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34주차
예정일이 1월 극초반이라 1월에 아기도 나도 건강하게 순산하는 게 요즘의 목표다.
주위에서 12월생은 유치원까지 여러 불편함이 있대서
1월 예정일 맞춰 건강하게 태어나길 고대 중

임신을 하고 느낀 건 임신 출산 육아는 내 마음 속에 피어오르는 불안과의 끝없는 싸움이라는 거다.
태평한 성격의 사람들이 임출육에 스트레스를 별로 안 받고, 예민하거나 통제적인 사람들(=불안 높은 사람들)이 임출육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를 느낄 수 있음.

난 타고난 성정은 예민하고 불안하지만 평생 안 그러려고 노력해온 게 일상이 돼버려서
임신에서 불안을 느낄 때도 비슷하게 대처하고 있다.

임신하고 어떤 불안을 느끼는가.
우선 초산일 경우 난생 처음 임신을 해보므로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괜찮을까...?’라는 걱정을 품게 한다.

임신 초기
- 유산 안될까? 괜찮을까?
- 1차 기형아 검사 괜찮을까? 2차 기형아 검사는? 정밀 초음파는? 이상 없을까? (의사쌤이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떨림)

임신 중기
- 임신성 당뇨 아닐까? (임당 1차 검사 통과 못해서 2차 검사 전까지 무서웠음)
- 아기 발달 잘 되고 있나?

임신 후기
- 임신중독증 아닐까?
- 막달 사산...이런 게 있다고...? ㅠㅠ
- 아기 건강하게 태어날까?
- 출산 아플텐데 나 괜찮을까?
- 색전증? 이거 뭐야 대책도 없네? ㅠㅠ
- 아기 무사히 잘 낳을 수 있을까
- 낳았는데 아기한테 아픈 곳이 있으면 어쩌지?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을까?

알고리즘에 따라 내가 임산부인 걸 알고 뜨는 인스타 릴스들이 온갖 임신출산 관련 이슈, 전국의 아픈 산모와 아기를 보여주며 불안을 부추기는 것도 한 몫한다...몰랐고 몰라도 됐을 걸 너무 많이 알려줌.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불안하려면 끝없이 불안할 수 있는 과정
이것이 바로 임신과 출산인 것이다...

육아도 마찬가지일듯.
아기 낳고 나면 내가 어디서 떨어뜨려서 다치는 거 아니겠지, 어디 부딪혀서 다치는 거 아니겠지, 자폐 아니겠지, 개월 수에 맞게 발달 잘 되고 있는 거겠지.

자식이 크고 나면 밖에 혼자 돌아다니게 둬야 하는데
뭔일 있는 거 아니겠지, 힘든 거 아니겠지, 어디 아픈 거 아니겠지, 이상한 사람 만나는 거 아니겠지...

등등 하려면 평생할 수 있는 게 자식 걱정인듯.

이걸 왜 임신하고서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는지...ㅋㅋ

그래서 불안에 나 자신을 맞추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아기가 잘 있을까 불안한 일부 임산부들은 다니는 분만 병원 한 곳 외에 서브병원이란 걸 또 다닌다. 한 병원에서 의료보험을 적용해 초음파를 싸게 볼 수 있는 횟수가 한정적이기 때문에(초기나 후기 말고는 약 4주에 한번씩이라 생각보다 병원을 자주 안감) 격주나 매주 아기가 잘 있나 초음파를 보기 위해 산부인과를 여러 곳 다니는 것이다. 가까워서거나 대기가 짧아서 분만은 안하는 서브병원을 가는 경우도 있는듯. 하여튼 아기가 잘 있는지 초음파를 자주 보기 위해 서브병원을 만들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 건 맞는 것 같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난 태동이 거의 안 느껴지는 편인데도(=아기가 잘 있는지 알 수 없단 소리^^) 불안에 나를 맞추고 싶지 않아서 서브 병원을 만들지도 않았고, 병원은 필수 정기검진으로 오랄 때만 갔다.

비슷하게 불안한 임신부들을 위한 도구로 하이베베라는 의료기기가 있다. 집에서 배에 초음파 젤을 바르고 하이베베를 대면 아기 심장 박동을 측정해주고 들을 수 있는 기계다. 10만원 정도 하는 것 같은데, 이것도 사서 주기적으로 집에서 아기 심장 소리를 들으며 불안을 해소하는  임신부들이 있는듯. 나도 솔깃했지만 이 또한 불안에 나를 맞추는 것 같아서 안 샀다.

그렇게 잘 참았다만
오늘은 처음으로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정기 검진이 아닌데 갑작스럽게 산부인과를 다녀왔다.

새벽 늦게 잠들어서 서너시간쯤 잤을까, 자고 있었는데도 엄청난 어지러움이 느껴지는 거다. 20대 초중반에 빈혈이 있어서 지하철역을 걷다 어지러워서 벤치에 앉아버리거나, 병원에서 건강 검진 중에 피를 뽑고 어지러워 순간 바닥에 주저 앉아버린 적은 있지만 누워서 잠시 안정을 취하니 금방 회복됐었다.

그런데 분명히 누워서 자고 있었는데도 어지럽고 천장이 핑핑 도는 경험은 처음이었고, 일어나보니 어지러움은 더 심해졌다. 다시 누워도 어지러움은 계속됐다.

나는 ‘임신 34주 어지러움’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철분 부족일 거란 내용이 많았다. 지난 주에 갔던 산부인과에서 이제부터는 철분제를 정말 잘 챙겨먹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기에 후기라 피가 많이 필요하긴 하구나 싶었다. 그래서 자기 직전에 철분제를 먹고 잠들었지만 철분제를 한 알 더 먹었다. 그런데도 어지러움이 가라앉지 않았다. 검색을 더 하다 무서운 내용을 발견했다.

‘임신중독증 초기 증상 : 어지러움, 두통‘

친언니가 조카를 낳을 때 자연분만을 준비 중이었는데, 임신 37주에 병원에 갔다가 혈압을 재보니 갑자기 혈압이 160이어서, 급성 임신중독증 진단을 받고 응급제왕으로 출산을 했다.

언니는 임신중독증에 엄마, 아빠도 모두 고혈압이 있어서 나는 임신 초기부터 임신중독증을 걱정해왔다.

다행히 지난 주 소변 검사에선 임신중독증이 아니었는데...혹시 급성인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서 우선 혈압을 재보기로 했다.

근처에 사는 아빠한테 부모님댁에 있는 혈압계를 가지고 와달라고 했다. 어지럽다고 말하니 아빠는 그럼 그냥 병원에 바로 가보자고 했다. 나도 확실히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러자고 했다. 아빠가 가져온 혈압계는 작동하지 않고 고장나 있어서, 불안한 마음으로 막히는 길 50분을 차로 달려 병원에 도착했다.

이때 쯤엔 어지러움은 나아져 있었다. 처음 병원에 도착했을 때 잰 혈압이 150이 넘어 식겁했는데, 다시 안정을 취하다 재니 혈압이 130대로 떨어졌다. 다행히 급성 임신중독증도 아니었고, 초음파로 아기가 잘 있는 모습도 확인하고 돌아왔다.

역시 아기와 나 모두 건강하게 출산하기 전까지는 불안을 늦출 수 없는 게 임신 과정이다.

그와중에 회사에 간 엄마는 내가 아침에 했던 혈압계 있냐는 전화에 놀라 아빠한테 병원에 잘 데리고 갔는지, 문제 없는지 전화를 계속 몇 통이나 하면서 부모는 자식 걱정을 평생 놓을 수 없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 (상대적으로 불안이 낮은 남편은 그냥 내가 연락하기 전까지 잘 기다림 ㅎㅎ)

아무튼 결론은, 결국 출산 6주를 남기고 혈압계를 사고 말았다는 결론...
병원에서 임신중독증 여부를 알 수 있는 소변 검사지도 챙겨주셔서 받아옴. 이제 며칠에 한번씩은 이것들로 체크하며 임신중독증에 대한 불안을 다스려야겠다.

