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의 영화는 열두편째입니다.


이 영화는 홍상수의 기존 영화들과 비슷하면서 다릅니다. 

제가 배경을 알고 있어서 다르게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 홍상수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아주 객관적으로 표현해냅니다. 그는 자기 객관화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 내면의 찌질함을 아주 솔직하게 드러내는 감독입니다.

그동안 홍상수는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할뿐, 그런 자신에 대한 이해나 공감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의 찌질함을 정당화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조금 다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홍상수가 세간에 알려진 것만큼 마냥 '제멋대로 자유로운 예술가'는 아닌가 보다 싶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불륜에 대해 어느 정도 자책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식이나 새로운 연인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자책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영화는 홍상수 감독이 자기 자신을 자책하는 게 지겨워서 스스로를 설득하려고 만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홍상수는 자기 객관화가 너무 잘돼서 자기 합리화가 잘 안되는 사람입니다. 

자기 합리화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이나 연인의 생각, 주위 사람들의 반응 등을 정리하고, 대중에게 보이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했을 겁니다.

이 영화는 자기 합리화를 위해 만든 영화입니다.

아내는 무매력에 지긋지긋했고, 자식은 어려운 존재이고, 새로운 사랑은 영원하지 못할테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는(그녀와 헤어지면 난 폐인이 될테야)

구구절절한 설명을 영화로 대신하고 있어요. 

설명의 대상은 표면적으로는 독자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입니다.

대중에게 자신을 정당화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거죠.


그래서 이 영화는 기존 홍상수의 영화들과 조금 다릅니다.

기존 영화들에서 내내 "난 찌질해. 이게 나야. 근데 어쩔거야." 하는 당당한 태도를 유지했던 그가

이번 영화에선 "난 찌질해. 근데 너넨 안 그래? 왜 나한테만 그래? 너네가 틀렸어." 

하는, 외부를 의식하는 쫄린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신경 쓰고 싶지 않아도 신경 쓰이는 것이 있는 거겠죠.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그의 다른 영화들보다 별 반 개만큼은 더 좋아요.

더 솔직하고, 더 인간적이고, 더 재밌습니다.





*

조조로 혼자 봤습니다. 영화관엔 저까지 5명이 있었습니다.

아빠는 30분 일찍 극장에 가서 프리즌을 보고, 저는 이 영화를 본 후 

두 영화가 같은 시간에 끝나서 만나서 극장 근처 해장국집에 가서 내장탕을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