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가 요새 본 영화 중에 제일 무서운 영화다. 그 시절 그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예고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싸해지곤 했다. 나를 빼놓고 자기들끼리 급식을 먹기 위해 나에게만 말을 안 해주고 급식실로 빠르게 뛰어갔다. 학창시절 '말 안 걸기 왕따' 한 번 안 당해본 여성이 있을까. 무리 중에 마음이 약해보이는 애와 둘이 있을 때 이유를 물으면 말을 해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말을 해주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이 나를 왜 따돌리는지 몰랐고, 내 생각엔 아마 그들도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으니까.

내일 당장 누구랑 밥을 먹어야 하지, 내일 소풍인데 누구랑 앉아가야 하지, 자기 전에 그런 생각을 해야 하는 날엔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학교 가기가 싫었다. 그런 순간은 그리 오래 가진 않았지만, 다음 희생양이 나타나야만 끝나곤 했다. 그리고 그건 마음이 무척 불편한 일이었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선, 내가 왕따의 직접적 주동자였던 적은 없지만, 많은 경우에 나는 방관자였다. 방관자로서 최대한 양심을 지키며 방관하는 법은 그저 '알아도 모르는 척, 아무 생각 없는 척, 아무 의지 없는 척' 이었다. 소풍간 롯데월드에서 일진 친구들과 함께 초딩들에게 삥을 뜯었던 건 여전히 더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때의 난, 그러기 싫은데 싫단 말도 못하는 무기력한 방관자였다. 

잊고 싶던 기억이다. 내가 갑자기 무리에서 튕겨져 나왔던 순간도, 내가 누군가를 튕겨냈던 순간도, 누군가가 튕겨져 나가며 내게 손을 뻗었을 때 다른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무심한 척 손을 놔버린 순간도. 지금으로서는 하나도 기억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며 그 시절의 자신을 치유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잊고 있던 상처를 후벼 파는 기분이었다. 오히려 나는 지금 안도의 감정을 느낀다. '맞아 그 때 그 곳은, 소악마들의 우주였지.' 그 시절 내게 전부였던 그 우주가 소악마들로 가득찬 복잡 다단한 곳이었단 기억이 다시금 솟아올랐고, 다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 난 인간 관계에 대한 고민은 거의 하지 않는다. 전혀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보기 싫은 사람은 안 보고 살면 되고, 보고 싶은 사람만 보고 살면 되는 지금이 좋다. 심술 궂은 소악마들의 우주 보단 훨씬 더.

친구가 많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재수학원, 대학교 친구들까지 모두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고 또 만나고 산다. 난 세월이라는 거름망으로 필터링된 내 오랜 친구들이 좋다. 그 중 몇몇은 어느 순간엔 나에게 보라였고 지아였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정을 찾았고 혹시나 그런 관계성이 다시 드러나려 하면 난 도망가면 그만이다. 이제 어린 시절의 그 지난한 과정을 다시 겪을 자신은 없다. 아이들은 어떻게 그 세상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걸까. 선이 아빠의 대사, "어린 애들이 뭔 고민이 있어."하는 생각은 틀렸다. 선이 아빠처럼 초등학생 아이를 둔 학부모라면 꼭 봐야 할 영화. 영화를 보니, 지금 내 고민은 별 거 아니게 느껴질 정도로 그 때 그 시절 고민의 무게가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