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원을 처음 본 건 내가 어렸을 때 텔레비전 쇼프로그램에서였다. 건장한 아저씨가 나와서 말을 재밌게 했다. 내 기억엔 사투리를 썼던 것 같다. 어린 나는 주말에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야구에 빠져있던 삼촌들을 보면 다른 데로 채널을 돌리고 싶어 안달났었다. 최동원이 야구선수였는지 뭐였는지 알지도 못했다. 그저 텔레비전 쇼프로그램에 나오는 그저그런 패널이었다. 부인도 한 두 번쯤은 같이 나왔던 것 같다. 나에게는 그런 존재였다. 그렇게 꽤 시간이 지나고 언젠가부터 그 아저씨는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가보다 했다. 뭐하는 아저씨인지도 몰랐으니.

 야구에 관심이 없을 때에도 선동열은 알고있었다. 알고 있는 야구선수는 선동열, 박찬호, 이승엽이 전부였다. 선동열이 엄청나게 대단했던 투수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라이벌인 최동원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러다 야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최동원을 알게되었다. 처음엔 그 대단한 투수 최동원이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보던 그 최동원인지 몰랐다. 쇼프로그램에서 본 모습은 한 분야의 레전드와 잘 매치가 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쇼프로그램에서 내가 본 최동원의 모습은 소박하고 털털한 동네 아저씨 같은 모습이었다.

 야구를 더 알게 되고 투수라는 포지션을 좋아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날 한국시리즈에서 찍힌 모습이었는지 김광현의 투구폼을 보게 되었는데, 그 모습에 반하게됐다. SK팬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역동적인 투구폼. 투구폼은 간결한 게 부상의 위험도 적고 좋다지만 나는 그  투구폼이 정말 좋았다. 야구 만화 주인공처럼 멋있었다. 그 이야길 아빠한테 하자 아빠는 "넌 그러면 최동원의 투구폼도 분명히 좋아할거야. 찾아봐." 라고 말했다. 최동원이 좌완인지 우완인지도 몰랐던 나는 그 길로 최동원의 투구폼을 찾아보게 되었다.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이라 다행이다.

 좋지 않은 화질이었지만 역시나 나는 그 투구폼에도 반하게됐다. 아빠는 그 동영상이 최동원의 원래 투구폼보다 훨씬 덜 다이나믹한 동영상이라고 말했지만 그마저도 나한테는 정말 멋있었다. 저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그 영향일까. 다른 선수이긴 하지만 내가 가진 유일한 야구 유니폼의 등번호는 11번이다. 11번 박현준이지만.



 그러던 작년이었나 인터넷 야구 커뮤니티에서 한 글을 보게 되었다. 어쩌다가 어떤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명함을 받았는데 최동원이라고 써있길래 다시보니 자기의 우상이었던 그 야구선수 최동원이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마르고 수척해서 그가 암투병중인 것 같다는 글이었다. 꽤 화제가 됐었지만 최동원 선수 측에서는 그 사실을 부정했다. 댓글들도 그럴리 없다는 말이 대다수 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난 그 글에 이상하게도 신뢰가 갔다. 최동원의 팬인 아빠한테도 말했었다. 암인데 말을 안하고 암투병 중인 것 같아.

 그리고 올해 경남고 레전드 경기에서의 수척한 모습을 보고 다시 그 암투병 글이 떠올랐다. 그는 다이어트를 너무 많이 해서 라고 말했다. 끝까지 자존심을 세운 거였다. 한 시대를 풍미한 야구스타가 아픈 몸을 이끌고 자존심을 세우는 모습이 가슴아팠다. 롯데 자이언츠 팬도 아니고 최동원을 잘 알지도 못하는데도 그랬다. 아빠에게 또 다시 말했다.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본 최동원을 떠올리면 저 모습은 다이어트의 모습일리가 없다고...그는 아픈 것 같다고. 아빠는 별 말이 없었다.

 나같은 범인은 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들이 왜 자신의 마지막 약한 모습을 내보이지 않으려 하는지 잘 모른다. 장효조도 최동원도 그렇게 갑작스럽게 갔다. 그들에게는 갑작스러운 게 아니었겠지만 팬들에게는 정말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많은 팬들은 그들의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아직 젊은 나이에 최동원은 그렇게 갔다.

 텔레비전 쇼프로그램에 나오는 아저씨의 모습으로 시작해 인터넷 동영상으로 보게 된 다이나믹한 투구폼의 소유자, 내가 좋아하는 팀의 신인투수가 말하는 그의 롤모델로, 그저 그뿐이었고 사실 나는 최동원을 잘 몰랐다. 투구폼과 스타일 때문에 훨씬 먼저 안 선동열보다 조금 더 정이가는 투수였던 정도였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자기의 암투병을 알리지 않고 싶어하며 꼭 회복할 거라 말했던 야구 레전드의 자존심 앞에서는 숙연해진다.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선동열이 그의 유족을 위로하고 있는 모습에는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곳에서도 야구하면서 행복하시길.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