요즘 유행하는 말들
감쓰 = 감정 쓰레기통
무토바 = 무료 토킹바

둘 다
가족이나 친구나 지인이
내가 굳이 듣기 싫은 이야기를 나에게 쏟아낼 때
그 행동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기 위해 쓰는 단어들이다
(무토바는 다른 의미로 쓰일 때도 있지만)

예를 들면
친구의 고민을 듣기 싫은데 친구가 계속 그 얘기 해댈 때
친구가 나를 감쓰로 쓴다, 무토바 취급한다
이런 식으로 씀

근데 난 저 말이 별로 이해가 안간다

엄마들이 딸한테 백날천날 남편 욕 하는 걸 두고 딸들이 엄마가 나를 감쓰 취급한다고 불만 갖는 건 좀 이해가 됨
엄마는 보통 같은 집 사니까 듣기 싫어도 도망도 못 가고
집집마다 좀 다르겠지만 엄마와 딸은 부모-자식이라는 위계가 있어서 엄마한테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말하기가 쉽진 않을수도 있으니까. 특히 엄마 집에 얹혀살고 있다면.

근데 친구는 아니잖아
부정적인 얘기를 너무 자주 해서 듣기 싫으면 그만하라고 하거나 연락 씹거나 어쨌든 싫은 티 낼 수 있잖아

친구가 나를 감쓰로 쓰려고 해도 내가 안되면 그만 아닌가...?

그리고 감쓰의 역치가 너무 낮은 것도 문제다
같은 얘기를 여러 번 반복적으로 하는 수준 아니면
친구의 고민이나 힘든 얘기를 들어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친구잖아 그게 뭐가 그렇게 힘들지?
부정적인 얘기를 한두번만 해도 감쓰 취급하느니 어쩌느니 말 나오는 게 좀 별로다
원래 내 감정을 나누는 게 친구잖아
그게 때로는 부정적인 감정일 때도 있는 거고

하여튼 난 보통 친구들의 고민이나 부정적인 얘기, 힘든 얘기를 듣는 게 딱히 힘들지 않고, 귀찮지도 않다
근데 요즘 하도 감쓰 감쓰 거리니 친한 친구들도 나한테 고민 얘기하다가 “들어줘서 고마워”,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라는 말을 종종 하는데
난 진심으로 상관 없고 안 귀찮으니 안 고마워해도 되고 맘껏 얘기해도 된다고 하는 편이다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근데 사람들이 저렇게 하도 감쓰, 무토바 거리면서 친구한테 고민 토로하는 거 자체를 민폐 취급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친구가 싫어할까봐 친구랑 소통하길 포기하고 챗지피티한테 고민을 상담하게 되는듯

내가 볼 땐 별로 좋은 현상 같지 않다

얘기 좀 들어주고 같이 고민도 해주고 조언도 해줄 수 있는 게 친구 사이 아닌가
친구끼리 그런 얘기를 안 나누면 뭐가 친구지
친구끼리는 만나서 연예인, 재테크 뭐 이런 내 얘기가 아닌 얘기들만 하고 하하호호 즐거워만 하다 헤어져야 하는건가? 내 기준 그건 안 친한 친구인데...


친구들이 듣기 싫어할까봐 남친 고민을 챗지피티한테만 털어놓는다는 인터넷 글을 보고 이런 세태가 애잔해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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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이 많다.
친구들과 얘기를 해보면 시댁에 대해 걱정하는 친구들이 많다. 결혼을 해서 시댁이 생기고 시댁에 잘해야 하는 의무가 생기는 게 두렵고 싫다는 게 30대 중반 내 또래 여자들이 많이들 하는 생각인 것 같다.

우리 엄마는 극악의 시집살이를 수십 년간 당해 홧병이 생겼다. 우리 할머니는 ‘시짜’의 끝판왕 정도 되는 사람이고, 엄마는 시댁 어른들께 잘 하는 게 도리라고 알고 자란 답답한 사람이라 그 모진 시집살이를 수십 년간 찍 소리도 못내고 당했다. 아빠는? 방관자였다. 엄마의 동네 친구들이 아빠의 현재 모습만 보고 ‘폭싹 속았수다’의 관식이라고 했다는데, 나랑 언니가 바로 “아빠는 관식이가 아니라 영범이지.”라고 했을 정도로.

언니는 큰딸이라 엄마가 어떤 시집살이를 당했는지를 제일 잘 안다. 그래서 언니는 첫 손주인 언니를 예뻐해서 언니 앞으로 적금까지 부어준 할머니를 싫어한다.

언니는 결혼할 때 모르긴 몰라도 시부모님이 시집살이를 시킬 분들이신지를 좀 본 것 같다. 언니 시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희생적인 분이시지만, 시집살이는 시키지 않는 분이시다. 물론 그 배경에는 효자와는 아주 거리가 먼 형부가 있다. 아들이 효자가 아니면, 시어머니도 아들과 며느리를 어려워하게 마련이니까. 사람들은 시댁에서 받는 게 많으면 시집살이를 하게 된다고 생각하던데...시댁에서 서울 좋은 동네 아파트는 물론 생활비까지 받으면서도 시집살이는 전혀 안하는 사람, 그게 저희 언니입니다...언니네 시댁은 김장도 안하고, 제사도 안 지내고, 아들과 며느리에게 연락도 거의 안한다. 그저 아낌없이 주시기만 할 뿐.

언니는 그 관계에 형부가 서운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 신혼 초부터 우리 엄마아빠를 단속시켰다. 엄마가 원하는 그놈의 ‘도리’를 형부에게 강요하지 못하게 선을 살벌하게 그었다. 엄마와 아빠가 형부한테 직접 연락을 하지 못하게 했고, 우리 가족 단톡방엔 당연히 초대하지 않았으며 결혼한지 5년이 넘은 지금도 단톡방에 형부는 없다. “사위 보기가 힘들다”, “사위랑 친하지가 않다”고 서운해하던 엄마(아빠는 별 생각 없음)는 엄청난 시집살이의 피해자답게 “엄마가 사위 만나면 나도 시어머니 봐야 돼.”라는 언니의 말에 설득돼버렸고, 사위와의 데면데면한 관계를 받아들였다. 그와중에 언니한테 “시어머니한테 전화드려야 하지 않냐”, “시댁에는 갔냐” 등 시댁에 잘하라고 잔소리하다가 한소리 듣고 정신차린 건 덤.

나는 엄마의 시집살이를 언니만큼은 아니어도 꽤 봐왔지만, 내가 시집살이를 당할 거라는 걱정은 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엄마를 보면서 ‘왜 아무말도 못하고 저걸 당하지? 나라면 바로 개길텐데.‘ 라고 생각하며 수십 년을 시뮬레이션 해왔기 때문일까? 미움 받을 용기는 그 누구보다 있어서일까? 다니던 회사 사장과 소리지르며 싸울 정도로 전투력이 넘쳐나서 그런걸까? 그 어떤 악덕 시어머니도 나를 시집살이 시킬 수는 없을 거고 그런 꼴을 두고 볼 병신 같은 남자(아빠 미안)라면 사랑할 일이 없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그리고 그렇게 됐다.

