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에 결혼식을 올리고 남편이 살던 집의 보증금 문제로 3월 말이 되어서야 같이 살게 되었다. 신혼 생활을 1년 정도 즐기면서 산전 검사를 받고 천천히 아기를 가질 계획이었는데 같이 살자마자 바로 아기가 생겼다.

친구들에게 피임을 하지 않아도 아기는 쉽게 생기지 않는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몇 년 전 재미로 사주를 두 번 봤을 때 두 사람 모두 나에게 “자식을 갖기 힘든 사주다, 난임 병원을 다녀야 할 거다“(1명은 난임 병원 다니면 생길 거라 했고, 1명은 병원 다녀도 어려워서 포기하게 될 거라 했음.)라고 말을 했던 터라 이렇게 아기가 금방 생길 줄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남편이랑 내가 그렇게 어린 나이도 아닌데 한 번에 바로 생기다니.

임신 확인과 산부인과 방문

상상도 못했기에 임신 확인 전날까지도 집에서 신나게 맥주를 마셨다. 남편이 만들어준 양념 치킨과 함께. 술 안 좋아하는 남편은 안 마시는데 혼자 신나게 마셨다. 그리고 다음 날 남편과 어딜 다녀오는 길에 문득 생리를 안한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는 생각에 임신테스트기를 하나 사서 집으로 가자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검사 한번 해보는 거지 임신일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와서 테스트기를 하자마자 빼도 박도 못할 선명한 두 줄이 떴다. 어??? 너무 얼떨떨한 마음에 남편에게 테스트기를 보여줬고, 둘이 손을 마주잡고 일단 놀라하면서 좋아했다.

마침 5월 초 연휴 기간이었고, 다음 날부터 가족 여행과 회사 워크숍이 예정되어 있어서 곧장 병원에 갈 수는 없었다. 남편은 직업 특성 상 연휴에도 회사 근무가 있어서 가족 여행은 나 혼자 가야했다. 아직 테스트기만 확인한 터라 같이 여행을 간 엄마, 아빠, 언니, 형부, 조카에게도 임신 사실을 알리기는 시기상조였다. 다들 맥주를 좋아하는 내가 왜 맥주를 안 마시는지 좀 이상하게 여겼지만 적당히 둘러대고 여행 내내 맥주를 한 잔도 마시지 않고 여행을 잘 다녀왔다.

여행과 워크숍을 무사히 다녀와서 동네 산부인과에 예약을 하고 남편과 방문했다. 처음 만난 의사 선생님의 첫 질문은 “자연임신이죠?” 였다. 내가 나이가 꽤 있어서도 있지만 요즘 정말 난임이나 시험관 시술로 아기가 생기는 경우가 많구나 싶었다. 산부인과에서 배 초음파를 통해 아기집과 곧 아기가 될 동그란 세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기 심장소리도 들었다. 나이든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은 꽤나 쿨하면서도 친절하셔서 좋았다. 술만 아니면 회든 뭐든 다 먹어도 된다고 하셨다.

임신 초기의 변화

보건소에 가서 임산부 등록을 하고, 뱃지와 엽산을 받았다. 엽산을 챙겨먹기 시작했다. 평생 영양제를 챙겨먹어본 적이 없는데, 아기의 장기가 잘 형성되길 바라며 엽산을 매일 꼬박꼬박 챙겨먹게 되었다.

임신 초기에도 다행히 엄마와 언니처럼 입덧이 없었다. 그대신 시도때도 없이 졸음이 쏟아졌다. 일이 자유로운 편이라 낮 1시 정도부터 3시 정도까지는 매일 자고 일어나서 오후에 일을 하곤 했다. 저녁에도 야구를 보다 스르르 잠들었다. 자도 자도 졸음이 쏟아졌다. 몸이 아기의 장기를 만드느라 꽤나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입덧이 없어 음식을 가리진 않았지만 속이 늘 더부룩하고 안 좋은 느낌이었다. 탄산수를 사서 물 대신 마셨다. 그렇게 해야 소화가 된 느낌이 들었다. 시원한 아이스크림도 당겼다. 하겐다즈를 사놓고 먹었다.

