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레고 얘기 쓰다가 쓰고 싶어짐

나는 어린 시절 서울 동작구에서 태어나서 잠시 서대문구에 살다가 다시 동작구에서 컸다.

어릴 때 자주 갔던, 뭔가 이미지적으로 기억이 확연히 나는 서울 안 추억의 장소들이 몇 곳 있다.

 

아무리 뒤져도 90년대 사진이 안나옴. 80년대랜다.

 

우선 첫번째는 광화문 교보문고다.

엄마 아빠는 일요일 낮에 가끔 시간이 되면 언니랑 나를 데리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요즘 아이들은 모를 수도 있지만 예전에는 토요일에도 사람들이 안 쉬었다...ㅋ...

아빠 차를 타고 다같이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엄청 구경했다.

내 기억에 그때는 교보문고에 지금처럼 큰 책상이나 의자가 없었다.

그래서 코너마다 사람들이 다들 바닥에 철푸덕 앉아 책을 읽었다. 물론 나도 그랬다.

내가 어릴 때는 스마트폰이나 유튜브 이런 게 없었고 게임도 지금처럼 발달된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책 읽는 게 아주 즐거운 놀거리였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은 사기 전에 꼭 엄마아빠의 사전 검열을 거쳐야만 했다. (부모님 운동권임)

아무리 재미있어보여도 얄팍하거나 내용이 없거나 유해해보이는 내용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안사줌ㅋ

그래서 나에게는 점점 엄마아빠 입맛에 맞는 책을 알아서 골라가는 능력이 생겼다.

ㅋㅋㅋㅋㅋ

 

엄마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날 데리고 만화책방도 매일 데려가서 같이 만화책도 빌려주고

(당신들이 만화 좋아하심)

책 장르나 형식에 대한 편견은 거의 없는데

내용이 너무 상업적이거나 독재미화한다거나 뭐 그럼 안됨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내가 가져간 책은 많이 까였다^^

 

그러다 보통 엄마 아빠가 이 책 어떻냐고 나한테 책을 추천해주는데

보통 전교조 국사 선생님이 썼을 것 같은 그런 NL 통일운동, 풍물 뭐 이런 느낌 나는 역사책이었다.

ㅋㅋㅋㅋㅋ 재밌어보이면 읽기도 했지만 보통 내스타일은 아니었다.

 

한번은 엄마가 나한테 미당 서정주가 쓴 전래동화 시리즈 (전 5권)을 사주고 싶어했다.

나도 뭐 딱히 나쁘지 않아서 사려고 하는데

아빠가 서정주 친일파라고 그 책 반대했던 기억이 난다;ㅎㅎㅎㅎㅎ

엄마는 서정주가 친일파긴 하지만 문학적으로는 뛰어난 사람이니까

읽어도 된다고했음

둘이 한창 싸우다가 엄마가 이겨서 그 전래동화 세트(전 5권) 사와서 열심히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김ㅎㅎㅎㅎㅎ

 

이거였다 1권이 제일 재밌었다

 

근데 나도 만약에 애 생기면 책 검열할 것 같다.

뭔가 질 낮은 컨텐츠를 접하게 하고 싶진 않음ㅋ

우리 엄마아빠도 뭐 그런 마음이었겠지 싶다.

 

교보문고에서 아빠는 테이프를 자주 샀다. 주로 조수미였다.

아빠는 조수미, 정경화, 장영주 등을 좋아했다.

그래서 교보문고 갔다가 지하주차장에서 차 빼서 올라오는 길엔

항상 차 안에서 조수미 음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는 명동의류다.

지금 명동은 거의 망했지만 내가 어릴 때는 서울에서 명동이 제일 핫했다.

그때는 홍대? 강남역? 이런 거 없었다.

그땐 신촌, 명동, 종로가 짱이었다.

아빠는 평일엔 매일 밤 10시까지 일했고 일요일까지 주7일 일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래서 명동은 보통 언니, 엄마랑 갔던 기억이 난다.

예전엔 명동에 명동의류라고 개짱큰 옷가게가 있었다.

지금으로치면 유니클로 같은 분위긴데 다 보세옷 판다고 생각하면 됨.

 

초등학생 때는 엄마랑 언니랑 명동의류 가서 옷을 사곤 했다.

명동에는 맛있는 거 파는 노점상도 많고 명동의류에는 옷도 이쁜 옷 진짜 많고 머리끈 가방 등등 이쁜 게 많았음.

그 앞은 항상 활기찬 분위기여서 명동 놀러가는 걸 참 좋아했다.

그리고 끝날 때쯤 아빠가 차로 데리러 오면 차 타고 집에 가곤 했던듯ㅎㅎㅎ

명동은 특히 독립문 살 때 자주갔던 것 같다.

세번째는 여의도 광장.

지금은 여의도 공원이 됐지만 내가 어릴 땐 여의도 광장이었다.

아빠가 여의도에서 일했기 때문에 여의도를 자주 갔다.

언니랑 엄마랑 여의도에 가면 아빠가 일하다 중간중간 나와서

같이 점심도 먹고 좀 놀다가 들어가고 그랬다.

(우리 아빠는 주말에도 일했음ㅠㅠ)

 

여의도 광장은 자전거나 롤러스케이트를 빌려타는 광장이었다.

난 여기서 네 발 자전거를 많이 탔고

언니는 롤러스케이트를 많이 탔다.

나는 교보문고 가는 걸 더 좋아했던 것 같은데

언니는 여의도 광장을 더 좋아했다. 언니는 원래 책 읽는 걸 안 좋아했다.

 

여의도에 가면 한강 고수부지도 가끔 갔다.

강가에 와플처럼 생긴 그 경사가 되게 무서웠는데

그 위에 허접한 공간에서 앉아서 쉬곤했음.

 

네 번째 뭐있지, 음 내가 살던 상도동은 너무 추억이 많아서

나중에 따로 길게 써야할 것 같긴 한데

중대 후문에 살았을 때는

중대 후문으로 들어가서 안을 거쳐서 정문으로 나와 마트를 가기도 했다.

그 청룡있는 호수? 를 자주 지나다녔다.

 

중대 후문에선 가끔씩 학생들이 대낮에 데모를 해서

최루탄 연기가 길에 가득할 때도 있고 그랬다.

엄마가 가까운 건물 1층으로 들어가서 옷으로 입이랑 코를 다 가려주고 같이 집까지 손잡고 뛰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외에도

엄마, 아빠, 언니랑 동대문에 새벽에 옷 사러 다녔던 거랑

노량진에도 새벽에 가서 회 떠 먹던 거랑

그런 크고 작은 추억들이 있다.

뭔가 그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하고 몽글몽글해진다.

자연농원이나 롯데월드 같이 특별한 곳에 갔던 기억은 사실 잘 안 나고

저런 곳이 더 기억에 잘 남는다.

그립다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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