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이 많다.
친구들과 얘기를 해보면 시댁에 대해 걱정하는 친구들이 많다. 결혼을 해서 시댁이 생기고 시댁에 잘해야 하는 의무가 생기는 게 두렵고 싫다는 게 30대 중반 내 또래 여자들이 많이들 하는 생각인 것 같다.
우리 엄마는 극악의 시집살이를 수십 년간 당해 홧병이 생겼다. 우리 할머니는 ‘시짜’의 끝판왕 정도 되는 사람이고, 엄마는 시댁 어른들께 잘 하는 게 도리라고 알고 자란 답답한 사람이라 그 모진 시집살이를 수십 년간 찍 소리도 못내고 당했다. 아빠는? 방관자였다. 엄마의 동네 친구들이 아빠의 현재 모습만 보고 ‘폭싹 속았수다’의 관식이라고 했다는데, 나랑 언니가 바로 “아빠는 관식이가 아니라 영범이지.”라고 했을 정도로.
언니는 큰딸이라 엄마가 어떤 시집살이를 당했는지를 제일 잘 안다. 그래서 언니는 첫 손주인 언니를 예뻐해서 언니 앞으로 적금까지 부어준 할머니를 싫어한다.
언니는 결혼할 때 모르긴 몰라도 시부모님이 시집살이를 시킬 분들이신지를 좀 본 것 같다. 언니 시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희생적인 분이시지만, 시집살이는 시키지 않는 분이시다. 물론 그 배경에는 효자와는 아주 거리가 먼 형부가 있다. 아들이 효자가 아니면, 시어머니도 아들과 며느리를 어려워하게 마련이니까. 사람들은 시댁에서 받는 게 많으면 시집살이를 하게 된다고 생각하던데...시댁에서 서울 좋은 동네 아파트는 물론 생활비까지 받으면서도 시집살이는 전혀 안하는 사람, 그게 저희 언니입니다...언니네 시댁은 김장도 안하고, 제사도 안 지내고, 아들과 며느리에게 연락도 거의 안한다. 그저 아낌없이 주시기만 할 뿐.
언니는 그 관계에 형부가 서운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 신혼 초부터 우리 엄마아빠를 단속시켰다. 엄마가 원하는 그놈의 ‘도리’를 형부에게 강요하지 못하게 선을 살벌하게 그었다. 엄마와 아빠가 형부한테 직접 연락을 하지 못하게 했고, 우리 가족 단톡방엔 당연히 초대하지 않았으며 결혼한지 5년이 넘은 지금도 단톡방에 형부는 없다. “사위 보기가 힘들다”, “사위랑 친하지가 않다”고 서운해하던 엄마(아빠는 별 생각 없음)는 엄청난 시집살이의 피해자답게 “엄마가 사위 만나면 나도 시어머니 봐야 돼.”라는 언니의 말에 설득돼버렸고, 사위와의 데면데면한 관계를 받아들였다. 그와중에 언니한테 “시어머니한테 전화드려야 하지 않냐”, “시댁에는 갔냐” 등 시댁에 잘하라고 잔소리하다가 한소리 듣고 정신차린 건 덤.
나는 엄마의 시집살이를 언니만큼은 아니어도 꽤 봐왔지만, 내가 시집살이를 당할 거라는 걱정은 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엄마를 보면서 ‘왜 아무말도 못하고 저걸 당하지? 나라면 바로 개길텐데.‘ 라고 생각하며 수십 년을 시뮬레이션 해왔기 때문일까? 미움 받을 용기는 그 누구보다 있어서일까? 다니던 회사 사장과 소리지르며 싸울 정도로 전투력이 넘쳐나서 그런걸까? 그 어떤 악덕 시어머니도 나를 시집살이 시킬 수는 없을 거고 그런 꼴을 두고 볼 병신 같은 남자(아빠 미안)라면 사랑할 일이 없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그리고 그렇게 됐다.
남편은 홀어머니에 외아들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시집살이의 조건이 완벽하게 세팅돼있는. 그런데 내 시어머니는 한국의 보통 시어머니들과 좀 다르다. mbti가 INTP시라는데 전형적인 그 성격 같다. 남에게 큰 관심이 없고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하심. 아들에게 깊은 사랑을 갖고 계시지만 아들과 자주 소통하거나 만나길 바라진 않으신다. 혼자 자연에서 텃밭 가꾸는 걸 제일 좋아하시는 분이다.