남편은 홀어머니에 외아들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시집살이의 조건이 완벽하게 세팅돼있는. 그런데 내 시어머니는 한국의 보통 시어머니들과 좀 다르다. mbti가 INTP시라는데 전형적인 그 성격 같다. 남에게 큰 관심이 없고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하심. 아들에게 깊은 사랑을 갖고 계시지만 아들과 자주 소통하거나 만나길 바라진 않으신다. 혼자 자연에서 텃밭 가꾸는 걸 제일 좋아하시는 분이다.

결혼 전에 엄마는 나보고 시어머니께 뭘 해야하지 않냐,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지 않냐 같은 말을 자주 해댔다. 그러면 나는 “남친이 안해도 된다는데? 그런 거 안 바라신대.” 라고 전했고, 엄마는 “말이 그런거지 바라실걸?” 이라고 엄마의 도리 중심적 사고에 기반한 말을 하며 나에게 잔소리를 해댔다.

그랬던 엄마조차 상견례에서 시어머니를 보고 “너 시집살이 못 시키실 것 같아 안심”이라고 할 정도로 시어머니는 그런 쪽으로는 무해한 분이시다. 뇌에 방사선 치료를 받느라 집에서 먼 대학병원을 다니시면서도 아들한테 같이 가달라는 말 한 번 없이 택시를 타고 다니시고, 아들한테 용돈 한번 달라고 한 적이 없으신 분.

시어머니는 결혼하고도 한참동안 내 전화번호를 모르셨다. 물어보신 적도 없고, 연락은 다 남편을 통해서만 했다. 그러다 내 첫 생일을 챙겨주신다고 밥을 사주시면서 용돈을 두둑히 주셔서, 내가 남편에게 어머니 번호를 물어봐 문자로 감사인사를 드리면서 어머니와 번호를 교환하게 됐다. (참고로 우리 엄마 아빠는 아직도 남편 번호 모름. 큰 사위로 학습돼서 물어보지도 않음ㅋㅋㅋ)

그후로 임신을 하게 되면서 시어머니께 몇 달 동안 한두번 정도 안부를 묻는 연락이 왔는데, 어떤 시부모님들처럼 나한테 먼저 연락을 바라시거나 하는 경우는 없어서 나도 별 부담 없이 전화가 오면 받고 있다. 남편이랑 통화하다가 날 바꿔달라셔서 잠깐 통화하는 경우는 있지만, 대부분은 남편과만 통화를 하신다.

시어머니가 나한테 뭔가를 바라지 않으시고 늘 잘해주시니 나도 시어머니가 마음 속으로 좋아진다. 좋은 관계라는 건 이렇게 서서히 서로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거지, 한쪽이 빈번한 만남이나 연락을 강요한다고 형성될 수는 없는 것 같다.

물론 아직 결혼한지 1년도 안됐으니 시어머니가 정말 좋은 분이실지 아닐지는 아직 모르는 거라고 할 사람들도 있겠지. 근데 난 시어머니가 어느날 갑자기 돌변해서 시집살이를 시키셔도 안 당할 자신이 있다. 아니 나 자신보다 남편을 믿는다고 해야하나? 남편이 어떤 경우에도 어머니 보다 자기가 나와 만든 이 가정을 더 소중히 여길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시집살이가 걱정되지 않는다. 물론, 당연히 나부터도 내 부모님 보다 남편과 만든 내 가정이 더 소중하다.

엄마는 엄마가 육십 평생 모진 시집살이를 당한 대신, 그걸 보고 자란 딸들이 똑똑하게 시집살이를 안 당하고 산다며 기뻐한다. 나도 엄마를 걱정하지 않게 해줄 수 있어서, 또 남편과 우리 둘 사이의 문제 아닌 걸로는 부딪힐 일이 없어서 행복하다.

행복한 결혼생활의 한 가지 조건인 것 같다. 내가 태어난 원가정 보다 내가 선택해서 만든 가정을 더 소중히 여길 것. 결혼하는 두 사람이 그 마음을 굳게 가지고 있다면 고부갈등도 장서갈등도 그저 남 얘기일 거라고 생각한다. 문득 연애 때 남편이 했던 가장 로맨틱한 말이 생각나네. “난 엄마 보다 네가 더 좋은데?”
결혼은 내 엄마, 아빠 보다 더 좋은 사람과 해야한다.

https://youtu.be/vOOYsBhzTKg?si=lWA8ki0tWo1rj_bc

Want Your Love

Provided to YouTube by YG PLUSWant Your Love · 검정치마201 (Special Edition)℗ DOGGYRICH FOREVER, BESPOK.Released on: 2010-03-18Lyricist: 검정치마Composer: 검정치마Ar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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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에 결혼식을 올리고 남편이 살던 집의 보증금 문제로 3월 말이 되어서야 같이 살게 되었다. 신혼 생활을 1년 정도 즐기면서 산전 검사를 받고 천천히 아기를 가질 계획이었는데 같이 살자마자 바로 아기가 생겼다.

친구들에게 피임을 하지 않아도 아기는 쉽게 생기지 않는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몇 년 전 재미로 사주를 두 번 봤을 때 두 사람 모두 나에게 “자식을 갖기 힘든 사주다, 난임 병원을 다녀야 할 거다“(1명은 난임 병원 다니면 생길 거라 했고, 1명은 병원 다녀도 어려워서 포기하게 될 거라 했음.)라고 말을 했던 터라 이렇게 아기가 금방 생길 줄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남편이랑 내가 그렇게 어린 나이도 아닌데 한 번에 바로 생기다니.

임신 확인과 산부인과 방문

상상도 못했기에 임신 확인 전날까지도 집에서 신나게 맥주를 마셨다. 남편이 만들어준 양념 치킨과 함께. 술 안 좋아하는 남편은 안 마시는데 혼자 신나게 마셨다. 그리고 다음 날 남편과 어딜 다녀오는 길에 문득 생리를 안한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는 생각에 임신테스트기를 하나 사서 집으로 가자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검사 한번 해보는 거지 임신일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와서 테스트기를 하자마자 빼도 박도 못할 선명한 두 줄이 떴다. 어??? 너무 얼떨떨한 마음에 남편에게 테스트기를 보여줬고, 둘이 손을 마주잡고 일단 놀라하면서 좋아했다.

마침 5월 초 연휴 기간이었고, 다음 날부터 가족 여행과 회사 워크숍이 예정되어 있어서 곧장 병원에 갈 수는 없었다. 남편은 직업 특성 상 연휴에도 회사 근무가 있어서 가족 여행은 나 혼자 가야했다. 아직 테스트기만 확인한 터라 같이 여행을 간 엄마, 아빠, 언니, 형부, 조카에게도 임신 사실을 알리기는 시기상조였다. 다들 맥주를 좋아하는 내가 왜 맥주를 안 마시는지 좀 이상하게 여겼지만 적당히 둘러대고 여행 내내 맥주를 한 잔도 마시지 않고 여행을 잘 다녀왔다.

여행과 워크숍을 무사히 다녀와서 동네 산부인과에 예약을 하고 남편과 방문했다. 처음 만난 의사 선생님의 첫 질문은 “자연임신이죠?” 였다. 내가 나이가 꽤 있어서도 있지만 요즘 정말 난임이나 시험관 시술로 아기가 생기는 경우가 많구나 싶었다. 산부인과에서 배 초음파를 통해 아기집과 곧 아기가 될 동그란 세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기 심장소리도 들었다. 나이든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은 꽤나 쿨하면서도 친절하셔서 좋았다. 술만 아니면 회든 뭐든 다 먹어도 된다고 하셨다.

임신 초기의 변화

보건소에 가서 임산부 등록을 하고, 뱃지와 엽산을 받았다. 엽산을 챙겨먹기 시작했다. 평생 영양제를 챙겨먹어본 적이 없는데, 아기의 장기가 잘 형성되길 바라며 엽산을 매일 꼬박꼬박 챙겨먹게 되었다.

