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통의 일반인 여성보다는 조금 더 하드한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다. 이 평범하지 못한 유머 감각은 팬이 있는가하면, 안티도 있었다. 내 유머 코드를 설명한다면 미국 애니메이션 '릭 앤 모티'정도의 수위인데, 유우머 감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이 도처에 깔린 한국에서는 종종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외고 입시를 할 때 학원 영어 선생은 나를 무척 싫어했다. 그녀는 나의 개그를 무척이나 싫어했는데, 내 여러 개그 중에서도 디스 개그를 광적으로 싫어했다. 정작 디스를 당하는 당사자들이 더 즐겁게 웃는 디스조차 그녀는 진절머리를 치며 싫어했고, 나와 당사자 사이에 끼어들어 나에게 훈계질을 하곤 했다. 나는 아주 가끔씩 분위기를 봐서 그런 그녀의 오버스러움을 조롱했다. 그러면 친구들은 웃고, 다들 웃는 분위기에서 차마 정색할 수 없는 그녀는 애써 화를 참으며 억지 웃음을 짓다가, 가끔은 폭발하여 정색하고 화를 냈다.
그녀를 조롱하는 데 개그의 형식을 사용했듯,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싫어하는 사람을 비꼬며 같이 있는 사람들을 웃기는 것도 내 특기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내 대부분의 디스 개그는 애정이 바탕이 된, 악의 0%의 초딩식 마인드에서 비롯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장난을 치고 싶은 심리 말이다. 다행히 어린 시절 정신이 건강한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런 내 유머를 받아줄 여유가 있었고, 주위엔 내 개그에 함께 낄낄댈 수 있는 친구들로 가득했다. 나는 디스하는 것을 좋아하듯, 디스 당하는 것도 좋아했다. 친구들이 다같이 연합하여 나를 갈굴 때는 내가 주인공이 된듯한 기분을 느끼며 상황을 즐겼다. 그래서 친구들은 나의 디스 개그에 맞디스로 반격하곤 했다.
하지만 영어 선생만은 내 개그를 너무너무너무 싫어했다. 나는 당시 학원 오빠들과 절친하였는데, 오빠들과 나는 서로를 디스하며 친근감을 표시하곤 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오빠 오늘 그 패션 뭐에요? 할머니가 주신 옷이에요?" "너 그 바지 아빠 팬티 주워 입은 거냐?" 하는 식으로 인사하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하지만 사실 오빠들과 나는 아주 호의적인 관계였고, 그 중 한 명과는 썸도 탔으며, 이후로도 14년을 넘게 연락하고 만나고 있다. 그.런.데! 그 문제의 영어 선생은, 그런 내가 오빠들에게 예의가 없다며 또 나를 혼내고 훈계질하곤 했다. 아니 우린 서로를 갈구며 놀고 있는 것뿐인데 왜 그쪽이 불편한 거에욧!
그때부터였다. 어떤 사람을 싫어하냐고 물어보면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이라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유머가 오고 가는 현장에 꼭 정색하며 분위기를 망쳐놓는, 시쳇말로 '진지충'들. 한마디로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수도없이 관찰해온 결과(싫으니까 집요하게 관찰함), 그들의 몇가지 공통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지충들의 특징~
1. 80% 이상 여자 : 중고딩 남자 사이에서 진지충으로 유머 감각 없이 굴다가는 이미 답답한 새끼 취급 받으며 도태 당하게 되어있음. 아주 소수의 원래 착하거나 올바른 이미지의 남자애들(cf.박보검)만 이 디스 개그전에서 논외 취급 받으며 고고하게 살 수 있음.
2. 90%의 확률로 정신이 건강하지 않음 : 누군가 자신을 놀리거나,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는 것을 곧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유리멘탈. 자신을 향한 놀림은 무조건 자신을 싫어하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호의와 애정에서 비롯한 놀림과, 악의에서 비롯한 갈굼을 구분할 줄 모르는 것이다. 이를 구분 못할 거면 그냥 다들 내가 좋아서 놀리나 보다 생각하면 자기 정신 건강에도 더 이로울텐데. 자신을 향한 놀림은 무조건 자신을 싫어하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이 건강하지 않고 피해의식이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3. 지능 낮음 : 원래 서양 연구 결과 보면 사르카즘(비꼬기 개그, 농담) 잘하는 애들이 머리 좋고, 유머 감각과 지능은 비례한다고 나옴.
