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논란될만한 거 아는데도 이런 글 써야하는 거 굉장히 조심스럽고, 불편하고 착잡하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할 것 같아 쓴다. 나랑 친한 사람은 내가 사생활 문제 민감하고, 특히 온라인 사생활에 대해 민감한 거 알거다. 싸이도 전부 일촌공개고 페이스북도 영화 관련 홍보글 두어개 빼곤 다 친구공개다. 주기적으로 검색엔진에서 내이름 쳐서 내 흔적 지우고 다닌다. 이름이 워낙 특이해서 이름 걸고 하는 일 유독 조심스럽다. 논란되는 일에 끼는 것도 피곤하다. 그런 성격으로 이런 글 쓰는 거 사실 나로서는 쉽지 않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글이라 경어로 써야할 듯 하지만, 편의상 쓰겠다.


 박근혜 동문의 청와대 입성을 반대하는 서강 동문 성명에 서명했다. 일이 커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안한 건 아니지만, 내 소신이었다. 서명하고 며칠 뒤 몇몇 친구들한테 연락이 왔다. 기사봤다고. 기사에까지 내 이름이 실릴 줄은 몰랐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몇몇 친구들은 공감을 표했고, 몇몇 친구들은 날 걱정했다. 아직 취업도 안 한 마당에 가뜩이나 이름도 특이한데 서명하는 거 조심스러웠다. 내가 서명할 때 페이스북 게시물에 했는데, 그 때 서명한 사람 몇 있지도 않아서 더 조심스러웠다. 근데 그 성명서 초고에 구구절절 공감이 갔고, 잃을 것도 없는 젊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내 생각을 표하는 걸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벌써부터 두려워하면 안될 것 같아 나 자신한테 떳떳하고 싶어 서명했다. 


 그 후엔 이제 페이스북 페이지가 생기고 난리가 났네. 내 이름이 이 커뮤니티 저 커뮤니티 곳곳에 깔리고.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웹에 내가 남긴 흔적 지우고 다닐 정도로 폐쇄적이고 소시민적인 나한텐 좀 충격이기도 했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그대신, 그 성명서 페이스북 페이지에 반발하는 사람들에게 내 의견을 말하려고 이 글을 쓴다. 내가 한 일에 대한 비판과 비난을 말없이 받아들일 정도로 큰 그릇이 못 된다.


 우선, 가장 논란이 되는 페이스북 페이지 이름은 나도 유감이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서강 동문은 박근혜의 청와대 입성을 반대합니다.' 웃기는 이름이다. 서강 동문 모두가 박근혜의 당선을 반대한다는 양 쓰였다. 성명서 제목과 같다고 하는 모양인데, 내가 기억하기로 맨 처음 페이지가 없이 내가 페이스북 글에 서명할 때 그 글 제목은 '서강 동문 00명은 박근혜의 -' 였다. 내가 잘못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페이지 이름에 대해서는 나도 공감할 수 없고, 페이지가 좋아요 개수가 200개를 넘어서 이름을 수정할 수 없다고 하는데, 페이지를 삭제하고 다시 만들어야할 만큼 잘못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페이지 운영자도 페이지 이름에 대해 잘못이라고 인정했고, 앞으로 '일부' 서강동문 이라는 거 강조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페이지를 삭제하고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개설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페이지 이름의 문제가 아닌, 너희가 뭔데 서강 동문 이름으로 박근혜를 반대하는 성명을 내느냐 하는 성명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 '박근혜 동문의 당선을 반대하는 서강 동문 선언'정도로 이름을 바꾸어 선언을 한다면, 선거법 위반도 아닌데 문제될 게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다. 


 내가 서명한 이유를 말하자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내 학교가 이명박의 고대처럼 외부에 보이는 게 싫기도 해서다. 좋은 집단이건 나쁜 집단이건 집단이라는 것은 집단의 성격과는 무관하게 존재 자체로 집단 밖의 사람들에 대한 유무형의 폭력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고 생각한다. 내 페이스북에 출신 고등학교 출신 대학교 굳이 표기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 표기 자체도 누군가에 대한 폭력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고 결국 그 대가로 고소영 내각이라 불리는 열매를 쟁취한 고려대의 천박함이 싫었다. 집단 밖의 사람들에 대한 폭력의 절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까지는 이명박과 고대만의 문제가 아닌 당장 해결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라고 넘어간다쳐도, 집단 안에서 그러한 동문들의 행태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게 더 싫더라. 고대라는 학교는 집단 안에서 다른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지 못할 정도로 닫힌 집단인가 싶었다. 그런 생각에서, 내가 사랑하는 서강대라는 학교는 어느 대학처럼 일치단결해서 대통령 만들려고 혈안되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 콩고물 얻어먹으려고 혈안된 사람들만 있는 곳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성명서를 보고 자랑스럽게 서명했다.


