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사전투표가 시작됐군
선거는 결과에 상관없이 개표 전까지는 항상
되게 재밌는 이벤트인 것 같다
개표방송 볼 생각에 벌써부터 두근두근

암튼 대선을 맞아
오늘은 대학생 때 해봤던
개표사무원 알바 썰을 풀어보겠다.

나는 대학교 때인
2012년 총선, 대선에서 개표를 해보았다.
10년 전 썰이라 지금과는 다른 내용이 꽤 있을 거다.

1. 어떻게 할 수 있나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보통 기초자치단체 선관위(서울이나 광역시면 구, 경기도 등 도면 시)에서 각자 모집하는 형태인 듯. 나도 우리 동네 선관위에서 모집해서 들어가게 됨.

대학생 입장에선 재미있고 특이하면서도 꽤 짭짤한 알바이기 때문에 인기가 있고,
선관위 입장에서는 아무리 알바라지만 좀 멍청한 사람이나 신뢰할 수 없는 사람, 꿍꿍이가 있는 사람을 쓰면 후폭풍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모집하기엔 리스크가 있어서인지 지인 위주로 알음알음 구해졌다.

나는 아는 분이 선관위에서 선거철 선거법 위반 감시 알바를 하셨는데 내가 정외과 복수전공자이기도 하고 평소에 정치에 관심 많았던 걸 아시고 해보겠냐고 제안하셔서 하게 됐다.

개표사무원을 하려면 특정 정당 당원이 아니어야 하는 등의 조건이 있었다.

2. 선거 전 준비 / 개표사무원 인적 구성

개표사무원이 되면 선거 전에 여러 번 가서 교육을 받는다. 10년이 지나 가물가물한데 주 1-2회씩 총 4주? 이 정도 교육을 받았던 것 같다. 교육 받는 기간에도 당연히 일하는 수당이 나온다.

가면 선관위 직원과 선관위 소속 공익근무요원이 교육을 해준다. 개표 사무원은 내 또래 대딩들, 30-50대 어른들 등 꽤 다양했다.

3. 개표사무원이 하는 일

1) 표 분류

개표사무원들은 크게 두 가지 일을 한다. 개표는 보통 지역에 위치한 큰 체육관 강당에서 하는데, 여기 가보면 엄청 길고 큰 책상이 10개 정도 있다. 책상 하나당 나 같이 사전에 교육을 받은 개표사무원들과 개표 업무를 위해 차출된 공무원, 교사 등 총 10명 정도가 둘러앉아 표를 분류한다.

개표현장의 모습 / 출처 충청신문
개표현장의 모습 / 출처 헤드라인 제주

투표함 봉인을 풀고 투표용지를 책상에 쏟아내면 같은 후보를 찍은 표끼리 모으는 식이다.

처음 개표사무원이 되면 이 표 분류 작업에 배정받게 될 확률이 높다. 단순 작업인데 주위에 처음 본 동네 공무원, 교사 아줌마 아저씨들이랑 수다 떨면서 하다보면 지루하지 않게 할 수 있다. 시간 잘 감. ㅋㅋ

2) 전자개표기 돌리기


사람들이 일일이 손으로 분류한 표는 바로 옆에 있는 전자개표기(투표지분류기) 테이블로 간다.

테이블 위에 전자개표기가 있고 전자개표기 당 2명이었나가 배정된다. 한 명은 전자개표기와 연결된 컴퓨터를 돌리고, 한 명은 앞에 앉아있다가 개표기에 문제가 생기면 도와주는 그런 역할이었던듯.

이건 공무원, 교사 등 차출된 분들은 배정받을 일이 없어서 해본 사람이 흔하진 않을 거다.

나는 첫 총선 땐 표 분류 작업을 했었는데 대선 땐 이 전자개표기를 돌리는 담당으로 승진(?) 했었다.

선거 전에 개표 사무원 교육을 들으러 갔는데 이전에 개표해본 사람 있냐고 해서 손을 들었더니 배정됨.

전자개표기는 중간에 표가 끼거나 하면 컴퓨터로 눌러줘야할 것들도 있고 단순 표 분류보다는 좀 복잡해서 교육 받을 게 좀 더 많았다.

이건 배정됐다가도 중간에 좀 이해를 잘 못하거나 오류 같은 게 났을 때 대응을 잘 못하는 분들은 교체되곤 했음.

전자개표기는 개표 사무원들이 1차로 손으로 펴고 분류한 표를 기계에 넣어 한번 더 분류하는 절차다.

한 장 한 장 기계에 들어가면 모두 스캔이 돼서 컴퓨터 화면에 뜬다. 애매한 표는 미분류로 들어간다. 이 미분류 표는 사람이 봤을 때 분명하면 각 후보의 표로 다시 분류하고, 사람이 봤을 때도 애매하면 무효표가 된다.

중간 중간에 투표용지가 두 장씩 들어가거나 하면 기계에 오류가 뜸. 그럼 표를 뽑아서 다시 앞부분에 투입해서 돌려줘야한다.

혼자하는 일이라 좀 지루할 수도 있는데 이건 진짜 오류나면 안되는 일이라 좀 정신을 차리고 해야해서 심심할 새는 없다.

이렇게 표 분류를 마치면 각 당에서 분류된 표를 확인하고 모두 개표 결과에 동의하면 개표가 끝나는 것임.