임신 초기에도 다행히 엄마와 언니처럼 입덧이 없었다. 그대신 시도때도 없이 졸음이 쏟아졌다. 일이 자유로운 편이라 낮 1시 정도부터 3시 정도까지는 매일 자고 일어나서 오후에 일을 하곤 했다. 저녁에도 야구를 보다 스르르 잠들었다. 자도 자도 졸음이 쏟아졌다. 몸이 아기의 장기를 만드느라 꽤나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입덧이 없어 음식을 가리진 않았지만 속이 늘 더부룩하고 안 좋은 느낌이었다. 탄산수를 사서 물 대신 마셨다. 그렇게 해야 소화가 된 느낌이 들었다. 시원한 아이스크림도 당겼다. 하겐다즈를 사놓고 먹었다.

방광이 커지는 자궁에 눌리면서 소변이 자꾸 마려워졌다.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었고, 한동안은 방광염 초기 같은 잔뇨감이 느껴져서 불편했다. 다행히 산부인과에서 검사해본 결과 방광염 수치는 낮아서 따로 약은 안 먹고 물을 더 많이 챙겨마시면서 잔뇨감을 이겨냈다.

감정 기복이 생겼다. 어느 날은 남편이 내가 먹어도 된다고 한 줄 착각하고 내 하겐다즈를 먹어버려서 엄청 화를 냈다. 남편은 그 길로 바로 나가서 하겐다즈를 다시 사왔다.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별 시덥잖은 이유로 울기도 했다. 임신 중기에 접어든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나는 웬만해선 잘 울지 않는 mbti T형 인간이었는데, 인터넷을 보다가 뜨는 짧은 감동 스토리나 슬픈 이야기에도 눈물이 쏟아졌다. F형 인간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호르몬의 작용이란 무서운 것.

냄새에 엄청 민감해지기도 했다. 난 평소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편인데, 임신 초기에는 모든 냄새가 수십 배로 증폭돼서 나는 느낌이었다. 특히 인공적인 향이 너무 싫어서 향이 있는 주방 세제와 섬유 유연제를 모두 무향으로 바꿨다. 주방 세제로 설거지한 그릇에서도 세제 냄새가 나서 도저히 맡을 수가 없었다. 남편은 샤워할 때 내가 갖다놓은 헤라 비누를 썼는데, 이 냄새도 너무 지독하게 느껴져서 당장 버리고 남편에게는 내가 쓰는 아베다 바디워시를 쓰게 시켰다. 록시땅 핸드워시도 향이 너무 거슬려서 냄새가 옅은 핸드워시를 새로 뜯어썼다. 그뿐인가. 비가 오는 날엔 창문을 열지 않아도 물 비린내로 비가 오는 걸 알 수 있었다. 화장실은 조금만 청소를 하지 않아도 물 비린내가 나서 남편에게 청소를 시켰다.

냄새 뿐 아니라 감각도 예민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수십 년간 잘만 마시던 플라스틱 생수병의 플라스틱 맛(?), 느낌(?)이 거슬려져서 마시기가 힘들어졌다. 유리병을 사서 직접 보리차를 끓여먹게 되었다. 밑반찬을 거의 먹지 않았었는데,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겠다는 느낌이 들어 엄마에게 부탁해 한식 밑반찬을 받아 먹기 시작했다.

입 주위 피부가 웅이 아버지처럼 동그랗게 각질이 일어나서 뜨기 시작했고, 그 부분은 착색된 것처럼 색도 변해서 한동안 스트레스였다. 산부인과에서 연고를 처방받아 발랐는데 효과는 없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나같은 증상이 나타난 임산부들이 많았는데, 출산하면 싹 낫는다고 했다. 그래서 ‘이대로 남은 임신기간을 웅이 아버지로 살아야 하는군’하며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때 아이허브에서 사놓고 겨울에 립밤 대용으로 바르던 ‘아쿠아퍼 침독 크림’이 생각나서 혹시나 하고 착색이 일어난 건조한 입 주위에 발라줬다. 근데!!! 연고도 효과 없던 웅이 아버지 부위가 2-3번만 발랐는데 싹 낫고 착색도 사라졌다;;; 이렇게 놀라울수가... 저와 같은 증상이 있으신 분들은 꼭 아쿠아퍼 침독 크림(베이비 오인트먼트)를 발라보세요.

이거임.


다행히 임신 중기에 들어서자 초기에 나타났던 많은 증상들이 사라지거나 완화됐다. 이제 좀 컨디션이 괜찮아졌다.

임신을 알리고 나서

보통 임신은 완전 초기가 지나고 12주 안정기쯤은 접어들어야 주위에 알리는 게 맞다고들 한다. 그런데 아직 초기였지만 내가 임신을 확인하고 다음 주, 그러니까 임신 6주차쯤 어버이날이 있어서, 어버이날이 지난 주말에 양가 부모님들께 어버이날 선물로 임신 사실을 알리기로 했다. 병원에서 받은 초음파 사진을 복사해 카드에 붙여서 부모님들께 카드를 드렸다. 점심을 먹고 간 카페에서 카드를 보신 시어머니는 눈에 눈물이 고이셨다. 그만큼 엄청 좋아하셨고 할머니가 돼서 기쁘다고 하셨다. 저녁에 만난 엄마 아빠도 장어집에서 카드를 보곤 정말 기뻐하셨다.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용한 절에 놀러가게 되어 시주를 하며 내 임신을 소원으로 빌었다는 엄마 아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도 소원이 이루어져서 좋다고 했다.

친구들에게는 좀 더 시간이 지나고서 이야기를 전했다. 친구 K는 왠지 느낌이 왔었다고 했고, 임산부인 친구 J는 사과 꿈을 꿨는데 네 꿈이었나 보라고 했다. 내 태몽도 사과와 밤이었는데, J가 꿔준 게 우리 아기 태몽이었을까? 나의 맥주 메이트 친구 E는 이제 네가 결혼할 때와는 달리 정말 다른 세계로 떠나는 것 같다면서, 같이 맥주를 마셔야 하니 모유 수유는 하지 말라는 웃긴 말을 남겼다. ㅋㅋㅋ 우리 아기에게 ‘대상이’라는 또다른 태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친구 Y는 우리집에 놀러오면서 처음으로 아기 옷을 사다줬다! 내년까지 잘 보관해뒀다가 입힐게~! 친구들에게 차와 영양제도 선물로 받았다. 뭐 한 것도 없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았다.

매달 가게된 산부인과

산부인과는 4-5주 정도 간격을 두고 매달 1번 정도씩 가게 되었다. 산부인과를 내 생각보다 가끔 가게 되다보니, 갈 때마다 아기가 잘 있나 잘 자라고 있나 걱정이 됐다. 다행히 아기는 지금까지 잘 자라주었다. 방문할 때마다 초음파로 팔 다리의 형태가 살짝 생긴 귀여운 젤리곰의 모습도, 뼈가 생겨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초음파가 없었던 시절 엄마들은 얼마나 막연한 마음으로 뱃속 아기를 기다렸을까.

필수인 1차, 2차 기형아 검사도 거쳤다. 나이가 딱 노산의 초입(만 35세)이라서 아기가 어딘가 안 좋을까봐 매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병원에 갔다. 생길 때부터 효자였던 우리 아기는 다행히 갈 때마다 문제 없다는 말을 듣게 해주었다. 만 35세여서 다운증후군 등 여러 유전적 결함을 높은 확률로 판별해준다는 니프티 검사도 받을까 고민했는데, 기형아 검사가 모두 저위험군으로 나오기도 했고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도 니프티 검사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권유도 안 하셔서 그냥 안 받고 넘어갔다.

