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을 그냥 떠나보내기는 아쉽다.
그래서 일요일 밤에는 종종 영화를 보게 된다.
일요일 밤, 게임하던 남편을 불러내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았다.
아주 유명한 오래된 영화지만 둘 다 본 적이 없었다.

이 영화를 보자고 하니까
남편이 “이거 여자들이 좋아하는 영화잖아”라고 해서
난 “아니야, 다들 좋아하는 영화야”라고 대답했다.
내 왓챠피디아를 보니 남여 가릴 것 없이 친구들 8명이 별점 4~5점을 준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옛날에 내가 좋아하던 남자도 이 영화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었다.

그 남자한테 차였을 때 이별의 슬픔을 잊으려고 일주일 동안 영화만 수십 편 봤었는데, 그때도 이 영화는 안 봤다. 보면 잊는 데 도움이 안 됐을 테니까.

지금은 그런 옛사랑은 아쉬움 없이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봤다.

여튼 그렇게 10년 넘게 묵혀서 본 영화는 참 좋았다.

영화 속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

츠네오의 숏컷 섹파는 어쩌면 츠네오를 좋아하는 것 같지만 선은 넘지 않는다. 카나에의 소식을 전해주면서 어쩌면 카나에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까지 알려준다. 이게 무슨 츠네오를 좋아하는 사람의 행동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가끔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런 얘기를 하면서도 옆에 있는 사랑도 있다. 츠네오는 혼자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만들어서 쳐먹고 섹파 브래지어 끈도 안 쩜매주는 걸 보면 섹파를 안 사랑하고 그 여자도 그걸 아니까.

카나에의 사랑은 좀 애매하다. 츠네오를 사랑한걸까 아니면 장애인한테 졌다는 승부욕 때문에 불타오른 마음일까. 하여튼 츠네오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도와주고 츠네오의 행동에 무너지는 게 사랑의 증거일지도 모르지.

조제의 사랑은 투명하고 성숙하다. 처음에는 필요해서 츠네오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 덕분에 츠네오가 없어도 되는 사람이 된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명대사가 생각나는 사랑이다.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person. 조제는 츠네오에게 네가 있으니 휠체어는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실은 츠네오를 만나고 세상에 나가면서 언제든 휠체어를 사서 밖으로 나갈 용기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조제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아마 츠네오와 헤어지고 나서도 사회복지 공무원이든, 인터넷으로 만난 남자든 누구든 괜찮은 남자 꼬셔서 잘 살거다. 조제가 나쁜 남자 만날 걱정은 하지 말자. 나쁜 남자는 언제든 칼을 들고 다니며 찌를 준비가 된 여자한텐 안 붙는다. 쓰레기 버려준다는 아저씨도 조제 의사를 물어보고 행동하잖아.

조제 할머니의 사랑은 남이 보기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깊은 사랑이다. 조제가 너무 소중해서 깨질까봐 두려운 마음. 조제를 어떻게든 지키고 싶은 마음. 성숙하진 않지만 깊은 사랑이지.

츠네오의 사랑은 무엇인가. 내가 필요한 상대에게 발현되는 구원자 컴플렉스에 가깝다. 츠네오는 나 없이는 세상과 연결되지 못하는 조제에게 계속 마음이 간다. 예쁜 인싸 카나에보단, 내가 필요한 조제에게 끌리는 타입. 하지만 조제는 함께할수록 츠네오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때 우연히 마주친 카나에는 츠네오의 변심에 상처를 받아 취업도 포기하고 자포자기 상태로 판촉 모델 알바나 하는 신세. 즉 츠네오가 필요한 불쌍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츠네오가 이제 안 불쌍해진 조제에서 불쌍한 카나에로 갈아타고 싶어진 건 당연지사다. 카나에가 취업 성공해서 잘 나가는 대기업 사원으로 츠네오를 만났으면 츠네오는 결코 안 갈아탔을거야. ㅋㅋㅋ
하여튼 츠네오의 사랑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곁에 있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조제는 츠네오가 언젠가 떠날 걸 알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결말이 참 좋았다. 조제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장보는 모습이 굉장히 해피엔딩이었다. 조제가 츠네오가 찾아와야만 만날 수 있는 수동적 존재에서, 자기가 원하면 누구든 만날 수 있는 능동적 존재로 변화한 게 참 좋았다. 그래서 난 츠네오가 도망쳤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도망치는 사람을 보내준다기엔 조제도 쫓아가지 않고 그냥 보내주잖아. 둘은 그냥 여느 연인과 마찬가지고 마음이 식어 헤어지는 것처럼 헤어졌고, 그래서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