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그어살'을 보았다. 보기 전엔 너무 나쁜 평이 많아서 별로 볼 생각이 없었는데, 지브리를 워낙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보자고 해서 보고 왔다.
 
지브리 영화 중에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만 봤을 정도로 별 관심이 없었는데, 남자친구를 만나고 나서 남자친구의 강력 추천으로 '마녀 배달부 키키'와 '추억은 방울방울', '바다가 들린다' 를 봤다. 그리고 나서 이번 영화를 보게 되었다.
 
지브리나 미야자키 하야오는 물론 이 영화에 대해서도 사전 지식 거의 없이 영화를 봤더니 초반부는 독립 영화를 보는 느낌으로 볼 수 있었다. 다음에 대체 무슨 장면이 나올지 모를 두근거림+무서움이랄까? 헐리웃 애니메이션은 앞 10분만 봐도 뒷 내용을 대략적으로 예상할 수 있고 그래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도저히 그런 분위기가 아니어서 대체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중반부터는 '이게 뭐지?'하는 마음으로 물음표를 띄우면서 봤다. 전개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고, 이야기를 계속 확장시키기만 하고 시간이 지나도 주워담지를 않아서 이걸 대체 어떻게 마무리할 건가 궁금해졌다. 결말에서는 급하게 주워담긴 했는데 뭔가 찜찜한 느낌으로 끝을 맺었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본 직후엔 별로였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같이 본 남자친구와 대화를 나눌 수록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다. 영화에 대한 평가가 바뀌지는 않았지만 대화를 나누고 의미와 해석을 찾아볼수록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내가 생각한 이 영화의 주제는 '인생에는 원래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다, 그래도 그게 인생이니까 살아라' 였다.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의 주제와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긍정적인 느낌의 '소울'과는 달리 뭔가 체념의 정서가 더 느껴졌다. 소울은 '누구나 인생에는 그 사람만의 의미가 있답니다!' 하는 밝고 따뜻한 느낌으로 주제를 전달한다면, 그어살은 '원래 인생은 좆같다...그래도 살자ㅎㅎ' 이런 느낌이랄까? 
 
내 생각에 이 체념의 정서는 일본 특유의 정서다. 우리 나라도 70년 전에 전쟁을 겪었고 우린 심지어 가만히 있다가 공격을 당했는데도 그 전쟁에 대해서 별다른 피해 의식을 가지거나 체념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일본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전쟁에서 지지 않았고, 일본은 졌기 때문일까? 자기들이 뭐라도 될 줄 알고 나대다가 핵폭탄 두 방 맞은 게 너무 충격이었나? 핵폭탄을 맞고 나니 '아~ 인간이 아무리 잘났다고 나대봤자 좆되는 건 한 순간이구나'라는 게 학습된걸까?
 
내가 이렇게 말하니까 남자친구가 일본은 전쟁 전에도 그랬을 것 같다고 했다. 어릴 때 '먼 나라 이웃 나라'에서 일본은 섬나라라서 서로 싫어도 평화롭게 비위 맞추며 지내야 하는 '와(和)' 문화가  발달됐다고 들었는데 그것과도 관련이 있는듯.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도 갈아 엎어서 해결하기 보다는 그냥 '내가 참지 뭐' 하는 체념의 마음이 배어 있고, 이 영화에서도 묘하게 그런 정서가 느껴졌다.
 