계획대로 정밀초음파 검사부터는 좀 멀지만 분만할 산부인과로 병원을 옮겼다. 원래 병원도 의사 선생님이 참 좋으셔서 병원을 옮기기 아쉽기도 했지만, 혹시 모를 안전을 위해 아는 분이 계신 더 규모가 큰 산부인과로 옮겼다.

옮긴 산부인과는 어릴 때 살던 동네에 있는 산부인과인데, 내 초등학교 친구의 어머니 집안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친구의 어머니이자 우리 엄마와도 친한 아줌마 또한 병원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계신다. 그래서 사촌언니도, 언니도 모두 그 병원에서 아기를 낳고 병원에서 운영하는 산후조리원에서 산후조리를 했다. 언니가 강력 추천한, 조카를 받아주신 의사선생님께 예약을 하고 진료를 받게 되었다.

며칠 전에는 정밀 초음파를 받으러 갔는데, 받으러 가기 전 여러 정밀 초음파 후기들을 보고 떨었는데 다행히 아기는 모두 정상이며 잘 자라고 있다고 했다. 다들 20주 내외로 태동을 느낀다던데, 난 왜 21주차인데도 전혀 태동이 안 느껴지는 걸까 걱정이 됐었다. 아기 앞에 태반이 있고, 태반 앞에 내 뱃살이 있어서였다. ㅎㅎㅎ 다행. 초음파로 보니 아기는 입도 뻐끔뻐끔 하면서 잘만 움직이고 있었다.

딸일까, 아들일까?

16주차에는 병원에서 초음파를 하며 아기의 성별을 알게 되었다. “다리 사이 보이시죠? 아들이네요.” 아들이었다. ㅋㅋㅋ 나와 시어머니는 딸을 바랐고, 남편과 엄마는 아들을 자랐는데, 아들을 바라며 절에 시주까지 한 우리 엄마 승! 아들이라니까 좋아하던 윤 여사...엄마는 이미 손녀가 있어서 손자를 갖고 싶었다지만, 난 알아...엄마가 내가 아들일 줄 알고 낳았다는 것도, 내가 딸인 걸 확인하자마자 아기 얼굴도 보지 않고 나간 친할아버지를 보며 아들 못 낳아서 서러웠을 것도. 딸이 아닌 게 난 좀 아쉬웠지만 아들이라 엄마의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어 그래도 좋았다.

내가 딸을 갖고 싶었던 이유는
1. 내가 저질 체력이라 아들보다 딸을 키우기가 더 수월할 것 같았다.
2. 금쪽 같은 내 새끼 애청자라 금쪽이 비율이 아들이 훨씬 높아서 아들이 기질 상 훈육이 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집에도 남자형제가 없고 남자 조카도 없어서 어린 남자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무지한 상태라 여러 모로 걱정이 됐다.
3. 아들은 엄마를 닮는다던데 내 성격 닮았는데 남자이기까지 하면 부모로서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아들이라 내가 10대, 20대 초반에 갖고 있던 충동성과 즉흥성이 여기서 더 극대화된다면 참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난 mbti로 치면 범죄자가 제일 많다는 ESTP라서...ㅋㅋㅋ

남편이 아들을 갖고 싶었던 이유는
1. 세상이 험해서 딸은 걱정된다. 아들은 그냥 풀어놔도 걱정이 안되는데 딸은 너무 걱정될 것 같다.
2. 딸은 아빠를 닮는다는데 내 성격을 닮은데다 여자이기까지하면 아이가 살아가기가 힘들 것 같다. (남편은 mbti INFJ임.)

결론적으로 둘 다 자기 성격 닮은 이성 자식이 태어날까봐 걱정했다는...ㅋㅋㅋ

아가야 엄마 아빠의 좋은 점만 쏙쏙 닮아서 몸과 정신 모두 건강하게 태어나라~

아무튼 요즘 나는 도서관에서 육아서도 많이 빌려보고 남편과는 아들이 나중에 이러면 어떻게 할까(게임 더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 같은) 시뮬레이션도 해보면서 즐겁게 아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 출산까지는 절반의 대장정이 남아있다. 출산 후기를 찾아볼수록 너무 무섭지만...내 엄마도, 엄마의 엄마도, 엄마의 엄마의 엄마도, 수천년 간 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다들 잘 해온 일이라는 걸 떠올려보면 용기가 생긴다. 출산의 그날까지 나와 아기에게 아무 문제가 없기를, 모쪼록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기만을 매일 기다리고 있다.


일요일 밤을 그냥 떠나보내기는 아쉽다.
그래서 일요일 밤에는 종종 영화를 보게 된다.
일요일 밤, 게임하던 남편을 불러내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았다.
아주 유명한 오래된 영화지만 둘 다 본 적이 없었다.

이 영화를 보자고 하니까
남편이 “이거 여자들이 좋아하는 영화잖아”라고 해서
난 “아니야, 다들 좋아하는 영화야”라고 대답했다.
내 왓챠피디아를 보니 남여 가릴 것 없이 친구들 8명이 별점 4~5점을 준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옛날에 내가 좋아하던 남자도 이 영화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었다.

그 남자한테 차였을 때 이별의 슬픔을 잊으려고 일주일 동안 영화만 수십 편 봤었는데, 그때도 이 영화는 안 봤다. 보면 잊는 데 도움이 안 됐을 테니까.

지금은 그런 옛사랑은 아쉬움 없이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봤다.

여튼 그렇게 10년 넘게 묵혀서 본 영화는 참 좋았다.

영화 속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

츠네오의 숏컷 섹파는 어쩌면 츠네오를 좋아하는 것 같지만 선은 넘지 않는다. 카나에의 소식을 전해주면서 어쩌면 카나에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까지 알려준다. 이게 무슨 츠네오를 좋아하는 사람의 행동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가끔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런 얘기를 하면서도 옆에 있는 사랑도 있다. 츠네오는 혼자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만들어서 쳐먹고 섹파 브래지어 끈도 안 쩜매주는 걸 보면 섹파를 안 사랑하고 그 여자도 그걸 아니까.

카나에의 사랑은 좀 애매하다. 츠네오를 사랑한걸까 아니면 장애인한테 졌다는 승부욕 때문에 불타오른 마음일까. 하여튼 츠네오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도와주고 츠네오의 행동에 무너지는 게 사랑의 증거일지도 모르지.

조제의 사랑은 투명하고 성숙하다. 처음에는 필요해서 츠네오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 덕분에 츠네오가 없어도 되는 사람이 된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명대사가 생각나는 사랑이다.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person. 조제는 츠네오에게 네가 있으니 휠체어는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실은 츠네오를 만나고 세상에 나가면서 언제든 휠체어를 사서 밖으로 나갈 용기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조제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아마 츠네오와 헤어지고 나서도 사회복지 공무원이든, 인터넷으로 만난 남자든 누구든 괜찮은 남자 꼬셔서 잘 살거다. 조제가 나쁜 남자 만날 걱정은 하지 말자. 나쁜 남자는 언제든 칼을 들고 다니며 찌를 준비가 된 여자한텐 안 붙는다. 쓰레기 버려준다는 아저씨도 조제 의사를 물어보고 행동하잖아.

조제 할머니의 사랑은 남이 보기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깊은 사랑이다. 조제가 너무 소중해서 깨질까봐 두려운 마음. 조제를 어떻게든 지키고 싶은 마음. 성숙하진 않지만 깊은 사랑이지.

