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알려줘서 하게 된 철학성향 테스트
꽤 재밌다. 결과에 나온 동양철학자들은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서양철학자들을 보니 나름 잘 맞는듯!
언제나 난 나자신을 쾌락주의자라고 주장해오면서
루소의 팬이엇음...테스트를 하면서도 투덜대면서
자유의지문항에서 루소는 없어? 다 맘에 안들어
했는데 딱 루소가 나와서 신기하다!
다음은 철학성향테스트! 결과를 보고 해당되는 책을 찾아보면 겨울이 금방갈듯!





아래는 내 테스트 결과!




서양편


지혜로운 현자
| 지혜, 직관, 감수성, 우정
육감과 영감을 중시하는 당신은 원효대사 타입! 해골물 한 사발 들이켜고 불현듯 깨달음을 얻는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강력한 ‘촉발’이다. 어느 순간 닥쳐오는 갑작스러운 ‘깨달음’을 좋아한다는 말이며, 직관력이 좋다는 말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직관력’이 단순히 ‘감’(感)이 아니고(“이건 여자의 육감인데” 할 때의 육감은 더더욱 아님), 직관력이 높다고 해서 사고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안 했던가? 고차원적 직관은 고차원적 사고와 포개어진다! 어떤 의미에서는 ‘예술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이 부류의 철학자들은? = 에피쿠로스, 루소, 니체, 바타유
『철학 vs 철학』에서는?
3장 행복한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4장 사유재산은 정당한가? 로크와 루소
11장 내가 죽은 뒤에도 세계는 그대로 존재하는가? 칸트와 니체
13장 망각은 인간에게 불행인가? 피히테와 니체
14장 에로티즘은 본능적인 것인가? 쇼펜하우어와 바타유
에피쿠로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도덕 윤리 교과서에서 '쾌락주의자'라고 표현된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쾌락'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이었을까? 결코 아니다. 일례로 에피쿠로스는 "나에게 작은 치즈 단지를 달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대한 잔치를 벌일 테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그의 '쾌락'은 절제와 검소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영혼의 만족'이란 방탕과 만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 관해 이야기할 때 두번째로 유명한 이야기는 '에피쿠로스의 정원'과 관련된 일화이다. 그의 정원에서는 그 시대에 '인간'의 범주에 속하지 않았던 여성, 아이, 노예들까지 모두가 '우정'에 기초한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서로 다른 계층과 계급의 사람들을 한데 묶고 교류하게 만드는 이 상황을 하나의 '우발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절제의 쾌락과 우정의 공동체, 어떤가? 이러한 그의 활동을 볼 때 책상머리에 앉아 골똘히 생각하는 근대적 학자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는 어떻게 하면 영혼의 만족을 얻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지혜로운 자, 즉 현자에 가깝다.
[관련된 책]
루소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소설가. 역시 상식에 비춰보자면, 루소가 이 범주에 들어간 것은 의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루소야 말로 '지혜로운 현자 타입'에 아주 적절히 들어맞는 사람이다. '지혜'에는 논란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는 '현자'임이 분명하다. 정치적인 행보는 논외로 하고, 그가 말년에 쓴 『어느 산책자의 고독』이라는 글에서 보이는 일화를 보면 단박에 느낄 수 있으리라! 산책 중에 그를 향해 달려오는 개와 부딪혀 기절한 후, 깨어나서 쓴 글이다.
