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은 나빼고 다 잘 살아보여서 너무도 좆같은 시간들이었는데 그 시간을 함께해준 건 이자혜의 만화 <미지의 세계>였다. 겸디갹 시절부터 이자혜 블로그의 오랜 독자였지만 겸디갹 시절의 판타지적인 만화들은 내 취향은 아니었다. 영화로 치자면 겸디갹 시절의 수많은 만화들은 다음 장면을 쉽게 예측할 수 없고, 때론 실험적인 독립 단편 영화 같았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는 좀 더 정제된 언어와 설정의 장편 영화였다. 이것도 그렇게 메이저하지는 않았지만, 겸디갹 시절의 만화에 비하면 훨씬 대중적이었다.
나는 미지가 완전히 나같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미지는 나와 다르다. 나는 BL엔 전혀 관심이 없고, 미지만큼 책을 즐겨 읽거나 지성적이지도 않고, 트위터도 안 한다. 미지와는 성격도 다르다. 하지만 미지에게 수없이 공감했다. 미지의 생각이 꼭 내 생각 같아 캡쳐한 장면이 한 트럭은 된다. 돈이 없지만 알바를 안하고, 맨날 음악할거야 악기 배울거야 잡지 만들거야 하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사람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대하거나 하는... 채 다 나열할 수 없는 수많은 장면에서 나는 공감했다. 대부분 미지가 하는 병신짓 혹은 병신 같은 생각이다.
난 어릴 때부터 친구가 많고 누구와도 쉽게 친해졌는데, 내가 친구를 사귀는 방법은 솔직해지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내 치부를 거르지 않고 털어놓곤 했다. 사람들은 치부를 쉽게 털어놓으면 나중에 화살이 되어 돌아올 거라고 하지만, 딱히 그런 적은 없다. 내 치부야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일이니, 그게 화살이 될 건덕지가 없었기 때문일거다. 난 해리포터에 나오는 자백약이라도 마신듯 병적으로 솔직했고, 솔직하게 병신이었고, 그 방식은 사람들이 내가 아무리 병신짓을 해도 나를 떠나지 않게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미지의 세계> 속 미지도 그렇기 때문에, 내가 미지를 좋아했던 것 같다. 미지는 솔직한 애가 아니지만, 나는 미지의 솔직한 생각을 볼 수 있으니까.
일반적으로 동종혐오와 공감 중 무엇의 힘이 더 큰 지 알 수 없지만, 나에겐 후자의 힘이 더 크다. 내가 <미지의 세계>나 홍상수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주인공의 찌질함과 병신 같은 면이 나같아서다. 동시에 인간은 다 찌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주인공에게 공감보단 낯섦,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정말 안 찌질한 소수의 인간이거나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는 멍청한 인간, 그것도 아니라면 솔직함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한국형 선비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에게 <미지의 세계>는 취향의 리트머스지와도 같은 작품이다. 나와 취향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를 판별할 수 있는.
<미지의 세계>의 결말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딱히 배드 엔딩도 해피 엔딩도 아니고,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일어나는 그런 결말은 처절하게 현실적이다. 그리고 미지는 여전히 혼자고, 영원히 혼자일 거다. 내가 그렇듯. 울어도 달라질 게 없다는 하리보의 말처럼, 삶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내 인생도 아마 그렇겠지만, 그래도 나도 잘 좀 살아보려고. 미지처럼. <디어 마이 프렌즈> 마지막 회에서 영원이가 항암 치료 받을 난희한테 그러잖아. 기대는 버리고 희망은 품으라고. 그렇게 살아야지.
지난 2년 가까운 시간동안 나에게 <미지의 세계>는 일주일에 하루 낄낄대며 웃을 수 있는 5분이었다. 5분씩의 웃음이 쌓이니 위로가 되고, 거창하게 말하자면 희망이 되고, 그랬다. 540분의 웃음을 선물해준 미지 그리고 이자혜 작가에게 고맙다.
다들 행복해져라. 리보도 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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