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영화 기생충 스포 당연히 있음-

주말에 혼자 기생충을 보고 왔다. 아빠가 같이 보쟀는데 왠지 아빠랑 같이 보고 싶지는 않아서 혼자 봤다.

꽤 많은 이들이 기생충을  가난하면서 양심도 없는 기생충 같은 이들을 비판하기 위한 영화로 읽는다. 일리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우리가 박사장이라도 된 양 기택 가족을 욕하게 되니까.

하지만 난 봉준호가 고작 그런 얘기를 하려고 장장 두 시간이 넘는 영화를 만들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주제가 저거라면 굳이 영화로 만들지 않아도 이미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생각이 아닌가. 가난하고, 남에게 빌 붙으려 하고, 계획도 미래도 없는 이들이야 이미 모두 충분히 혐오하고 있다.

게다가 봉준호는 지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공공연히 진보 정당 지지를 표해온 사회학과 출신 감독이다. 아무리 봉준호가 배부르고 등따셔졌다해도 그 세대들은 20대 대학시절에 생긴 기본적 가치관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강남좌파가 된다.) 가난한 노동자를 지지하던 봉준호가 갑자기 가난을 혐오하는 영화를 만들었을 리 없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을 수렁에 빠지게 만드는 사회 제도를 비판하기 위한 영화일까? 그것도 아니라고 본다. 기택 가족은 충분히 자신들의 처지를 극복할 기회가 있음에도 경거망동하다 이런 기회를 놓쳐버린다. 또한 사회 비판이 목적이었다면 박 사장을 IT기업의 CEO로 설정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2019년 현재 IT분야만큼 창업자가 사회적 존경을 받고 정당하게 부를 쌓았다고 인정받는 분야는 없다.

나는 기생충이 능력없는 영화 감독들을 욕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거대 배급사의 스크린 독점을 욕하면서도 입소문날 영화도 만들지 못하는 감독들을 욕하는 영화.

극중에서 기택은 대만카스테라집은 운영하다 망했다. 대만카스테라가 먹거리 X파일 때문에 망했다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만히 냅뒀어도 어차피 망했을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만카스테라는 치즈등갈비나 조개구이나 뭐 그 비슷한 무언가들처럼 한동안 유행이라 우루루 생기다가 사람들이 질리면 또 우루루 사라지고 마는 그냥 그런 가게였다.

능력없는 영화감독들도 스크린 독점이 문제고 자기들 영화가 설 자리가 없다며 새롭지 않은 그저 그런 영화들만 줄줄이 만든다. 저예산이든 홍보비가 적든 유니크한 웰메이드라면 결국 세상에 알려진다. 윤종빈이, 윤성현이, 전고운이 그렇게 이름을 알렸다. 저정도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걸 곳이 없다고 하소연했다면 다들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같이 소문이 빠르고 기회도 많은 온라인 시대에 볼만한 영화를 못 만들면서 극장탓을 하면 좀 남사스럽다.

많은 영화 감독들이 돈 버는 영화가 아닌 자신의 예술혼을 담은 영화를 만들겠다 한다. 돈 되는 영화나 만드는 상업주의를 비판한다. 나의 추측이 아니라 영화 단체에서 100명이 넘는 영화 감독들을 만나 술 마시며 알게된 사실이다. 물론 진짜 자신의 예술세계를 가진 사람들도 아주 가끔은 있다. 하지만 사실 영화판에도 예술세계랄 게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나는 그들이 로또 사듯 한탕을 노리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자신에게 기회가 오면 라스 폰 트리에나 폴 토마스 앤더슨이라도 될 것처럼 망상하는 이들.

나는 영화판에서
가난해서 사람들한테 빌붙고 폐를 끼치면서도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게 마치 예술가의 가오인 양 구는 이들을 많이 보았다.

기생충의 기택 가족 같은 사람들 말이다.

자신의 영화를 안 걸어주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욕하면서도
자기는 돈이 없으니 독립 영화제에선 표도 안사고 공짜로 영화를 보겠다는 그들

가진 자가 베풀지 않는 것을 욕하면서도 자신보다 덜 가진 이들에겐 한없이 인색한 그들

이들은 자신들에게 아무리 많은 제작비가 최정예 스탭이 붙어도 괜찮은 상업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상업영화 감독들을 깎아내린다.

'봉준호? 설국열차 보니까 맛 갔던데?'
'돈에만 눈머니까 영화 그딴 식으로 만들지'
'넷플릭스 영화? 그게 영화냐?'

오늘도 그들은 자신의 술값을 어떻게든 안 내려고 벌벌 떨면서 저렇게 상업 영화를, 스크린 독점을, 대중을 욕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봉준호도 저들을 알 것이다. 괴물이, 설국열차가 얼마나 스크린 독점이라고 욕을 먹었는가.
봉준호도 그런 비판의 정당성을 알고 그래서 스크린 독점 안하겠다고 온라인에서만 상영하는 넷플릭스도 찍어봤겠지. 근데 어쩌냐 사람들은 봉준호 영화를 스크린으로 보고파하는 걸.

그래서 나는 결국 상업 영화 감독 봉준호가 기생충 같은 무능력 영화감독들을 까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본다.

그들은 알면 욕하고 싶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괜히 이 영화를 독점의 아이콘 영화 생태계 파괴의 아이콘 CJ가 배급한 게 아니다.

기우의 마지막 말. 대학이니 취업이니 때려치고 돈이나 벌겠다는 말이 큰 힌트다. 드디어 상업영화 감독이 되겠다고 각성하는 뜬구름 잡던 찌질 영화감독1인거지. 근데 니가 그렇게 맘먹는다고 박사장 집을 살 수 있을까? 그런다고 봉준호가 될 수 있을까? 응 아니야~라는 거지.

기택이 계획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같다. 봉준호는 별명 봉테일일 정도로 콘티를 세세히 다 그리고 온갖 걸 다 생각하고 계획해서 영화를 찍는데, 무능력 영화감독들은 그런 준비도 없이 노잼 영화 만들어놓고 영화관에서 안틀어준다 광광대잖아.

난 봉준호가 그런 감독들을 까고 싶었을 거라고 본다.

얼마전에 어떤 감독이 씨제이가 자기영화 안틀어준다고 페북에 비판 글 올려서(난 씨제이를 존나 시러하므로)  일부러 그 영화 찾아서 봤는데 존나 못만든 영화였던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이 글의 모티브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