"순간 처음 느낀 것은 기쁨이었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태어났으며, 마치 내가 지각하는 모든 것이 내 연약한 존재로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현재의 순간에 빠져들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중략)… 내 존재 전체가 대단히 놀라운 평온함을 느꼈는데, 그때의 느낌을 떠올릴 때 마다, 나는 우리 삶의 모든 즐거움 가운데 이와 비견할 만한 것을 찾으려고 애썼으나 찾을 수 없었다." (『죽은 철학자들의 서』루소 편에서 재인용)
돌진하는 개와 충돌하는 경험도 드물거니와, 그 경험으로부터 현재, 지금-여기의 영원성을 경험하는 것은 더더욱 드문 일일 것이다.
[관련된 책]
바타유
20세기 중반 프랑스의 작가·사상가. 평생을 에로티시즘에 천착해왔다. 왜 그랬을까? 그는 생산과 축적을 강조하던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제한경제'라는 용어로 부른다. 반대로 순환과 선물 경제에 기초한 경제를 '일반경제'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는 생산과 축적의 과도한 지향은 체제에 에너지 과잉을 불러오고, 이 과잉은 결국 불유쾌한 파멸을 부를 것이라고 말한다. 공황이나 전쟁이 아마 그런 파멸의 선례들일 것이다. 에로티즘도 이런 점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인간의 에로티즘은 단순히 종족보존 본능이나, 성욕해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것은 사치, 소비, 상실, 금지의 가치를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이러한 그의 관점에 비춰 볼 때, 그는 '소비사회'를 이야기한 보드리야르의 정신적 지주라는 말은 납득이 가고도 남는다. 무엇보다 그가 이 부류의 철학자로 분류된 이유는, 그의 사고방식이 기본적으로 면밀한 분석과 객관화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영감과 직관적 통찰에 의존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에로티즘에 관한 책(『에로티즘』(민음사)), 무신론자로서의 입장을 유감없이 드러낸 책(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패러디한 『무신학대전』을 썼다.
[관련된 책]
니체
독일의 철학자. 니체를 표현하면서 '독일의 철학자'라고만 말하는 것은 얼마나 멋대가리 없는 짓인가? 그는 차라리 '시인'이라고 불리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그의 책들에는 풍부한 역설과 은유가 넘쳐난다. 그가 가상의 자서전으로 썼던 『이 사람을 보라』는, 제목부터 그가 평생에 걸쳐 대결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어떻게? '이 사람을 보라'는 예수를 사형시킨 로마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가리키며 한 말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신착란조차도 생生의 긍정성으로 작용하도록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해냈다. 모든 초월성, 창조와 종말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고 말하면서, 영원회귀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당대에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그의 사상을 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300년 후 쯤엔 내 생각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게다." 또는 "어떤 사람은 죽은 후에야 태어난다."라고 말이다.
[관련된 책]






