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친구들이랑 강남역을 갔다. 강남역은 내가 서울에서 제일 싫어하는 동네 중 한 곳이다. (강남은 어느 곳이나 그렇지만) 들어가는 식당마다 존나 맛이 없고 비싸며, 사람은 바글바글하고 정신머리 없어서 싫다. 모든 곳이 다 체인점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동네로서의 오리지널리티라고는 하나도 없는 졸라 재미없는 동네. 해커스 토플학원과 YBM 토익학원을 다니는 방학 맞은 대딩이 아니라면 정말 비추하고 싶은 동네 강.남.역.


그래서 나는 강남(역)을 진짜 웬만하면 안 가는 편인데 이날은 내가 좋아하는 서점인 '스토리지북앤필름'의 강남점이 여기 오픈했다고 해서 친구들을 우루루 데리고 깄다. 스토리지북앤필름은 내가 자주는 안갔지만 매우 좋아하는 서점이다. 언덕배기 위에 있어서 위치적 접근성은 매우 떨어지지만 작은데도 서점이 참 알차고, 근처 시장 골목도 좋고 조용하고 뒤에는 남산도 있고 해서 좋다. 스토리지북앤필름 사장님도 좋다. 내가 몇 군데 독립서점을 가 보니 보통 독립서점 주인들은 방문자들에게 자기의 취향과 신념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다. (뭐 그 취향과 신념이래봤자 채식주의, 환경보호, 동물보호, 반전, 평화 등 개그콘서트의 왕비호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냥 뻔한 요즘 팔리는 취향) 스토리지북앤필름 사장님의 수업을 들었는데 사장은 그런 폭력성이 거의 없는 분이라 좋았다. 자영업자로서의 기본 마인드가 좋은 분이랄까.


하여튼 그래서 강남역은 싫지만 스토리지북앤필름에 대한 신뢰로 강남역을 방문했다. 그런데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어딘지 못찾겠다고 막 그래서 내가 거기 3층일거야 하고 힌트줘서 겨우겨우 친구들이 찾았는데 입구에서 QR코드를 찍고 뭐 너무 귀찮아서 안 들어가고 밖에 있다느니 그런 말을 하는 거다. 요즘 어디든 QR코드 찍게 하는데 뭐가 귀찮다는 거지 하고 도착했는데. QR코드는 뭐 그냥 기본이고. QR코드 찍고 열화상 카메라 스캔돼서 들어가니까,


미친 놈들이 입구에서 어플 깔아야만 서점 구경 포함 건물 출입을 할 수 있다고 어플 깔기를 강제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무슨 미친 소리지 싶고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저희 서점 가려는데요???", "서점 가려는데 어플을 깔아야 한다구요???" 하고 되물어봤는데 그렇대...서점 가려면 어플 깔아야 한대...ㅋ...

그래서 서있다가 뒤를 돌아 봤더니 사람들 다 입구 들어와서 존나 짜증나는 표정으로 앞에 우루루 서서 힘들게 어플들 깔고 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랑 내 친구들 포함 사람들 엄청 투덜대니까 알바가 힘든 표정으로 "앉아서 어플 까셔도 되고요,,," 중얼거리고 있는데 성격 급한 한국 사람들이 그말 듣겠냐ㅋㅋㅋㅋㅋ 걍 다 서서 ㅅㅂㅅㅂ거리면서 억지로 어플깔고 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몇몇은 돌아나감ㅎㅎㅎㅎㅎㅎㅎㅎㅎ

문제의 어플


공부, 취업 및 업무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세대들을 위한 어플이라는데 서점 좀 구경하려는데 어플깔기를 강제함으로써 그 세대들에게 좆같음을 하나 더 추가해주는 이해할 수 없는 어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나는 폰에 용량 없어서 어플을 못 깔았더니 종이에 또 개인정보를 적어야 목걸이를 받고 안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러다가 뭐 지하에 전시가 있다면서 그걸 보고 가라고 서점에서 안내를 해주는데...거기는 어플에 로그인을 해서 예약을 해야한다고 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또 어플깔라고 2차 강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플 못까는 나를 빼고 내 친구들은 그 전시를 보려고 가입을 열심히 해서 그 전시장으로 가려는데...ㅎㅎㅎ

전시장까지 엘리베이터 연결이 안돼있음...ㅋ...................................띠용................?

그래서 우리는 엄청 이상하고 번거롭고 복잡한 동선으로...전시장으로 향했다...난 어플을 못깔아서 전시를 못봤는데 전시 본 친구들 말로는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하였다...