방광이 커지는 자궁에 눌리면서 소변이 자꾸 마려워졌다.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었고, 한동안은 방광염 초기 같은 잔뇨감이 느껴져서 불편했다. 다행히 산부인과에서 검사해본 결과 방광염 수치는 낮아서 따로 약은 안 먹고 물을 더 많이 챙겨마시면서 잔뇨감을 이겨냈다.

감정 기복이 생겼다. 어느 날은 남편이 내가 먹어도 된다고 한 줄 착각하고 내 하겐다즈를 먹어버려서 엄청 화를 냈다. 남편은 그 길로 바로 나가서 하겐다즈를 다시 사왔다.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별 시덥잖은 이유로 울기도 했다. 임신 중기에 접어든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나는 웬만해선 잘 울지 않는 mbti T형 인간이었는데, 인터넷을 보다가 뜨는 짧은 감동 스토리나 슬픈 이야기에도 눈물이 쏟아졌다. F형 인간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호르몬의 작용이란 무서운 것.

냄새에 엄청 민감해지기도 했다. 난 평소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편인데, 임신 초기에는 모든 냄새가 수십 배로 증폭돼서 나는 느낌이었다. 특히 인공적인 향이 너무 싫어서 향이 있는 주방 세제와 섬유 유연제를 모두 무향으로 바꿨다. 주방 세제로 설거지한 그릇에서도 세제 냄새가 나서 도저히 맡을 수가 없었다. 남편은 샤워할 때 내가 갖다놓은 헤라 비누를 썼는데, 이 냄새도 너무 지독하게 느껴져서 당장 버리고 남편에게는 내가 쓰는 아베다 바디워시를 쓰게 시켰다. 록시땅 핸드워시도 향이 너무 거슬려서 냄새가 옅은 핸드워시를 새로 뜯어썼다. 그뿐인가. 비가 오는 날엔 창문을 열지 않아도 물 비린내로 비가 오는 걸 알 수 있었다. 화장실은 조금만 청소를 하지 않아도 물 비린내가 나서 남편에게 청소를 시켰다.

냄새 뿐 아니라 감각도 예민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수십 년간 잘만 마시던 플라스틱 생수병의 플라스틱 맛(?), 느낌(?)이 거슬려져서 마시기가 힘들어졌다. 유리병을 사서 직접 보리차를 끓여먹게 되었다. 밑반찬을 거의 먹지 않았었는데,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겠다는 느낌이 들어 엄마에게 부탁해 한식 밑반찬을 받아 먹기 시작했다.

입 주위 피부가 웅이 아버지처럼 동그랗게 각질이 일어나서 뜨기 시작했고, 그 부분은 착색된 것처럼 색도 변해서 한동안 스트레스였다. 산부인과에서 연고를 처방받아 발랐는데 효과는 없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나같은 증상이 나타난 임산부들이 많았는데, 출산하면 싹 낫는다고 했다. 그래서 ‘이대로 남은 임신기간을 웅이 아버지로 살아야 하는군’하며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때 아이허브에서 사놓고 겨울에 립밤 대용으로 바르던 ‘아쿠아퍼 침독 크림’이 생각나서 혹시나 하고 착색이 일어난 건조한 입 주위에 발라줬다. 근데!!! 연고도 효과 없던 웅이 아버지 부위가 2-3번만 발랐는데 싹 낫고 착색도 사라졌다;;; 이렇게 놀라울수가... 저와 같은 증상이 있으신 분들은 꼭 아쿠아퍼 침독 크림(베이비 오인트먼트)를 발라보세요.

이거임.


