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34주차
예정일이 1월 극초반이라 1월에 아기도 나도 건강하게 순산하는 게 요즘의 목표다.
주위에서 12월생은 유치원까지 여러 불편함이 있대서
1월 예정일 맞춰 건강하게 태어나길 고대 중

임신을 하고 느낀 건 임신 출산 육아는 내 마음 속에 피어오르는 불안과의 끝없는 싸움이라는 거다.
태평한 성격의 사람들이 임출육에 스트레스를 별로 안 받고, 예민하거나 통제적인 사람들(=불안 높은 사람들)이 임출육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를 느낄 수 있음.

난 타고난 성정은 예민하고 불안하지만 평생 안 그러려고 노력해온 게 일상이 돼버려서
임신에서 불안을 느낄 때도 비슷하게 대처하고 있다.

임신하고 어떤 불안을 느끼는가.
우선 초산일 경우 난생 처음 임신을 해보므로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괜찮을까...?’라는 걱정을 품게 한다.

임신 초기
- 유산 안될까? 괜찮을까?
- 1차 기형아 검사 괜찮을까? 2차 기형아 검사는? 정밀 초음파는? 이상 없을까? (의사쌤이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떨림)

임신 중기
- 임신성 당뇨 아닐까? (임당 1차 검사 통과 못해서 2차 검사 전까지 무서웠음)
- 아기 발달 잘 되고 있나?

임신 후기
- 임신중독증 아닐까?
- 막달 사산...이런 게 있다고...? ㅠㅠ
- 아기 건강하게 태어날까?
- 출산 아플텐데 나 괜찮을까?
- 색전증? 이거 뭐야 대책도 없네? ㅠㅠ
- 아기 무사히 잘 낳을 수 있을까
- 낳았는데 아기한테 아픈 곳이 있으면 어쩌지?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을까?

알고리즘에 따라 내가 임산부인 걸 알고 뜨는 인스타 릴스들이 온갖 임신출산 관련 이슈, 전국의 아픈 산모와 아기를 보여주며 불안을 부추기는 것도 한 몫한다...몰랐고 몰라도 됐을 걸 너무 많이 알려줌.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불안하려면 끝없이 불안할 수 있는 과정
이것이 바로 임신과 출산인 것이다...

육아도 마찬가지일듯.
아기 낳고 나면 내가 어디서 떨어뜨려서 다치는 거 아니겠지, 어디 부딪혀서 다치는 거 아니겠지, 자폐 아니겠지, 개월 수에 맞게 발달 잘 되고 있는 거겠지.

자식이 크고 나면 밖에 혼자 돌아다니게 둬야 하는데
뭔일 있는 거 아니겠지, 힘든 거 아니겠지, 어디 아픈 거 아니겠지, 이상한 사람 만나는 거 아니겠지...

등등 하려면 평생할 수 있는 게 자식 걱정인듯.

이걸 왜 임신하고서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는지...ㅋㅋ

그래서 불안에 나 자신을 맞추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아기가 잘 있을까 불안한 일부 임산부들은 다니는 분만 병원 한 곳 외에 서브병원이란 걸 또 다닌다. 한 병원에서 의료보험을 적용해 초음파를 싸게 볼 수 있는 횟수가 한정적이기 때문에(초기나 후기 말고는 약 4주에 한번씩이라 생각보다 병원을 자주 안감) 격주나 매주 아기가 잘 있나 초음파를 보기 위해 산부인과를 여러 곳 다니는 것이다. 가까워서거나 대기가 짧아서 분만은 안하는 서브병원을 가는 경우도 있는듯. 하여튼 아기가 잘 있는지 초음파를 자주 보기 위해 서브병원을 만들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 건 맞는 것 같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난 태동이 거의 안 느껴지는 편인데도(=아기가 잘 있는지 알 수 없단 소리^^) 불안에 나를 맞추고 싶지 않아서 서브 병원을 만들지도 않았고, 병원은 필수 정기검진으로 오랄 때만 갔다.

