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떨 때 다른 사람과 대화가 통한다고 느낄까?

나의 경우에는 두 가지 태도를 가진 사람과 대화가 통한다. '과연 그럴까?'와 '그것도 맞아'.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나 지금도 친한 친구인 M과 나는 고2 시절 수많은 밤을 전화하며 보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각자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가서 씻으면 밤 열두시. 그때부터 내내 수다를 떨다 새벽 서너시에나 자는 게 아주 흔한 일이었다. 다음날 학교에선 꾸벅꾸벅 졸고. 무튼 그때 우리가 엄청 자주 하던 말이 저 두 가지 말이었다.

지나보니 대화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저 두가지다. 내가 맞는지 스스로 의심할 수 있어야 하고, 내가 틀렸을 때는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의견에 대한 반박을 나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성적인 태도는 기본이다. 그러면 어떤 주제로도 재밌게 대화할 수 있다.

운 좋게도 내 친구들 대다수는 대화하는 걸 무척 좋아하고,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충실했으면서도 토론을 엄청 잘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태도로 독일가서도 잘 사는 C가 그렇고, 회사 때려치고 핀란드 가서 잘 사는 Y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른 의견을 가졌으면서도 그걸 드러내는 데 거리낌 없는 K도 그렇다. 

덕분에 나는 어릴 때 아빠랑 대화하면서 배운 것처럼, 커서는 친구들과 대화하며 배운다. 우리는 서로에게 민감한 주제들을 던지고, 이야기하며 의견을 정리해나간다. 그게 너무 재밌어서, 예민한 사회적 논란이 생기면 곧장 기사 주소를 복사해 친구들에게 보내게 된다. 

나는 가끔은 친구들과 대화하며 내 생각을 바꿨고, 가끔은 생각은 안 바꿨지만 새로운 방향을 의식하게 됐다. 친구들과 대화하며 배운 것 중 당장 생각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 순수 예술의 존재 이유

- 순수 예술에서 작품의 가치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 정부가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 순수 예술가를 지원해줘야 하는 이유

- 취향에 우열이 존재하는가 

- 부모에게 부모의 역할을 강요할 수 있는가, 있다면 그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 사업에서 '포장'은 얼마나 중요한가

- 사람들을 현혹하는 일부 SNS 마케팅을 사기라고 비판해도 될까

- 외모지상주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 미성년자의 화장을 그들의 자유라고 내버려두어야 할까

- 학교 교사가 체벌도 벌점도 없이 아이들을 훈육할 수 있을까, 어떤 방법이 있을까

- 발표 등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것에 어려움을 가진 아이에게, 의견을 드러내도록 요구하는 게 정당한가

- 대입 수시 학생부 종합전형의 필요성과 현실적 문제점

- 일베하는 남자는 연인으로서 걸러야 하는가

-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한국 사람은 일본 사람과 남미 사람 중 누구와 더 가깝나.

- 한국의 위안부 피해 사실은 과장되었는가


그러고 보니 진짜 많다. 토론 스터디한 줄. 항상 대화 주제를 찾아다니는 듯하다. 회사 후배들이랑도 저런 대화를 해보려고 던져봤는데, 내가 상사고+내가 어디서나 내 주장을 강하게 하는 편이라 후배들이 불편한지 자기 의견을 말 안한다. 그래서 그냥 후배들과는 저런 대화는 안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을 내림. 대화라는 건 권력관계가 끼면 정말 어려워진다는 걸 깨달았다. '대화가 통하는'에 필요한 조건이 하나 더 추가되네. 관계가 동등해야 한다. 올해는 후배들과 나도 좀 동등해질 수 있길.

그래서 난 오늘도 친구들과 저런 대화를 하고 있다. 나만큼 자기 주장 강하고 주관 강한 애들이 주위에 가득해서 재밌다.  쓰고 보니 자랑글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