다행히 임신 중기에 들어서자 초기에 나타났던 많은 증상들이 사라지거나 완화됐다. 이제 좀 컨디션이 괜찮아졌다.

임신을 알리고 나서

보통 임신은 완전 초기가 지나고 12주 안정기쯤은 접어들어야 주위에 알리는 게 맞다고들 한다. 그런데 아직 초기였지만 내가 임신을 확인하고 다음 주, 그러니까 임신 6주차쯤 어버이날이 있어서, 어버이날이 지난 주말에 양가 부모님들께 어버이날 선물로 임신 사실을 알리기로 했다. 병원에서 받은 초음파 사진을 복사해 카드에 붙여서 부모님들께 카드를 드렸다. 점심을 먹고 간 카페에서 카드를 보신 시어머니는 눈에 눈물이 고이셨다. 그만큼 엄청 좋아하셨고 할머니가 돼서 기쁘다고 하셨다. 저녁에 만난 엄마 아빠도 장어집에서 카드를 보곤 정말 기뻐하셨다.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용한 절에 놀러가게 되어 시주를 하며 내 임신을 소원으로 빌었다는 엄마 아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도 소원이 이루어져서 좋다고 했다.

친구들에게는 좀 더 시간이 지나고서 이야기를 전했다. 친구 K는 왠지 느낌이 왔었다고 했고, 임산부인 친구 J는 사과 꿈을 꿨는데 네 꿈이었나 보라고 했다. 내 태몽도 사과와 밤이었는데, J가 꿔준 게 우리 아기 태몽이었을까? 나의 맥주 메이트 친구 E는 이제 네가 결혼할 때와는 달리 정말 다른 세계로 떠나는 것 같다면서, 같이 맥주를 마셔야 하니 모유 수유는 하지 말라는 웃긴 말을 남겼다. ㅋㅋㅋ 우리 아기에게 ‘대상이’라는 또다른 태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친구 Y는 우리집에 놀러오면서 처음으로 아기 옷을 사다줬다! 내년까지 잘 보관해뒀다가 입힐게~! 친구들에게 차와 영양제도 선물로 받았다. 뭐 한 것도 없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았다.

매달 가게된 산부인과

산부인과는 4-5주 정도 간격을 두고 매달 1번 정도씩 가게 되었다. 산부인과를 내 생각보다 가끔 가게 되다보니, 갈 때마다 아기가 잘 있나 잘 자라고 있나 걱정이 됐다. 다행히 아기는 지금까지 잘 자라주었다. 방문할 때마다 초음파로 팔 다리의 형태가 살짝 생긴 귀여운 젤리곰의 모습도, 뼈가 생겨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초음파가 없었던 시절 엄마들은 얼마나 막연한 마음으로 뱃속 아기를 기다렸을까.

필수인 1차, 2차 기형아 검사도 거쳤다. 나이가 딱 노산의 초입(만 35세)이라서 아기가 어딘가 안 좋을까봐 매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병원에 갔다. 생길 때부터 효자였던 우리 아기는 다행히 갈 때마다 문제 없다는 말을 듣게 해주었다. 만 35세여서 다운증후군 등 여러 유전적 결함을 높은 확률로 판별해준다는 니프티 검사도 받을까 고민했는데, 기형아 검사가 모두 저위험군으로 나오기도 했고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도 니프티 검사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권유도 안 하셔서 그냥 안 받고 넘어갔다.

계획대로 정밀초음파 검사부터는 좀 멀지만 분만할 산부인과로 병원을 옮겼다. 원래 병원도 의사 선생님이 참 좋으셔서 병원을 옮기기 아쉽기도 했지만, 혹시 모를 안전을 위해 아는 분이 계신 더 규모가 큰 산부인과로 옮겼다.