4. 선거 당일 개표사무원의 일과

보통 오후 6시에 투표가 끝나면 투표소에서 확인하고 투표함 봉인해서 개표소로 가져오고 뭐하고 하면 한 8시 정도 될듯. 그래도 보통 7시 정도부터는 개표를 한다. 사전투표(구 부재자투표) 분량이 있기 때문이다. 근데 올해는 코로나 확진자가 투표 당일 7시반까진가 투표를 할 수 있어서 개표가 더 늦게 시작될듯.

개표가 늦게 시작되면 늦게 끝날 가능성이 높으니 다음날 출근해야하는 공무원, 교사 차출자들은 싫겠지만 대딩이었던 나한텐 오히려 좋았다. 늦게 끝나면 야간수당인가 하루치 추가로 줬나 하여튼 돈을 훨씬 더 줬거든ㅋㅋ

아무튼 7-8시에 투표가 시작되더라도 개표사무원은 좀 일찍가서 준비를 해야한다. 오후 4시인가 5시까진 갔던듯. 가서 세팅도 하고 다시 한 번 교육도 받고(금지사항 등등) 밥도 먹고 그랬던 것 같다.

참고로 개표사무원은 개표소 안에서 폰을 못 쓴다. 개표방송도 당연히 못 본다. 개표 다 끝내고 귀가할 때 확인해야함. 문재인-박근혜 대선 때 문재인 지지했었는데 우리 동넨 문재인 몰표길래 문재인이 이긴 줄 알았다가 나중에 결과보고 충격받은 기억이 남ㅎㅎ

본격적으로 개표하기 전이었나 개표 중간이었나 밥도 준다. 도시락을 나눠주면 체육관 테두리쪽에 있는 의자에서 먹음.

개표는 표 분류 담당이면 동네 공무원, 교사 어른들이랑 좀 수다떨면서 열심히 표 분류를 하면 된다. 투표함 하나가 가면 다음 게 오고 다음 게 오고 하는 식. 표 분류하는 책상이 여러 개고, 투표함이 한번에 다 안오고 각 투표소에서 순차적으로 오기 때문에 한 함을 개표하고나서 다음 함이 올 때까지 시간이 좀 뜰 때가 있는데, 이때 화장실을 다녀오고 조금 쉴 수 있다. 표를 돌리는 사람도 마찬가지.

개표 전 과정은 각 당에서 보낸 투표 참관인들이 모두 감시한다. 테이블 주위에 선이 그려져 있고 참관인들은 선 밖에서 안쪽 개표사무원들을 자유롭게 감시한다. 특히 전자개표기를 돌리는 담당이 되면 기계에 종이가 끼거나 프로그램이 에러나서 멈추거나 하면 모든 정당의 참관인들이 우루루 내 책상으로 와서 나의 행동을 매의 눈으로 감시하게 됨. ㅋㅋㅋ

개표를 하다보면 참관인들의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이건 왜 이래요?", "지금 왜 이렇게 뜬 거에요?" 등등 좀만 미심쩍은 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참관인들이 물어보는데 설명을 잘 해줘야 함. 이건 사전 교육 때 모의로 선관위 직원들이 물어보고 내가 대답하는 연습도 하고 그랬다.

투표용지는 하나라도 잃어버리거나 (기계를 돌리는 경우) 잘못 분류하게 되면 진짜 그날 퇴근을 못하고 개표가 엄청 길어지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표 하나 하나 소중하게 개표를 해야한다.

개표 중에 힘들었던 건 총선 비례대표 정당 투표 용지 분류했을 때ㅋㅋㅋ 투표용지가 진짜 너무 길어서 막 분류하고 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튼 보통 새벽이나 다음날 아침에 개표가 끝난다. 각 후보자나 정당이 모두 개표 결과에 동의하면 퇴근 가능!
표 개수 안맞거나 뭐 문제 있거나 하면 퇴근 못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미 개표는 다했지만 각자 자리에 앉아서 퇴근 못하고 멍 때리고 있어야 하는 것임... 힘들어진다...

5.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생각

개표사무를 해본 사람으로서 김어준이 K값 운운했던 것을 비롯해 전자개표기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는데 흠...그걸 어떻게 조작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왜냐면 개표를 기계가 했어도 투표용지는 한 장 한 장 분류되면서 컴퓨터 모니터에 스캔돼서 다 뜨고, 분류된 표도 모두 모든 당 참관인들이 자유롭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부정선거를 한다면 투표용지 자체를 미리 바꿔치기 해야지 개표소에서 부정선거가 일어나기는 되게 힘들 것 같다. 내가 일한 곳과 같은 각 당 지지가 비슷한 수도권 지역 개표소에 한정해서 생각해보면 분명 그러하다.

사전투표 분량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사전투표 투표함 보관이나 운송 과정은 잘 몰라서...수상하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있다면 충분히 의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도 부시-고어 선거 때 부재자 우편 투표 분량에 대해 부정선거 이슈가 있었어서...흠 힘있는 놈이 나쁜 맘 품고 조작한다면 뭐 아예 불가능할 것도 없겠지. 했다가 걸리면 후폭풍이 어마어마할거라 과연 그 리스크 감수하고 그런 짓까지 할까 싶은 생각이 들 뿐.

6. 마무리

복수전공이 정치외교학이던 정치덕후 학생으로서 되게 재밌는 경험이었다. 만약 기회가 온다면 참여해보라고 하고픔. 몸은 피곤했지만 재밌기도 하고 뭔가 뿌듯함도 들었다. 10년 전 기억에 의존해서 쓴 글이라 일부 디테일이 조금 틀리거나 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