츠네오의 사랑은 무엇인가. 내가 필요한 상대에게 발현되는 구원자 컴플렉스에 가깝다. 츠네오는 나 없이는 세상과 연결되지 못하는 조제에게 계속 마음이 간다. 예쁜 인싸 카나에보단, 내가 필요한 조제에게 끌리는 타입. 하지만 조제는 함께할수록 츠네오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때 우연히 마주친 카나에는 츠네오의 변심에 상처를 받아 취업도 포기하고 자포자기 상태로 판촉 모델 알바나 하는 신세. 즉 츠네오가 필요한 불쌍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츠네오가 이제 안 불쌍해진 조제에서 불쌍한 카나에로 갈아타고 싶어진 건 당연지사다. 카나에가 취업 성공해서 잘 나가는 대기업 사원으로 츠네오를 만났으면 츠네오는 결코 안 갈아탔을거야. ㅋㅋㅋ
하여튼 츠네오의 사랑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곁에 있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조제는 츠네오가 언젠가 떠날 걸 알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결말이 참 좋았다. 조제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장보는 모습이 굉장히 해피엔딩이었다. 조제가 츠네오가 찾아와야만 만날 수 있는 수동적 존재에서, 자기가 원하면 누구든 만날 수 있는 능동적 존재로 변화한 게 참 좋았다. 그래서 난 츠네오가 도망쳤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도망치는 사람을 보내준다기엔 조제도 쫓아가지 않고 그냥 보내주잖아. 둘은 그냥 여느 연인과 마찬가지고 마음이 식어 헤어지는 것처럼 헤어졌고, 그래서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결혼해서 가장 많이 달라진 건 같이 사는 사람이 부모님에서 남편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결혼 전의 삶과는 많이 달라졌다.

내 엄마는 감정 기복이 심했다. 나이가 들면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작은 일에도 버튼이 눌려 불같이 화를 내기 일쑤였다. 엄마의 화는 피하려고 해도 어떻게든 따라오고, 잘못했다고 해도 끝나지 않고, 어떻게든 끝까지 사람을 괴롭혀 상대방이 같이 폭발하게 만든 후에야 잠시 멈춘다.

엄마의 화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폭탄을 터지게 하는 상대가 나일 때도 있었지만, 언니나 아빠일 때도 있었기 때문에 폭탄이 터지는 일은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있는 이벤트였다. 나나 언니나 아빠는 폭탄이 자기 때문에 터진 게 아니면 몸을 잔뜩 수구린 채 나 몰라라 방관하곤 했다. 폭탄은 직빵으로 맞는 사람도 힘들게 했지만, 피하려고 잔뜩 수구리고 있는 사람들도 힘들게 했다.

엄마의 격한 감정은 평생을 겪어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엄마를 이해하려 평생 노력했지만, 머리로는 이해해도 폭탄이 터지는 순간이 오면 내 감정 또한 끝없이 격해졌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도 엄마랑 싸울 땐 울고 불고 소리를 지르게 됐다. 그럴 때면 엄마는 내가 엄마를 닮아 성격이 나쁘다고 했지만, 내 감정을 터지게 만드는 건 9할 이상이 엄마였다. 

하지만 엄마는 가족을 위해 묵묵히 거의 모든 집안일을 했으며, 서른이 넘은 딸의 끼니를 챙기기 위해 점심시간이면 집에 들러 음식을 주고 가곤 했다. 엄마의 큰 분노와 그 못지 않게 큰 애정 사이에서, 나는 엄마가 미울 때도 맘껏 미워할 수 없었다. 

언니는 이런 우리와 엄마와의 관계를 웬만하면 남편에게 들키지 말라고 했다. 물론 형부도 우리 엄마의 그런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있지만, 형부와는 그런 얘기를 드러내놓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형부가 더 자세히 알면 엄마를 좋게 보지 않을 수도 있고, 언니나 우리 집을 우습게 볼까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형부 부모님은 저런 감정적인 문제가 있는 분들이 아니셨기 때문에 언니는 형부에게 우리 가족의 모습을 이해받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와 언니는 성격도 연애 방식도 많이 달랐다. 나는 남편이 남자친구일 때부터 비밀이 거의 없었다. 이 블로그도 알려줬는데, 남편은 10년 넘게 내 온갖 찌질한 속내를 담아온 이 블로그를 보고 내가 더 좋아졌다고 했다. 나는 그런 남편을 믿고 연애 때부터 엄마에게 폭탄을 맞은 날엔 남편을 불러 엉엉 울고 위로를 받곤 했다. 결혼 전 가까이 살아 종종 우리 집을 들락거렸던 남편은 엄마의 폭탄이 터지는 모습도 여러 번 직접 보았다. 신혼집 입주 전날까지도 그 모습을 봤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다행히 어린 시절 우리 엄마 보다 더한 자신의 아버지를 겪어본 남편(남편 부모님은 이혼했다)은 우리 가족의 이상한 풍경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주었고, 나를 세상 누구보다 더 잘 위로해주었다.

엄마랑 따로 살게 되면서 내 삶엔 안정감이 생겼다.

더는 엄마의 폭탄이 터질까 조마조마해하지 않아도 되고, 내 집에서는 내가 화내지 않으면 먼저 화낼 사람이 없다. 남편과 있을 때 먼저 화를 내는 건 나인데, 보통은 큰일이 아니기에 화를 낸 후에 잘 풀기도 한다.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고, 서로를 자주 안는다. 속으로 아이를 낳고 나서도 이렇게 안정적으로 평생 살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곤 한다.

어버이날에 엄마 아빠에게 임신 소식을 알렸다. (임신 얘기는 따로 쓰겠음.) 그 사실을 안 엄마는 즐겁게 식사를 하고 나와 주차장에서 나랑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남편한테는 안 들리게 "이제 너도 성격 좀 죽여"라며 또 내 속을 뒤집어놨다. '성격 죽이라고? 내 성격이 어때서? 내 성격을 더럽게 만드는 건 99% 엄마야. 엄마가 나를 그렇게 만들잖아. 미쳐버리게. 미쳐 돌아버리게.'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그렇게 말해 엄마의 버튼을 누를 생각은 없었으므로, 대신 “응. 엄마도 아빠랑 잘 지내.“ 라고 소심하게 반격했다. 엄마는 내가 아는 걸 모르지만 며칠 전 엄마의 폭탄이 아빠에게 또 터졌다는 걸 아빠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기다리던 좋은 소식을 전한 이 날 마저 나에게 미운 말을 하는 엄마를 속으로 원망하면서 나는 저렇게 말했다.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엄마를 닮아 성격이 더럽단 말이 어쩌면 맞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내 엄마와 나의 대화를 듣지 못한 아빠가 나를 안아주면서 "딸, 사랑해"라고 말해주어서 뭉클한 감정이 들었고, 앞으로 평생 엄마의 폭탄을 혼자 오롯이 맞으며 살아가야할 아빠에 대한 연민을 느끼며 부모님과 헤어졌다.

하여튼, 남편과 같이 사는 것 못지 않게, 엄마와 따로사는 건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고 있다. 엄마의 화를 겪지 않아도 되기에, 엄마의 희생에 온전히 고마워하거나, 사랑할 수 있다. 우리는 진작 따로 살아야 했던 것 같다. 나도 엄마도 서로를 놓지 못해 서로 상처를 주며 오랫동안 힘들게 살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선택한 사람, 나와 성격이 맞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정말 큰 행복이다. 이 큰 행복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지. 엄마 같은 폭탄을 품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엄마가 말한대로 엄마의 성격을 닮았다는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야지. 그렇게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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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작년 시월에 했지만
남편의 집 문제로 인해 남편과 같이 산지는 두 달 밖에 되지 않았다.

