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먼저 떠나고 알바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영풍문고를 서성이다가 집어들게 된 강준만의 강남좌파.
사실 강준만의 책이라고는 도서관에서 독학으로 수능 공부할 때 이제 문과생이고 역사를 선택했으니 역사책들을 읽어야지 하면서 본 한국근대사산책, 한국현대사산책이 유이했다.

강준만의 글빨에 몰입도 되고 나와 비슷한 입장을 확인도 하고 서점에서 앞 부분 조금 읽다보니 사야겠다 싶었다. 요새 책을 읽다가 중간에 다 못읽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잘 읽히고 재미있어서 샀다.

강남좌파는 내가 언제나 주목하고 있던 키워드다. 나는 왜 김규항과 하종강에게 열광하지 않으면서 조국과 홍세화에게 열광하는가. 조국은 강남좌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나는 사실 강남좌파를 좋아한다. 왜냐면 강남좌파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떼돈벌어놓고 사회 단체에 기부 팍팍하고 퍽퍽한 좌파언론에 조건없이 큰 돈 툭툭 쾌척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강남좌파는 내가 계속 주목해오던 키워드다.

좌파와 우파를 떠나 강준만은 엘리트와 비엘리트로 그들을 구분하기도 한다. 예리한 지적이었다.
학벌사회와 엘리트주의에 대한 내용에는 구구절절 공감했다.
삼수를 하면서까지 그렇게 의대와 한의대 삼수 때 문과로 전향하면서는 그놈의 서울대.
결국 지금도 내 주변의 극히 일부 지인들만 아는 얘기지만 삼수해서 대학에 와놓고도 서울대에 대한 미련을 못버려 휴학을 하지 않은 채로 수능을 또 봤었다. 결국 서울대 못갔지만 써보기라도 했으니 다행일까.

아직도 찌질하게 삼수시절 강남대성학원에서 (공부로) 날리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 때가 차라리 행복했었지' 하는 나는 학벌사회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다. '서울대'라는 이름의 막강한 힘을 (삼수했기에?) 너무 잘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서울대에 가서 간판을 얻은 후 내가 살고싶은 대로 막 살고 싶었다. 그게 내 꿈이었다. 맹세코 출세하기 위해 서울대에 가고 싶었던 적은 없다. 그냥 그 간판을 갖고 싶었다. 이과로 수능을 두 번 볼 때도 진정 의사가 꿈이었던 적은 없다. 내 꿈은 의대생이었다.

왜 이런 얘기를 이제와서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학벌의 노예였다. 아니 과거형으로 쓰기엔 현재도 그렇다. 그리고 강남좌파가 실은 학벌좌파라는 얘기에 공감한다. 아직 바뀌지 않았기에 잘못된 제도고 관행이라도 그에 맞춰 사는 건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에도.

그런데 책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자알 읽고 나서도 내가 어리석은 건지 의문은 남는다. 그렇다면 강준만 당신은 강남좌파입니까? 지식인은 강남 좌파의 구분의 밖에 서있나? 조국을 강남좌파라고 하면서 강준만은 강남좌파인가? 궁금하다. 그 시절에 대학 졸업하고 미국 유학은 무슨 돈으로 갔는지도 궁금하다. 우리 아빠가 강준만이랑 같은 대학을 나와서 서울대 친구들을 수두룩하게 두고도 강남은 커녕 분당좌파 일산좌파도 못되어서 당신들이 부러워서 하는 질문만은 아니다.  

학벌일색의 사회를 비판하면서 왜 이 책 날개의 저자소개의 첫줄은 '저자는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00대학에서 신문방송학 석사~' 인지 궁금하다. 관행이 바뀌지 않아서 그에 순응할 뿐일까? 순응하지 않으면 저자는 손해를 보나? 책날개에 저자가 무슨 대학을 나왔는지를 쓰느냐 안쓰느냐에 따라 책의 판매량이 바뀌나? 뭐 그런 사소한 것들도 궁금해졌다.  

무튼 오랜만에 400쪽 가까이 되는 책을 별로 쉬지않고 꼼꼼히 재미있게 읽었다. 잘 안읽히는 부분도 별로 없었고. 강준만은 책을 정말 잘쓴다. 집에서 돈 한 푼 안받고 알바로 근근히 살아가는 퍽퍽한 대학생의 '만 육천원' 만큼의 효용은 있었다고 생각한다.




삼수까지했는데도 맘에 안드는 대학에 와서 그 열등감을 가지면서도, 때때로 마음속에서는 은근한 엘리트의식이 고개를 들려하곤 한다. 언제나 경계하려고 노력한다. 사회에서 나름대로 알아주는 대학을 다닌다는 것에 은근한 자부심을 가지는 나자신에게 혐오를 느낄 때도 있다. 고종석이 대학에 입학하는 아들에게 썼다는 글에 이런 비슷한 말이 있었다. 너와 비슷한 환경이었으면 너보다 더 열심히 잘 대학에 다녔겠지만 상황이 안되서 못그러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잊지말고 언제나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라는 그런얘기였다. 언제나 그것을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아무리 죽는 소리하고 우리집 힘들다고 징징대도
나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나 나와 같은 기회가 주어졌으면 나보다 훨씬 더 잘 하고 있었을 사람들이 많을거다. 남들보다 많은 기회를 가져왔음을 자각해야한다. 나는 내 안의 엘리트 의식을 배척하자.

최근에 어디 대학 다니냐는 질문을 두 번이나 받았다. 전공이 뭐냐는 질문이 먼저 잽으로 들어오고 나서는 그들이 진짜 궁금했던 본론이 그 다음으로 훅 들어온다. 그 질문을 한 두 사람은 의외의 사람들이었다. 운전면허 도로주행 강사와 한의사였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질문이 내 또래의 누군가에게는 일상 속 폭력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 질문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면서도 내 안에 생기는 그, 찰나의 의기양양함이 솔직히 혐오스럽다. 맘에 안드는 대학으로도 엘리트 의식 가지는 내가 내가 바라던 대학에 갔으면 얼마나 안하무인으로 살았을까 싶어서 철렁하기도 한다.

그래서 결론은 학벌 사회를 내가 바꾸겠느니 그런 건 사실 자신 없는 얘기고 나는 내가 어디가서 학교랑 학과를 얘기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기를 소망한다. 남들보다 더 길었던 수험생 시절, 친구들의 미니홈피에 달려있는, 자기가 어디 대학을 다닌다는 것을 과시하는 명문대 클럽 배너를 보면서 나는 저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 했었다. 저런 애들은 내세울 게 대학밖에 없는 애들인거라고. (물론 대학만 내세워도 먹고 살 수 있는 정말 엄청난 학벌사회긴 하지만) 그 때 그 배너를 보면서 재수생 삼수생 내가 느꼈던 박탈감과 열등감...그 모든 것들을 사회의 학벌경쟁에서 성공하지 못한 많은 구성원들은 아직도 느끼겠지. 다른 이유가 아니고 그 이유가 학벌이라면 타인이 나를 보면서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 첫걸음으로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한다. 학벌 내세우지 않고 사는 사람이 되지 않기위해. 나 자신을 되도 않는 엘리트의식에서 구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