하 진짜 친구들 다 이게 뭐냐고 분노한 공간이었다

힙한 척만 하면서 이용자한테 쓸모도 없는 어플을 강제하고 진짜 사용자 편의성이라고는 1도 고려 안한 배려없는 공간이었다. 공간 기획 누가 했나 진짜...내 돈이 아닌데 그 돈이 아까울 정도다. 1층에 갤럭시랑 위에 엘지 유플러스 뭐 어쩌고 있는 거 보면 거기서 돈 댔나 본데 진짜 돈 써서 쓸 데 없는 짓 했다는 느낌뿐. 애초에 어플이라는 건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깔고 싶게 만들어야 하는 건데 여기 구경하려면 깔라고 강제해서 깔게 만드는 게 효과가 있겠냐? 응 그 순간엔 억지로 깔겠지 근데 공간에서 나오자마자 다같이 삭제행. 어플 깔게 하는 건 성공할지 몰라도 그 과정에서 이 공간과 어플에 사람들이 가질 거부감을 생각하면 정말 마이너스적인 마케팅이고 실패한 기획이다. 

근데 이런 곳 만든 사람들, 스토리지북앤필름이랑 시현하다를 알고 들여놓을 정도의 사람이 바보도 아니고 나도 생각한 이런 걸 생각 못한 건 아니겠지. 같이 갔던 삼성출신 Y모양은 "이거 분명히 아래 유능한 애들이 기획은 했는데 임원이 성과 내라 해서 어플 강제로 깔게 시키는 거"라고 했다. 나도 격하게 공감했음ㅋㅋㅋ (실제로 여기 후기 찾아보면 초반 후기에는 어플 까는 게 강제가 아니고 선택이었던 것 같았다.) 

솔직히 강남역 그 비싼 동네 한복판에 독립서점 만든 거 진짜 엄청난 기획이고 도전인데 이걸 젊은 유능한 직원들이 관철까진 시켰는데 윗선 분들은 그게 힙하고 인기 많다니 컨펌을 하긴 했는데 이게 왜 여기있어야 하는지, 젊은 애들이 왜 여기를 방문할 것인지 이해를 1도 못한 거임...그래서 지들 눈에 보이는 성과가 필요하니 어플 다운로드수로만 성과를 판단하는 거지. 근데 어플을 깔게 만들거면 뭐 어플 안에 카메라로 뭘 스캔하면 공간에 뭐가 뜨는 존나 안하고는 못배길 재미있는 인터렉티브 요소라도 넣어놓든가...공간 안내도에 있는 내용 쭉 써놓은 어플을 무슨 효용으로 깔라고 강제하는거니...? 어휴...그리고 그 어플 깔라고 강제하느라 세워놓는 사람들에게 쓰는 인건비...쉬박...내 돈도 아닌데 아까움ㅠㅠㅠ;;;

여기서 유일하게 좋은 건 스토리지앤북앤필름뿐인데, 스토리지북앤필름도 그냥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해놨다면 더 많은 사람이 방문해서, 활발하게 운영됐을텐데 저 구린 시스템 탓에 방문자를 충분히 못 만나고 있었을 거라 안타까웠다. 똑똑하고 상식적인 스토리지북앤필름 사장님이 이딴 망 기획에 참여했을리는 없고 여기 입주한 건 공간 기획한 측의 임대비 지원을 받거나 하는 어른의 사정이 있었겠지 싶었음.

하여튼 대기업이 힙한 척하려다 망한 좆구린 공간 기획이었다. 여기 공간 보면 갤럭시 전시 공간이랑 LG 유플 뭐 안내가 있어서  삼성 아님 LG 유플러스가 기획한 공간 같은데. 내 생각에 하는 짓이 LG 유플 같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꿀팁 : 여기 나와서 짜증난 분들은 건너편에 무인양품이랑 카카오 프렌즈 스토어 가서 잘 된 공간기획으로 눈 정화 마음 정화하면 됨. 카카오 프렌즈 스토어는 호불호 갈리겠지만 무인양품 안에 있는 밀도 빵은 누구 입에나 존나 맛있을 테니 밀도 빵으로 짜증난 마음 달래면 좋읍니다.


+) 나 여기 도대체 누가 만들었나 궁금했는데 왠지 엘지 유플 냄새나서 혹시나 하고 구글에 '일상비일상의틈 LG 유플러스' 쳐봤는데 역시나 엘지유플이 만든 거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LG 트윈스 팬 20년이면 엘지 유플 한 번 안쓰고도 엘지 유플 냄새를 맡습니다. 

어디서 만들었는지 몰랐지만 알고 있었어.jpg

어플 다운로드 수로 성과 측정하는 공간이 잘도 랜드마크가 되겠어요 부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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