영화의 배경은 태평양 전쟁 시기고, 주인공의 아빠도 군수공장을 운영하는 등 영화에서는 전쟁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래서 이 영화를 납작하게 보는 사람들은 '전쟁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고 욕하는 경우도 많이 보였다.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너무 민족주의적이고 왜곡된 시각으로 이 영화를 바라보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민족주의자 보다는 계급주의자에 가까운 사람이어서 그런지 일본의 평범한 사람들이 전쟁으로부터 받은 피해를 말하고, 전쟁을 끔찍하게 여기는 것이 왜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욕먹는지 잘 모르겠다. 주인공과 같은 사람은 전쟁에 대한 선택권이 없었는데, 전쟁으로 인해 엄마를 잃은 피해자가 맞잖아?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 말고 평범하게 그 시대를 살던, 전쟁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은 일본인일지라도 전쟁의 피해자가 맞지 않나? 우리 나라와 같은 식민지 사람들이 더 큰 피해를 봤다고 해서 일본의 전쟁 피해자들이 피해자가 아닌 건 아니다. 새파란색이 있다고 해서 덜 파란색이 파란색이 아닌 건 아니니까. (그리고 가족을 잃은 건 누구에게나 새파란 일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전쟁과 군국주의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아빠는 전쟁으로 아내를 잃고도 아내의 동생과 재혼하는 부도덕한 남자인데, 군수공장을 운영한다. 아내를 죽인 전쟁을 이용해 돈을 버는 그 모순이 인간의 삶이구나 싶기도 하고, 생존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게 올바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하여튼 이 아빠는 좋은 사람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물질만능주의적인 사람, 타인의 내면을 보지 못하고 표면적인 것만 보고 속단해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그려진다.
 
직접적으로 전쟁, 군국주의에 대해 비판적 시각이 드러나는 장면은 아빠 공장에서 생산된 전투기 캐노피들을 집에 가져와 늘어놓는 장면이다. 처음에는 전투기 캐노피를 보고 '저게 뭐지? 관인가?' 했을 정도로 캐노피는 흡사 관처럼 보이고, 수십 개의 캐노피가 쭉 늘어선 모습은 공동묘지처럼 보인다. 일본의 전투기하면 누구나 카미카제를 떠올릴테니,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줄 수 있는 이보다 더 직접적인 전쟁 비판, 군국주의 비판이 있을까.
 
주인공의 아빠가 처제와 재혼한 설정 또한 욕을 많이 먹는다. 이것 또한 매우 얄팍한 감상이라고 느껴졌다. 언젠가부터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컨텐츠에 너무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믿고, 컨텐츠를 검열하기 시작했다. 마치 아동용 컨텐츠처럼 컨텐츠의 주인공은 도덕적이어야 하고, 흠결이 있더라도 치명적인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오로지 단죄받고 공격받고 처벌받아야 한다고 믿는듯 하다. 이러한 생각과 연결되는 것이 바로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요즘 유행하는 같잖은 소리다. 유튜브나 웹툰의 '참교육' 서사가 인기있는 것도 비슷한 유행이다.  사람들이 점점 더 생각하기를 멈추고 멍청해지기를 선택하고 있다.
 
창작물에 나오는 사람들이 모두 도덕적일 필요는 없다. 실제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아빠가 처제와 재혼했다면 '어떻게 주인공의 아빠를 처제와 재혼시킬수가!!'라고 납작하게 비난하기 보다 '왜 굳이 주인공의 아빠를 처제와 재혼하는 설정을 넣었지?'하는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봐야 한다. 만약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불필요한 설정을 넣었네'하면 그만이지 '어떻게 처제와 재혼하는 남자가 나오는 영화를 보나요!!!'라고 목소리 높일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처제와 재혼하는 남자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보았다고 처제와의 재혼을 꿈꿀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
 
아무튼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해석을 찾아볼수록 이 영화가 꽤 재미있게 느껴진다. 탑의 세계를 지브리로 본 해석이 가장 흥미로웠다. 그렇다고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영화냐 하면 그렇진 않은데(상당히 불친절함) 그래도 간만에 불친절해서 재미있는 영화였다. 지브리 영화를 다 본 지브리 팬 남자친구는 자기가 좋아하는 곤 사토시 작품 같은 옛날 일본 애니메이션 느낌이 나서 좋았다고 했다. 결국 남친이나 나나 어려워서 좋았단 얘기 같다. 서사가 납작한 시대에 입체적이라 흥미로운 영화였다. 다음은 더욱 입체적일 것이 기대되는 'CINEMA' 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플라워 킬링 문'을 보고 오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