비슷하게 불안한 임신부들을 위한 도구로 하이베베라는 의료기기가 있다. 집에서 배에 초음파 젤을 바르고 하이베베를 대면 아기 심장 박동을 측정해주고 들을 수 있는 기계다. 10만원 정도 하는 것 같은데, 이것도 사서 주기적으로 집에서 아기 심장 소리를 들으며 불안을 해소하는  임신부들이 있는듯. 나도 솔깃했지만 이 또한 불안에 나를 맞추는 것 같아서 안 샀다.

그렇게 잘 참았다만
오늘은 처음으로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정기 검진이 아닌데 갑작스럽게 산부인과를 다녀왔다.

새벽 늦게 잠들어서 서너시간쯤 잤을까, 자고 있었는데도 엄청난 어지러움이 느껴지는 거다. 20대 초중반에 빈혈이 있어서 지하철역을 걷다 어지러워서 벤치에 앉아버리거나, 병원에서 건강 검진 중에 피를 뽑고 어지러워 순간 바닥에 주저 앉아버린 적은 있지만 누워서 잠시 안정을 취하니 금방 회복됐었다.

그런데 분명히 누워서 자고 있었는데도 어지럽고 천장이 핑핑 도는 경험은 처음이었고, 일어나보니 어지러움은 더 심해졌다. 다시 누워도 어지러움은 계속됐다.

나는 ‘임신 34주 어지러움’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철분 부족일 거란 내용이 많았다. 지난 주에 갔던 산부인과에서 이제부터는 철분제를 정말 잘 챙겨먹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기에 후기라 피가 많이 필요하긴 하구나 싶었다. 그래서 자기 직전에 철분제를 먹고 잠들었지만 철분제를 한 알 더 먹었다. 그런데도 어지러움이 가라앉지 않았다. 검색을 더 하다 무서운 내용을 발견했다.

‘임신중독증 초기 증상 : 어지러움, 두통‘

친언니가 조카를 낳을 때 자연분만을 준비 중이었는데, 임신 37주에 병원에 갔다가 혈압을 재보니 갑자기 혈압이 160이어서, 급성 임신중독증 진단을 받고 응급제왕으로 출산을 했다.

언니는 임신중독증에 엄마, 아빠도 모두 고혈압이 있어서 나는 임신 초기부터 임신중독증을 걱정해왔다.

다행히 지난 주 소변 검사에선 임신중독증이 아니었는데...혹시 급성인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서 우선 혈압을 재보기로 했다.

근처에 사는 아빠한테 부모님댁에 있는 혈압계를 가지고 와달라고 했다. 어지럽다고 말하니 아빠는 그럼 그냥 병원에 바로 가보자고 했다. 나도 확실히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러자고 했다. 아빠가 가져온 혈압계는 작동하지 않고 고장나 있어서, 불안한 마음으로 막히는 길 50분을 차로 달려 병원에 도착했다.

이때 쯤엔 어지러움은 나아져 있었다. 처음 병원에 도착했을 때 잰 혈압이 150이 넘어 식겁했는데, 다시 안정을 취하다 재니 혈압이 130대로 떨어졌다. 다행히 급성 임신중독증도 아니었고, 초음파로 아기가 잘 있는 모습도 확인하고 돌아왔다.

역시 아기와 나 모두 건강하게 출산하기 전까지는 불안을 늦출 수 없는 게 임신 과정이다.

그와중에 회사에 간 엄마는 내가 아침에 했던 혈압계 있냐는 전화에 놀라 아빠한테 병원에 잘 데리고 갔는지, 문제 없는지 전화를 계속 몇 통이나 하면서 부모는 자식 걱정을 평생 놓을 수 없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 (상대적으로 불안이 낮은 남편은 그냥 내가 연락하기 전까지 잘 기다림 ㅎㅎ)

아무튼 결론은, 결국 출산 6주를 남기고 혈압계를 사고 말았다는 결론...
병원에서 임신중독증 여부를 알 수 있는 소변 검사지도 챙겨주셔서 받아옴. 이제 며칠에 한번씩은 이것들로 체크하며 임신중독증에 대한 불안을 다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