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교시는 교양필수 종교학 시간이었다. 



얄궂게도, 오늘의 주제는 사랑이었고 더없이 얄궂게도, 교수님은 피피티 첫 장이 화면에 뜨자마자 나를 첫번째로 지목했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왜 하필 나였을까. 오늘 같은 날에. 이런 질문에. 그런 생각을 잠시 하면서.



"음. 잘모르겠습니다."



평소 같으면 그 정도에서 다른 사람한테 질문을 하시는데 오늘따라 교수님이 내게 재차 물었다.



"아니 그래도, 사람마다 각자 사랑이 어떤 건지 생각하는 바가 있잖아요."



오늘 주제도 모르고 수업을 털레털레 간 터라 생각해둔 바도 없었고 참 난감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해버렸다.



"사랑은...음...같이 있으면 좋은 거?"



순간 그냥 나도 모르게 저렇게 대답해 버렸다. 같이 있으면 좋은 거라니...음. 이 말이 맞다면 나는 요새 가족들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그 이후로 수업 내용은 듣는 둥 마는 둥 사랑이 뭘까 혼자 고민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나는 내가 사랑이 뭐냐는 질문에 왜 저렇게 대답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나에게 단 한 번도 사랑한다거나 좋아한다고 분명하게 말한 적이 없다.



대신에, "너랑 있으면 좋아." 라고 말했었지.



나는 그걸 사랑으로 오해했고 그건 무의식중에 내 기억에 남아 시간의 압박 속에서 저렇게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조금 슬퍼졌지만 그래도 견딜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슬프고 비참하기만 했던 우리 아니 나의 끝과는 달리 우리에게 사랑이라고 기억될만한 조금이라도 로맨틱한 순간이 존재했다는 걸 나에게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혹여나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했더라도 이제는 상관이 없다. 잠시나마 세상을 가득 메운듯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으니, 그걸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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