동양편


자유로운 아나키스트
| 자유, 깨달음, 자연주의, 생명
"세상을 위해 내 몸에 터럭 하나라도 내놓지 않겠다!"라고 말하는 타입. 질서니 법칙이니 하는 말에 근본적인 거부감이 있다. 고정된 가치 기준이 없는 당신의 사유는 탱탱볼 마냥 어디로 튈지 모른다, 주의할 것은 한가지! 어떤 진리도, 근본 법칙도, 권력도, 국가도 몽땅 업수이 여기다 보니 '허무주의'에 빠져 몸을 버릴 수 있다. 모든 기성질서를 내려놓고도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는 법을 익혀라! 이 타입의 동양사상가는? = 혜능, 양주, 왕충, 범진
『철학 vs 철학』에서는?
9장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가 가능한가? 양주와 한비자
11장 모든 일에는 절대적인 필연성이 존재하는가? 동중서와 왕충
12장 정신은 영원한 것인가? 혜원과 범신
14장 수양하려는 생각도 집착일 수 있을까? 신수와 혜능
혜능
육조 혜능이라 불리는 이 사람. 무려 1300년 전에 살았던 불교계의 대스타다. 그런데 '육조'는 왜 '육조'인 것일까? 그것은 그가 속했던 교단인 '선종'의 6대 조사라는 의미이다. 불교에는 크게 세가지 교파가 있는데, 율종, 교종, 선종이 그것이다. 율종은 계율을 중시하고, 교종은 자기 수양[참선]을 중시한다. 마지막으로 선종은 혜慧라는 글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혜', 지적인 통찰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율종은 우리에게는 약간 낯설 수도 있는 것이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생활의 미세한 부분까지 간섭하는 유학의 영향력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아마도 민중들에겐 '계율'피로증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율종이 영향력을 확대하지 못하고 당나라 때까지 교종과 선종의 양립체제로 유지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혜능은 선종이 교종보다도 훨씬 더 영향력을 확대하던 시기에 활동했다. 갑작스러운 깨달음(돈오)를 강조하고, 깊은 산 속에서 선문답을 나누는 선종의 오랜 전통에 비춰볼 때, 그가 이 부류로 분류된 것은 꽤 적합하다고 할 수 있겠다. 더불어 사상적으로도 그는 '마음'의 실체성을 부정하였고, 마음을 닦아야 한다는 신수의 주장에, 없는 마음을 어떻게 닦느냐며 응수할 정도로 고착된 생각, 정주적인 사고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관련된 책]
양주
기원전 400년, 동양철학사에서 흔히 '선진시대'(先秦時代)라고 불리는 시기에 활동한 철학자다. 『맹자』 <진심>盡心편에 그의 사상의 일면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글귀가 전해진다. "양주 선생은 위아爲我의 입장을 취한다. 자기 몸의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아는 일을 하지 않는다."가 바로 그것인데, 사실 맹자는 비난조로 적었지만, 우리까지 그러한 태도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어떤 주장이란 늘 다양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전란으로 천하가 황폐해지고, 백성은 나날이 굶주리던 시기에 양주는 생명을 온전히 보존하고 명예, 재산, 이념 등으로 자신의 몸을 얽어매는 당대의 각종 사상과 정치적 규칙에 반대하면서 위아의 논리를 내세운 것이다. 양주가 보기에는 천하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외물外物(부, 명예, 권력)에 휘둘리기 때문에 전쟁이 끊이질 않는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사상에 비춰 보자면, 진정 중요한 것은 사람이 각자의 자유에 따라 각자의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이다. 국가, 권력, 명예, 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이 부류의 철학자들 중에서도 양주가 가장 급진적이지 않을까 싶다.
[관련된 책]
※ 양주가 직접 저술한 책은 전해지지 않으나, 『열자』『맹자』 등에 그가 가진 사상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구절이 있다.
왕충
중국 한나라 시대의 유명한 학자이다. 어릴 때부터 고향마을을 주름잡는 천재였다고 한다. 8살 때는 논어와 서경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외울 수 있었고, 15세 때에는 당대의 메트로폴리스 낙양으로 가서 유학의 경전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했던 성장환경 덕에 급진적이고 과격한 정책들을 내는 그는 결코 중용된 적이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다행일 수도 있는 것이, 중용받지 못하다보니 더욱 공부에 매진하였고, 지금까지 이름을 남긴 대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사상은 유물론적인 것으로 유명한데, 인간은 자연에 자신의 의지를 강요할 수도 관철시킬 수도 없으며 오직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에 자신을 적응시킬 수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의 요지이다. 그러다보니 그의 사유에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무신론적인 성격도 발견된다. 자연이 객관적 존재이고, 거기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인간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때 용龍의 자손인 황제의 신성도 별것 아닌 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논리에 당대 지배층이 식겁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 천재이면서 반골인 경우, 그리고 반골을 반골이 되게끔 만드는 경우가 바로 왕충의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주의! KOEI사의 유명한 게임 삼국지에 나오는 '왕충'과는 다른 인물임.)
[관련된 책]
범진
인간이 죽은 후에는 무엇이 남을까? 범진은 생명이란 몸과 마음의 결합체로 보았다. 그리곤 날카로움과 칼날의 비유를 들어 칼날이 사라진다면, 날카로움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몸이 없어진다면, 영혼 또한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그는 400년경 활동했던 사람으로 영혼불멸론을 주장했던 혜원에 맞서 신멸론(神滅論)을 주장한 사람이다. "죽은 뒤에 영혼이 어찌되든 뭔 상관이람" 할 수도 있지만,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는 주장이다.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조건에서 가령 죽은 뒤에 남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유교적 전통의 '제사'는 결코 의미 있는 짓이 못된다. 다시 말해 산 사람들의 일상적 생활에도 무수한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우리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엄청난 변화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관련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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