보통 신혼 초에는 습관도, 생활 방식도 달라 크고 작게 많이 싸운다는데, 우리는 연애를 5년 넘게 하고 결혼해서인지 딱히 그런 면에선 부딪히지 않는다.

단지 남편이 집안일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두어 번 잔소리를 하고 언성이 높아지는 순간이 조금 있었지만, 그후로 남편이 집안일을 알아서 잘 해주고 있어 이런 부딪힘 마저도 거의 사라졌다.

나는 남편과 살아보는 것도 처음이지만 부모님과 따로 살아보는 것도 처음이다.

살면서 느끼는 건 혼자 살아보지 않길 잘했다는 거다. 내 성격상 끝없이 게으르고 무기력해졌을 것 같다. 아마 외로움도 많이 탔을 거다.

그리고 남편과 사는 생활이 꽤 만족스럽다. 굳이 약속을 잡지 않아도 같이 맛있는 저녁을 먹고, 산책하고 싶을 땐 산책을 하고, 어디든 놀러가고 싶을 땐 놀러갈 수 있는 가장 친하고 편한 친구가 늘 곁에 있다는 게 큰 즐거움이다.

남편은 내가 뭘 하자고 하든 거절하는 법이 없다. 당직이 끝나고 밤 12시에 퇴근을 했어도 내가 산책을 하고 싶다고 하면 기꺼이 함께 산책을 가준다.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하면 늘 같이 먹어준다. 야구를 보지 않으면서도 내가 저녁 내내 TV로 야구를 틀어놓고 보는 것에 불만이 없다. 자기는 관심 없는 내 그알 얘기도 꽤 잘 들어준다.

나는 과일을 잘 못 깎는다. 남편은 잘 깎는다. 그래서 사과를 먹고 싶다고 하면 친구들과 게임을 하다가도 예쁘게 깎아다 준다. 나는 음식 간을 잘 못 맞추는데 간도 잘 맞춘다. 확실히 요리는 나보다 훨씬 잘한다. 무거운 짐도 잘 들고, 재활용 쓰레기도 잘 버린다. 비위가 약한 나를 위해 음식물 쓰레기도 도맡아 버려준다. 아, 벌레도 잘 잡는다. 화장실 청소도 잘하고, 뭔가를 사다 달라는 심부름도 잘 해준다.

우리는 서로 말고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는다. 두 달 같이 살면서 남편은 다른 친구들과 약속이 한번도 없었고, 나는 딱 한 번 있었다.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온 건 두 번인데, 두 번 다 남편이 일할 때여서 나와 친구들만 놀았다. 둘다 술도 거의 안 마신다. 그래서 우리집은 매일이 거의 비슷하다. 그 사실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고, 행복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생길진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결혼생활에 꽤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작 결혼할걸 하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오랫동안 고민했기에 지금의 삶을 후회없이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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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요즘 유행하는 챗지피티를 비롯한 AI와 대화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친구들은 대학원 과제를 물어보기도 하고, 회사 상사 뒷담을 까기도 하고 잘들 사용하는 것 같은데

난 AI가 사람인 척하는 모습에 거부감이 들어서 안 쓴다 언젠가 써야만 하는 순간이 오거나 쓰고 싶어지는 순간이 오면 쓰겠지만 아직은 아님

AI랑 한번도 대화해보지 않은 내가 보기에 좀 웃긴 요즘 풍경이 있다

사람들이 챗지피티한테 본인이 들은 대답을 엄청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인 양 여기며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 올린다는 거다ㅋㅋㅋ

‘챗지피티가 바라본 김수현 기자회견’
‘챗지피티가 분석한 연예인 누구누구 사과문’ 등등

그런 글을 최근에 굉장히 많이 봤는데
그런 글 속 챗지피티를 보니까
하나같이 말 건 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대답을 해주던데?

아무렇게나 예를 들자면
“제육볶음 좋아하는 사람이 병신인 이유를 말해줘” 라고 물으면

인간이라면 “제육볶음 좋아하는 사람이 왜 병신이야?”라거나 “제육볶음 좋아한다고 병신 아닌데?”라고 답할텐데

유저의 비위를 맞추는 데 특화돼있는 챗지피티는
제육볶음 좋아하는 사람이 병신인 이유를 만들어준다

그러다보니 자기 머리로 생각하길 힘들어하거나, 말빨이 딸리는 사람들은 챗지피티의 논리가 자기 생각을 뒷받침해주는데다 객관적이어보이기까지 하니 신나서 여기저기 붙여넣고 다니는 거다

솔직히 사람들이 그러는 꼴이 좀 병신 같다
챗지피티의 답이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것인 양 여기저기 퍼뜨리는 모습이 꼴뵈기 싫다

뭔 초딩 때 친구랑 말싸움하다 안되면 우리 형이 이게 맞댔거든? 우리 형 서울대거든? 하는 것도 아니고...

대화는 나랑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내 말에 빈정상할 수도 있고 싸울 수도 있는 인간이랑 하는건데

인간과는 대화하지 않고, 나랑 의견 다르다고 타인과는 연을 끊으면서(계엄-탄핵 때 이런 사례가 넘쳐남)
방구석에서 내 말에 맞장구만 쳐주는 챗지피티랑 대화하는 인간들이 점점 많아지는 걸 보면

다들 타협과 조율과 성장을 포기하고
자발적 고립을 선택하는 것 같아서
세상이 점점 병들어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게 별건가
이런 게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거지
인간이 AI에 의존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인간을 고립되게 만드는 것
그게 지배지

지배당하기 싫어서 챗지피티 안쓴다

서울예대를 나온 남편은 자기 학교를 예대라고 부른다. 예대가 없는 종합 대학교를 나온 나는 남편이 하는 예대 얘기가 썩 재미있다. 입학식부터 과마다 장기를 뽐내어 신입생들을 놀라게 하는 이야기라든지, 그렇게 수많은 유명인들을 배출해놓고 잘 활용하지 않는 이유라든지, 과별 특성이라든지.

남편이 남친일 때 서울예대에 놀러간 적이 있다. 학교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남편의 추억을 듣고, 좋아했다던 학교 앞 부리또까지 먹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학교 앞 카페에서 읽은 서울예대 학보였다. 학보에 여러 칼럼이 있었는데, 모두 문창과 학생들이 쓴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다른 정신병에 걸려있었고, 글에서 자신의 정신병을 고백하고 있었다. 내가 그 점을 지적하자, 남편은 원래 문창과에 가려면 정신병이 한 개쯤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없다면 가짜 정신병이라도.

연기과는 행동력 있는 멍청한 친구들이라고 했고.

여기까지 쓰니 그래서 니 남편은 무슨 과길래! 할 목소리들이 들려오네. 남편은 사진과를 나왔다. 가장 유명한 선배는 신정환.

아, 안신애 얘기를 하려던 건데.

남편은
예대 실용음악과는 천재들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하는 애들이 간다나.

그땐 그러냐 하고 말았는데,
응. 진짜 그런가봐.

아주 오랜만에 블로그에 올리고 싶은 서울예대 출신의 가수를 만났다. 서울예대라는 걸 알게된 건 내가 안신애를 리무진서비스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처음 봤기 때문이다. 이무진이랑 둘이 서울예대 선후배라고 아는 척 하더라고.

처음보는 얼굴이라 96년생, 98년생쯤 되겠지 하고 검색해봤는데 86년생? 어머 언니다!

뉴페이스가 나보다 언니인 건 오랜만에 봐서 꽤나 신기했는데, 언젠가 이름만 들어봤던 바버렛츠의 멤버였다고. 싸이의 피네이션에 들어가서 솔로 앨범을 내고 열심히 활동 중인가보다. 싸이 안목 좋네.