결혼 전에 엄마는 나보고 시어머니께 뭘 해야하지 않냐,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지 않냐 같은 말을 자주 해댔다. 그러면 나는 “남친이 안해도 된다는데? 그런 거 안 바라신대.” 라고 전했고, 엄마는 “말이 그런거지 바라실걸?” 이라고 엄마의 도리 중심적 사고에 기반한 말을 하며 나에게 잔소리를 해댔다.
그랬던 엄마조차 상견례에서 시어머니를 보고 “너 시집살이 못 시키실 것 같아 안심”이라고 할 정도로 시어머니는 그런 쪽으로는 무해한 분이시다. 뇌에 방사선 치료를 받느라 집에서 먼 대학병원을 다니시면서도 아들한테 같이 가달라는 말 한 번 없이 택시를 타고 다니시고, 아들한테 용돈 한번 달라고 한 적이 없으신 분.
시어머니는 결혼하고도 한참동안 내 전화번호를 모르셨다. 물어보신 적도 없고, 연락은 다 남편을 통해서만 했다. 그러다 내 첫 생일을 챙겨주신다고 밥을 사주시면서 용돈을 두둑히 주셔서, 내가 남편에게 어머니 번호를 물어봐 문자로 감사인사를 드리면서 어머니와 번호를 교환하게 됐다. (참고로 우리 엄마 아빠는 아직도 남편 번호 모름. 큰 사위로 학습돼서 물어보지도 않음ㅋㅋㅋ)
그후로 임신을 하게 되면서 시어머니께 몇 달 동안 한두번 정도 안부를 묻는 연락이 왔는데, 어떤 시부모님들처럼 나한테 먼저 연락을 바라시거나 하는 경우는 없어서 나도 별 부담 없이 전화가 오면 받고 있다. 남편이랑 통화하다가 날 바꿔달라셔서 잠깐 통화하는 경우는 있지만, 대부분은 남편과만 통화를 하신다.
시어머니가 나한테 뭔가를 바라지 않으시고 늘 잘해주시니 나도 시어머니가 마음 속으로 좋아진다. 좋은 관계라는 건 이렇게 서서히 서로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거지, 한쪽이 빈번한 만남이나 연락을 강요한다고 형성될 수는 없는 것 같다.
물론 아직 결혼한지 1년도 안됐으니 시어머니가 정말 좋은 분이실지 아닐지는 아직 모르는 거라고 할 사람들도 있겠지. 근데 난 시어머니가 어느날 갑자기 돌변해서 시집살이를 시키셔도 안 당할 자신이 있다. 아니 나 자신보다 남편을 믿는다고 해야하나? 남편이 어떤 경우에도 어머니 보다 자기가 나와 만든 이 가정을 더 소중히 여길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시집살이가 걱정되지 않는다. 물론, 당연히 나부터도 내 부모님 보다 남편과 만든 내 가정이 더 소중하다.
엄마는 엄마가 육십 평생 모진 시집살이를 당한 대신, 그걸 보고 자란 딸들이 똑똑하게 시집살이를 안 당하고 산다며 기뻐한다. 나도 엄마를 걱정하지 않게 해줄 수 있어서, 또 남편과 우리 둘 사이의 문제 아닌 걸로는 부딪힐 일이 없어서 행복하다.
행복한 결혼생활의 한 가지 조건인 것 같다. 내가 태어난 원가정 보다 내가 선택해서 만든 가정을 더 소중히 여길 것. 결혼하는 두 사람이 그 마음을 굳게 가지고 있다면 고부갈등도 장서갈등도 그저 남 얘기일 거라고 생각한다. 문득 연애 때 남편이 했던 가장 로맨틱한 말이 생각나네. “난 엄마 보다 네가 더 좋은데?”
결혼은 내 엄마, 아빠 보다 더 좋은 사람과 해야한다.
https://youtu.be/vOOYsBhzTKg?si=lWA8ki0tWo1rj_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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