화재 때도 건너 아는 분들이 명을 달리했었는데 이번에도 이런 일이 가까이에서 생기니 삶의 허무함을 너무 많이 느끼게 됐다

마음이 너무 좋지 않다
삶의 많은 것이 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한들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있다는 것
그런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서울에 오려고 배웅해주는 친구와 ktx를 타려 기다리는데 대합실 텔레비전에 계속 이태원 참사 뉴스가 나왔다
나보다 마음이 따뜻한 내 친구는 뉴스를 보면서 계속 울었다

친구는 울지만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기차 시간을 착각해서 기차를 놓칠 뻔해 한참 뛰었다 기차를 탄 뒤 숨이 골라지지 않았다
가슴이 계속 계속 쿵쿵 뛰고 아팠다
이거 괜찮은건가 싶었는데 물도 못 사고 타서 어쩌지 하고 엎드려서 가슴을 쓸다가 잠들었다

사람의 명이란 무엇일까
백오십 명이 넘는 그 사람들은 대체 왜 죽어야만 했을까?
코로나로 내내 갇혀있다 이제 막 즐겁게 놀아보려던 그 어리거나 젊은 청년들이 무슨 죄라고...
그냥 마음이 너무 아프다...

오늘도 쉽게 잠들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