4. 장난이나 농담이 통하지 않는 권위적이고 답답한 가정 분위기 : 진지충 부모 아래 진지충 자식 자란다.
나는 자라면서 최대한 진지충을 피하고, 유머 감각이 풍부한 친구들을 사귀었다. 하지만 걱정 없던 어린 시절과 달리 나이가 들수록 힘들어지는 인생만큼 사람들의 여유도 사라져갔다.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서로를 디스하며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친구들은 줄어들었다. 호호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서로의 고쟁이 패션을 디스하며 깔깔거리는 친구 관계를 꿈꿨지만, '우리 이제 그럴 나이 아니'라는 말에 숨겨진 친구들의 피곤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아가 나 스스로도 힘든 시간을 겪으며 진지충들의 예민한 유리멘탈을 한시적으로나마 겪어보게 되었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의도치 않게 다치게 할까 웬만해선 디스개그를 자제하게 됐다. 정말 친한 소수의 친구들과만 디스 개그가 남아 있는데, 멘탈의 튼튼함이 상위 10%는 되는 좋은 친구들이다.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서로를 갈구며 놀 수 있는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매우 행복하다.
대신 나이든 나의 메인 개그는 '자기 디스 개그'가 됐다. 나의 모든 아픔을 개그로 승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20대 초반에 잠수 이별을 두 번이나 당했는데, 친구들과 카톡을 하다가 잠시 카톡이 끊기면 "왜그래...? 잠수야...? 너까지 나한테 왜이래...?"하면서 계속해서 카톡을 보내는 집착녀 코스프레를 하곤 했고, 잠수 이별을 겪으며 내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를 지켜봤던 친구들은 이 대목에서 어김없이 웃음이 터지곤 했다. 그 외에도 최종 면접 탈락, 부모님 사업 망한 것, 11년 키우던 강아지의 죽음 등 나는 커다란 아픔일수록 개그로 승화하며 치유했다. 11년 키우던 강아지의 죽음 같은 것은 일반인이 받아들이기 하드코어하기 때문에(눈치없이 했다간 그 자리가 숙연해짐), 사람을 가려했다. 이런 개그를 받아들일 수 있는 친구들은 다른 어떤 개그보다도 이런 개그를 좋아하며 함께 깔깔거렸고, 나는 그 과정에서 내 상처와 아픔을 치유할 수 있었다.
역시 유머는 만병통치약이었던 것이다. 껄껄껄.
뭘 위해 이 글을 썼는지 모르겠는데. 여기까지 쓰고 나니 하고 싶은 말은, 모두에게 유머 감각이 좀 더 생겼으면 좋겠다는 거다. 우리 나라의 개그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너무 많은 금기가 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의 대머리를 보고 웃으면 안 된다고, 달리기하다 친구가 아무리 웃기게 넘어져도 웃지 말아야 한다고, 그 외에 여러가지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질만한 상황에서 웃음을 참아야 한다고 지나치게 강요 받으며 살아왔다. 할아버지가 대머리길래 빛나리라고 놀리다가 진지하게 혼났고, 친구가 웃기게 넘어져서 크게 웃었다가 당사자한테 뒤에서 눈치 없다고 욕 먹은 건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희화화되는 것을 두려워말자! 컴플렉스가 없는 인간은 스스로가 희화화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컴플렉스가 있는 인간도 참고 자신의 컴플렉스를 희화화하다보면 컴플렉스가 점차 사라져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남을 웃긴다는 것은 얼마나 보람찬 행위인가. 빛나리라고 대머리를 놀리는 손녀에겐 "허허허 욘석! 할아버지 레이저 빔 맛 좀 볼테냐?"하며 손녀를 향해 대머리 광선을 쏘자. 넘어져서 아프지만 친구들이 웃으면 무릎을 털고 더 과도하게 절뚝거리며 친구들을 향한 몰카를...왜. 왜 이렇게까지 해야하냐고? 그...그...웃으면 수명이 는다구!
하여튼 시절이 하수상해서인지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없는 모습을 종종 본다. 그냥 함께 웃어 넘길 수 있을 만한 것에도 진지한 잣대가 끼어드는 모습이 짜증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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