멋진 목소리, 자연스러운 외모, 뛰어난 무대 매너
나온 영상도 많아 한동안 들을 것도 많네

열심히 나와주세요~

내가 처음 본 영상

안신애 뉴진스 슈퍼내추럴 커버, 알럽마바디 커버 좋다

이 노래도 좋다

응 다 좋네요

블로그에 글을 오랜만에 쓴다
수영에 미쳐서 남는 시간은 다 수영하면서 보내느라고...
설 연휴엔 여는 수영장이 거의 없어서 못 갔는데 얼마나 심심하던지...

연휴동안 중증외상센터 드라마 다 보고
시댁 갔다가 우리 집에서 조카랑 놀아주다가
연휴 끝물에 강원도로 출발하게 되었다

31일 일을 휘리릭 마치고 휘닉스파크로 출발
2시쯤 출발했더니 4시 30분쯤 도착
연휴가 길어서인지 별로 막히진 않았다


가는 길에 30% 할인가로 사둔 농할 상품권으로 육회와 육사시미를 사고
치킨을 포장 주문해서 기다리면서 미니미니 눈사람을 만들었다

내리고 있던 눈이라 뭉쳐지질 않아서 난 못 만들고
손재주가 좋은 남편이 만든 눈사람ㅎㅎ

 

숙소에서 육회, 육사시미, 교촌치킨과 함께 맥주 막걸리 파티~
남편은 술을 거의 못 마시는데 막걸리만 좀 마신다

평창 하나로마트에 여러 막걸리가 있었는데 기왕 여행 온 거 여기 막걸리로 사라고 했더니
남편이 고른 봉평 메밀 막걸리! 맛이 좋다고 좋아했다
한 입 마셔보니 상큼하고 괜찮았다

'나 혼자 산다'도 보고 '이혼숙려캠프'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 새벽까지 잘 놀다 잤다
 

 
휘닉스파크 눈썰매장 오픈런을 하려고 했는데...
전날 늦게 자서 실패ㅋ

바로 포기하고 아쉬운대로 숙소에서 보이는 뷰 사진만 한 장 남겼다

남편이 찾은 해장국 집이 30분 거리에 있대서 갔다
평창 진부면에 있는 '국일관'이라는 가게였는데, 네이버 별점 4.83점에 빛나는 집이었다
먹느라 사진이 없는데 내장탕 맛있게 잘 먹고 왔다
해장 완료
 

 
휘닉스파크는 주차가 너무 헬이었고 주말 오후엔 눈썰매 줄도 길다고 해서
규모는 작지만 대기 줄도 짧다는 '겨울나라 눈썰매장'(구 오리골 눈썰매장)에 갔다

둘다 밥 먹고 나니 졸려서, 눈썰매장 앞에 차 대놓고 1시간 자다 들어감ㅋㅋㅋㅋㅋㅋㅋㅋ
인당 15,000원에 무제한 탈 수 있는 눈썰매장이었는데
대충 넓은 동네 밭에 코스 만들어두고 비닐하우스 세워두고 돈 버시는 듯한ㅋㅋㅋ 허접한 곳이었으나
후기에서 본대로 줄도 짧고 코스도 짧아서 
참을성 없는 어린이들(과 나)에게 적절한 눈썰매장이었다
 

 
아 여기 장점은 반려견 동반 가능이란 것
개들도 눈썰매 탈 수 있음~ 덕분에 나도 개들 구경하고 좋았다
아 근데 공짜는 아니었다 개 1마리당 5,000원 내야 함

눈썰매장에서 좀만 가면 월정사가 있대서 출발
월정사 근처 전나무숲이 산책로로 유명하다고 해서 가기로 했다
모든 건 즉흥적으로 정함ㅋㅋㅋ

가면서 월정사 아래 '신선희 황기찐빵'에 들러 8개에 6,000원하는 찐빵을 사먹었다
기본 찐빵(황기 찐빵이라는데 황기 향이 살짝 남), 호박 찐빵, 녹차 찐빵 3종류를 섞어주신다.
내 입맛엔 호박 찐빵이 최고~

바로 그 자리에서 쪄주셔서 따뜻하니 맛있었다
 

 
월정사 전나무숲 산책 시작
전나무숲 옆 계곡이 얼어 있고, 그 위에 눈이 쌓여있는데 경치가 참 예뻤다
군데 군데 얼지 않아 물이 흐르는 곳도 있어 멋있었다
자연 풍경 달력에 나오는 단골 장면
 

 
사람들이 나무마다 눈사람을 만들어서 붙여 놓았다
창의적이고 귀여웠다
나무에서만 볼 수 있는 나무 눈사람

 
눈사람 가족
 

 
갑자기 작풍이 많이 다른 눈사람 등장
노태우 닮은듯
 

 
수염 달린 간사해보이는 눈사람
 

 
???
산 속 절 앞에 이게 뭐람~ 숭하다 숭해
 
 
 
 
...
사실 내가 만듦ㅎ
남편이 뭐 만드는지 한참 보더니 내가 다 만드니까 쯧쯧 거리면서
만들 거면 좀 사람들이라도 안 지나갈 때 만들라고 뭐라 했다ㅋㅋㅋㅋㅋ

스님들 걷다 웃으시라고 만든 나름의 유머였는뎁ㅎㅎㅎ;;;
산책로에 애들도 많은 것 같아서 사진만 찍고 평범한 버섯 모양으로 바꿔놓고 왔다
 

 
찐 거대 대왕 눈고양이 등장
 

 
얼마 전에 동네에서 본 눈고양이
퀄리티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열심히 걷고 걸었다
풍경이 상쾌했다




 
전나무에 눈 쌓인 설경을 기대하고 왔는데
전나무는 눈이 잘 안 쌓이는 형태였다
좀 아쉬웠음
 

 
군데 군데 이런 문구가 붙어있었는데 걸으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산책로가 시작하는 부근에 있던 '산책은 우주 비행사들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것 중에 하나다'라는 문구가 제일 기억에 남았다
 

 
우리나라 절 근처에서 언제나 찾아볼 수 있는 작은 돌탑들
사람들이 참 귀엽다 어디서든 이렇게 돌을 쌓고 소원을 빌고, 눈 있으면 눈사람 만들고
사람은 무척 귀여운 존재다
 

 
걷다 보니 아까의 눈고양이에 이어 화려하고 거대한 눈사람을 또 만날 수 있었다
뿔과 귀걸이도 있는 멋진 녀석
 

 
뭔 나무 작품이라고...
 

 

2006년에 쓰러진 600년된 나무. 오른쪽은 안쪽에서 찍은 사진. 나무 엮어서 받쳐놓은듯.
쓰러진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안 썩어서 신기했다. 방부제 처리라도 해놨나?
 

 
자세히 보면 보인다
여기도 저기도 눈사람
대관령 눈꽃축제에 눈 조형물 보러 왜 가나
오대산 전나무숲에 눈사람 더 많아요
 

 

누군가 잃어버린 목도리가 고이 걸려있었다
남편은 얼어 죽은 피글렛의 흔적이라고...


 
전나무숲 산책 끝내고 월정사 도착
역시 절에 오면 소원을 빌어야지
나무 가지마다 달린 소원들
다들 이루셔용
 

 
유명한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나때 국사 과목 단골 문제였다
탑 사진 주고 어느 시대 탑이냐고
다른 탑이나 건축물 사진이랑 같이 보여주면서 시대순으로 나열하라든가 하는ㅎㅎ
 
고려 시대의 대표적 탑이다

 
국보니까 한 장 더

 
출입금지
스님들의 수행공간입니다
<발길을 돌려주세요>
발길을 돌려달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서 찍음

 
산사 속의 문명


 
즐거운 겨울 여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