 이 성명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은 '서강'이라는 이름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는데, 그것만큼 웃기는 얘기가 없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할 것은, 학교 당국이지 학교 동문들이 아니다. 선거법 위반도 아닌데 개인에게 누가 무슨 자격으로 정치적 중립을 강요하나? 당신만 서강대 동문인가? 나도 서강대 동문이다. 나는 박근혜가 서강대인거 쪽팔리고, 박홍이 나올 때마다 앞에 '서강대 전 총장' 타이틀 달고 나오는 것도 거슬리고, 서강대 교수라는 타이틀 달고 종편 나와 대놓고 헛소리하는 교수도 쪽팔리지만 내가 그 사람들한테 '어디가서 서강대 이름달고 무슨 짓 하지마라.' 할 권리는 없는 거 아닌가. 마찬가지다. 누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에게 정치적 중립을 강요하는가. 서강이라는 이름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는 당신들은 우리학교 교수님들이 이명박 실정에 반대하는 시국선언할 때도, 서강대라는 이름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고 길길이 날뛰었던가? 시국선언에 동의하지 않는 교수님들이 그 선언에 서강대 교수 다수의 의견이 아니니, 서강대 교수라는 이름 쓰지말라고 날뛰었던가? 아무도 안 그랬다. 왜?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낼 수 있는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이 선언이 자기를 대표하지 못한다고 느낀다면, 박근혜를 지지한다면, 박근혜를 지지하는 서강 동문 선언을 하면 된다. 이 선언처럼 자기 학번 이름 걸고 똑같이 하면 된다. 이 선언보다 많은 이가 참여한다면 이 선언보다 더 대표성이 커진다. 그 선언이 먼저였어도 난 혼자 욕은 할지언정 거기에 대놓고 우리를 모두 대표하는 것이 아니므로 서강 이름 쓰지말라는 식의 비판은 안했을거다. 그건 민주주의의 기본도 모르는 대응일 뿐이니까.


 그리고 애초에 박근혜 지지하는 동문들은 활동 안한 것처럼 구는데,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 않아 조용히 넘어간거지 그동안 박근혜를 지지하는 동문들의 행위는 없었나? 박근혜 동문 지지하는 동문들은 학번 이름 걸고 하는 박근혜 반대선언만큼 떳떳하지도 않고 야비했다. 내가 이 학교 입학한 2010년에 내 이메일주소는 어떤 경로로 안건지 박근혜 동문 지지하라고 전체메일 왔었다. (메일이 남아있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같은 경험한 사람들 여럿 봤다.) 그뿐인가. 뭣 모르는 새내기들 불러다가 고학번들이 밥사준다고 해놓고, 밥사주면서 그냥 동문까페라고 박근혜 지지하는 서강바른포럼 까페 가입하라고 시키지 않았나. 교수가 되어서, 동문인 박근혜 선배 지지하라고 학생에게 페이스북 메시지 보내지 않았나. 내가 겪고 보고 들은 사례만 이정돈데, 죄다 이런 식으로 물밑에서 학생들 서강 이름 걸면서 박근혜 지지하게 만드려는 야비한 시도들을 해놓고, 어찌 학번 이름 걸고 자신의 뜻을 나타낼 뿐인 선언을 서강 이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하나. 자신들은 그 행위를 하지 않았고 그냥 서강의 이름이 정치적으로 쓰이는 것에 반대한다는 동문들에게도 묻고 싶다. 박근혜 지지하라는 메일이 나한테만 온 건 아닐텐데, 정말 다들 그런 물밑의 행태 전혀 몰랐나? 알았다면 왜 그 땐 다들 가만히 문제제기 안하고 공론화 안해놓고 지금 일부 사람들이 학번 이름 걸고 하는 선언에만 문제제기하나. 당신들이 정말 정치적으로 중립적인가? 박근혜 지지하는데 이름 학번 달고 지지선언할 용기가 없는 건 아니고?


 모래알 서강이니 어쩌니 비아냥거려도, 나는 서강대가 다른 대학처럼 천박하게 그것이 얼마나 촌스럽고 폭력적인지도 모르고 일치단결해서 자기 학교 출신 대통령 만들고 그 콩고물 좀 얻어먹어보겠다고 하는 사람들만 모인 곳이 아님에 안도한다. 이런 학교가 자랑스럽고, 이런 학풍이 자랑스럽다. 


 2010년 내가 서강에 입학하던 해, 등록금 문제가 이슈였고 대다수의 학교들은 등록금을 동결했다. 그런데 서강대는 등록금을 인상했다. 개교 50주년 행사를 해야하기 때문이라했다. 그리고 개교 50주년 행사엔 박근혜가 왔다. 홀로 보이콧했지만, 문제제기하지 않았다. 내가 박근혜를 서강 개교 50주년 행사에 오라 오지말라 할 권리 없다고 생각했다. 당신들은 자신들의 권리 영역을 너무 크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도 동문의 한 사람이고 당신도 서강 동문의 한 사람일 뿐이다. 누가 누구의 정치적 중립을 강요하고, 서강 이름을 걸지 말라고 강요하나. 꼬우면, 지지선언 하시라. 이상이다.





정리해서 페이스북에 올리려고했는데, 소심증 발동하고 써놓고보니 내 분도 풀려서 올리진 않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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