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서 가장 많이 달라진 건 같이 사는 사람이 부모님에서 남편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결혼 전의 삶과는 많이 달라졌다.
내 엄마는 감정 기복이 심했다. 나이가 들면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작은 일에도 버튼이 눌려 불같이 화를 내기 일쑤였다. 엄마의 화는 피하려고 해도 어떻게든 따라오고, 잘못했다고 해도 끝나지 않고, 어떻게든 끝까지 사람을 괴롭혀 상대방이 같이 폭발하게 만든 후에야 잠시 멈춘다.
엄마의 화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폭탄을 터지게 하는 상대가 나일 때도 있었지만, 언니나 아빠일 때도 있었기 때문에 폭탄이 터지는 일은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있는 이벤트였다. 나나 언니나 아빠는 폭탄이 자기 때문에 터진 게 아니면 몸을 잔뜩 수구린 채 나 몰라라 방관하곤 했다. 폭탄은 직빵으로 맞는 사람도 힘들게 했지만, 피하려고 잔뜩 수구리고 있는 사람들도 힘들게 했다.
엄마의 격한 감정은 평생을 겪어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엄마를 이해하려 평생 노력했지만, 머리로는 이해해도 폭탄이 터지는 순간이 오면 내 감정 또한 끝없이 격해졌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도 엄마랑 싸울 땐 울고 불고 소리를 지르게 됐다. 그럴 때면 엄마는 내가 엄마를 닮아 성격이 나쁘다고 했지만, 내 감정을 터지게 만드는 건 9할 이상이 엄마였다.
하지만 엄마는 가족을 위해 묵묵히 거의 모든 집안일을 했으며, 서른이 넘은 딸의 끼니를 챙기기 위해 점심시간이면 집에 들러 음식을 주고 가곤 했다. 엄마의 큰 분노와 그 못지 않게 큰 애정 사이에서, 나는 엄마가 미울 때도 맘껏 미워할 수 없었다.
언니는 이런 우리와 엄마와의 관계를 웬만하면 남편에게 들키지 말라고 했다. 물론 형부도 우리 엄마의 그런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있지만, 형부와는 그런 얘기를 드러내놓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형부가 더 자세히 알면 엄마를 좋게 보지 않을 수도 있고, 언니나 우리 집을 우습게 볼까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형부 부모님은 저런 감정적인 문제가 있는 분들이 아니셨기 때문에 언니는 형부에게 우리 가족의 모습을 이해받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와 언니는 성격도 연애 방식도 많이 달랐다. 나는 남편이 남자친구일 때부터 비밀이 거의 없었다. 이 블로그도 알려줬는데, 남편은 10년 넘게 내 온갖 찌질한 속내를 담아온 이 블로그를 보고 내가 더 좋아졌다고 했다. 나는 그런 남편을 믿고 연애 때부터 엄마에게 폭탄을 맞은 날엔 남편을 불러 엉엉 울고 위로를 받곤 했다. 결혼 전 가까이 살아 종종 우리 집을 들락거렸던 남편은 엄마의 폭탄이 터지는 모습도 여러 번 직접 보았다. 신혼집 입주 전날까지도 그 모습을 봤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다행히 어린 시절 우리 엄마 보다 더한 자신의 아버지를 겪어본 남편(남편 부모님은 이혼했다)은 우리 가족의 이상한 풍경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주었고, 나를 세상 누구보다 더 잘 위로해주었다.
엄마랑 따로 살게 되면서 내 삶엔 안정감이 생겼다.
더는 엄마의 폭탄이 터질까 조마조마해하지 않아도 되고, 내 집에서는 내가 화내지 않으면 먼저 화낼 사람이 없다. 남편과 있을 때 먼저 화를 내는 건 나인데, 보통은 큰일이 아니기에 화를 낸 후에 잘 풀기도 한다.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고, 서로를 자주 안는다. 속으로 아이를 낳고 나서도 이렇게 안정적으로 평생 살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곤 한다.
어버이날에 엄마 아빠에게 임신 소식을 알렸다. (임신 얘기는 따로 쓰겠음.) 그 사실을 안 엄마는 즐겁게 식사를 하고 나와 주차장에서 나랑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남편한테는 안 들리게 "이제 너도 성격 좀 죽여"라며 또 내 속을 뒤집어놨다. '성격 죽이라고? 내 성격이 어때서? 내 성격을 더럽게 만드는 건 99% 엄마야. 엄마가 나를 그렇게 만들잖아. 미쳐버리게. 미쳐 돌아버리게.'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그렇게 말해 엄마의 버튼을 누를 생각은 없었으므로, 대신 “응. 엄마도 아빠랑 잘 지내.“ 라고 소심하게 반격했다. 엄마는 내가 아는 걸 모르지만 며칠 전 엄마의 폭탄이 아빠에게 또 터졌다는 걸 아빠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기다리던 좋은 소식을 전한 이 날 마저 나에게 미운 말을 하는 엄마를 속으로 원망하면서 나는 저렇게 말했다.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엄마를 닮아 성격이 더럽단 말이 어쩌면 맞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내 엄마와 나의 대화를 듣지 못한 아빠가 나를 안아주면서 "딸, 사랑해"라고 말해주어서 뭉클한 감정이 들었고, 앞으로 평생 엄마의 폭탄을 혼자 오롯이 맞으며 살아가야할 아빠에 대한 연민을 느끼며 부모님과 헤어졌다.
하여튼, 남편과 같이 사는 것 못지 않게, 엄마와 따로사는 건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고 있다. 엄마의 화를 겪지 않아도 되기에, 엄마의 희생에 온전히 고마워하거나, 사랑할 수 있다. 우리는 진작 따로 살아야 했던 것 같다. 나도 엄마도 서로를 놓지 못해 서로 상처를 주며 오랫동안 힘들게 살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선택한 사람, 나와 성격이 맞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정말 큰 행복이다. 이 큰 행복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지. 엄마 같은 폭탄을 품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엄마가 말한대로 엄마의 성격을 닮았다는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야지. 그렇게 살아야지.
엄마의 시한폭탄
2025. 6. 9. 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