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국문과 전공 필수 과목이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수업이기도 했다. 같은 과목이 시와 소설 두 트랙으로 열려서 골라 들을 수 있었는데, 소설 수업은 꽤 인기가 많았다. 나는 치열한 수강신청을 뚫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므로, 널널한 시 수업을 선택했다.

시 수업은 현직 시인인 교수님의 지도 아래 시를 써 나가는 수업이었다. 서로의 시를 무참히 까대는 강평 시간이 이어지고, 늬들 시는 다 별로야 하는 교수님의 쓴소리도 듣는다. 그렇게 몇 편의 시를 쓴 후에는 교수님이 구해온 아직 출간이 되지 않은 시집(작가도 안 알려줌)을 읽고 평론을 써보는 과정이 이어졌다.

나는 내가 시를 못 쓴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태어날 때부터 못 썼는데 그걸 그때 깨달았다는 뜻이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어릴 때도 백일장에서 시를 써본 일이 한 번도 없었다. 나에게 시란 방학 숙제로 써야 할 일기가 60개쯤 밀렸을 때 일기장을 대충 채우기 위해 쓰는 아무 말 대잔치였다. 난 언제나 'tmi' 같은 사람이라서, 함축이란 건 할 줄을 모르며 애매모호한 건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시를 잘 잘 쓸 리가 없었다. 당연히 스스로 보기에도 별로여서 가져가기 싫은 시를 억지로 수업에 꾸역꾸역 써 갔고, 까다로운 국문과 학우들과 시인 교수님에게 열심히 까였다. 내 시가 까이는 건 그럴 만 했다. 그런데 내가 보는 눈도 없다는 건 좀 달랐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 꾸미는 말이 많아서 오글거리고 별로인 시는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내가 보기엔 재밌고 솔직한 시는 사람들의 비판을 받았다. 나는 국문학 복수전공의 꿈을 포기했다. 이후로 수업이 끝나기 30분 전쯤에나 수업에 들어와 교수님 얼굴을 보고 출석체크만 하고 갔다. 교수님은 관대한 사람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끝나기 30분 전쯤 수업에 들어갔다. 씨뿔은 받아야 했기에 과제는 꼬박꼬박 온라인으로 제출하고 있었다. 그날은 아직 미출간된 시를 평론해 과제로 내는 날이었다. 나는 내 평론이 또 엄청 까일 것 같아서 그날따라 수업 가기가 더더욱 싫었는데, 한번만 더 빠지면 F를 받을 위기라 꾸역꾸역 수업에 갔다. 

교수님이 어떤 글을 교실 스크린에 띄워 놓고 극찬하고 있었다. '이번엔 또 어떤 오글거리는 병신 같은 글일까.' 교실 맨뒷자리에서 팔짱을 끼고 질투에 물든 재수없는 눈길로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그게 내 평론이었단 건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깊은 통찰이 눈에 띕니다. 감상을 자기 만의 언어로 표현한다는 건 이런 것이고~어쩌고 저쩌고, 이 부분을 이렇게 해석한 건 너무 독창적이면서도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습니다. (사실 기억 안나서 아무렇게나 씀)"

그게 내 글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그 글이 그냥 과제만 내려고 술 마시고 아무 말이나 쓴 글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술을 한 잔 걸치고 썼는지도 모르겠다. 시라니까 대충 수능 공부할 때 배운대로 맘대로 의미 부여를 마구마구 했고, 논리는 뭐 그럴듯한 말을 찾아내서 갖다 붙였다. "아이는, 잠에서 깬다. 그가 만난 세계는 이전에 만난 적 없는 새로운 세계이다." 막 이런 식으로 있어보이게 단문으로 대충 막 썼다. 그런 글이 저런 칭찬을 받고 있다니...한 학기 동안 교수님의 인정을 받고자 고군분투했기에 기분이 좋긴 했지만, 허무하기도 했다. 몇날 며칠을 고민해서 쓴 시 여러 편은 단 한 마디의 좋은 평가도 받지 못했는데, 생뚱맞게 막 쓴 이 글이 칭찬을 받다니.

나는 만들기보다 남 까기에 재능이 있는 모양이었다.


II.

남을 평가하는 건 쉽다. 남의 작품을 평가하는 것도 쉽다. 그냥 이미 있는 것에 그럴싸한 말을 뱉은 뒤, 아무 논리나 갖다 붙이면 된다. 논리는 생각하기 귀찮을 때에는, 그냥 내가 보기엔 그렇다고 하면 된다. 평가자는 그래도 된다. 평가한다는 위치만으로도 권력관계에서 갑이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창작자들은 자신의 창작물을 사랑한다. 남들이 자신의 창작물을 많이 많이 봐주길 원한다. 아무리 별로인 작품이어도 남한테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싶진 않아 한다. 바라는 게 있는 사람은 언제나 을이 된다. 그래서 창작자는 을이다.

사람들은 갑의 자리에서 내려오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타인의 글을, 영상물을, 말투를, 외모를, 인생을 평가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평가 받는 것은 아주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나도 그랬다. 나나 내 작품이 평가받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평론가가 병신 같고, 창작자는 멋있어 보였다. 거지 같은 작품이라도 창작하는 사람이, 가만히 앉아 이러쿵 저러쿵 고나리질만 하는 사람보다 좋았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창작자로 정체화했다. 평론가로 태어났지만 창작자가 되려고 노력하며 살게 되었다. 평론가형 인간의 자아가 지나치게 튀어나오려하면, 그 부끄러운 부분을 숨겨대느라 고생하기도 한다.


III.

돈 한 푼 안내고 평가하는 평가자들은 매우 재수 없지만, 창작자라면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내 작품은 물론이고 나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에도 초연해야 한다. 창작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바로 그것이다.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냥 계속해서 만들고, 계속해서 나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무뎌진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아 여기가 아닌가? 하여튼 창작을 포함한 세상 거의 모든 것의 답은 '존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