옮긴 산부인과는 어릴 때 살던 동네에 있는 산부인과인데, 내 초등학교 친구의 어머니 집안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친구의 어머니이자 우리 엄마와도 친한 아줌마 또한 병원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계신다. 그래서 사촌언니도, 언니도 모두 그 병원에서 아기를 낳고 병원에서 운영하는 산후조리원에서 산후조리를 했다. 언니가 강력 추천한, 조카를 받아주신 의사선생님께 예약을 하고 진료를 받게 되었다.

며칠 전에는 정밀 초음파를 받으러 갔는데, 받으러 가기 전 여러 정밀 초음파 후기들을 보고 떨었는데 다행히 아기는 모두 정상이며 잘 자라고 있다고 했다. 다들 20주 내외로 태동을 느낀다던데, 난 왜 21주차인데도 전혀 태동이 안 느껴지는 걸까 걱정이 됐었다. 아기 앞에 태반이 있고, 태반 앞에 내 뱃살이 있어서였다. ㅎㅎㅎ 다행. 초음파로 보니 아기는 입도 뻐끔뻐끔 하면서 잘만 움직이고 있었다.

딸일까, 아들일까?

16주차에는 병원에서 초음파를 하며 아기의 성별을 알게 되었다. “다리 사이 보이시죠? 아들이네요.” 아들이었다. ㅋㅋㅋ 나와 시어머니는 딸을 바랐고, 남편과 엄마는 아들을 자랐는데, 아들을 바라며 절에 시주까지 한 우리 엄마 승! 아들이라니까 좋아하던 윤 여사...엄마는 이미 손녀가 있어서 손자를 갖고 싶었다지만, 난 알아...엄마가 내가 아들일 줄 알고 낳았다는 것도, 내가 딸인 걸 확인하자마자 아기 얼굴도 보지 않고 나간 친할아버지를 보며 아들 못 낳아서 서러웠을 것도. 딸이 아닌 게 난 좀 아쉬웠지만 아들이라 엄마의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어 그래도 좋았다.

내가 딸을 갖고 싶었던 이유는
1. 내가 저질 체력이라 아들보다 딸을 키우기가 더 수월할 것 같았다.
2. 금쪽 같은 내 새끼 애청자라 금쪽이 비율이 아들이 훨씬 높아서 아들이 기질 상 훈육이 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집에도 남자형제가 없고 남자 조카도 없어서 어린 남자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무지한 상태라 여러 모로 걱정이 됐다.
3. 아들은 엄마를 닮는다던데 내 성격 닮았는데 남자이기까지 하면 부모로서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아들이라 내가 10대, 20대 초반에 갖고 있던 충동성과 즉흥성이 여기서 더 극대화된다면 참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난 mbti로 치면 범죄자가 제일 많다는 ESTP라서...ㅋㅋㅋ

남편이 아들을 갖고 싶었던 이유는
1. 세상이 험해서 딸은 걱정된다. 아들은 그냥 풀어놔도 걱정이 안되는데 딸은 너무 걱정될 것 같다.
2. 딸은 아빠를 닮는다는데 내 성격을 닮은데다 여자이기까지하면 아이가 살아가기가 힘들 것 같다. (남편은 mbti INFJ임.)

결론적으로 둘 다 자기 성격 닮은 이성 자식이 태어날까봐 걱정했다는...ㅋㅋㅋ

아가야 엄마 아빠의 좋은 점만 쏙쏙 닮아서 몸과 정신 모두 건강하게 태어나라~

아무튼 요즘 나는 도서관에서 육아서도 많이 빌려보고 남편과는 아들이 나중에 이러면 어떻게 할까(게임 더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 같은) 시뮬레이션도 해보면서 즐겁게 아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 출산까지는 절반의 대장정이 남아있다. 출산 후기를 찾아볼수록 너무 무섭지만...내 엄마도, 엄마의 엄마도, 엄마의 엄마의 엄마도, 수천년 간 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다들 잘 해온 일이라는 걸 떠올려보면 용기가 생긴다. 출산의 그날까지 나와 아기에게 아무 문제가 없기를, 모쪼록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기만을 매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