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았다. 고등학교 때 집에 DVD가 있어서 본 '스몰 타임 크룩스' 이후로 우디 앨런의 영화는 처음 보는 거였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개봉했던 작년 여름에 나는 진짜 파리에 있었기 때문에 이제서야.


영화는 처음 3분이 넘도록 마냥 아름다운 파리의 풍경들을 보여준다. 여유로운 음악과 함께 보여지는 파리의 풍경은 환상적이고, 그 장면이 3분이 넘도록 지속된다는 걸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물론 실제 파리는 영화 속의 파리만큼 아름답지는 않지만.


오웬 윌슨은 나에게는 성룡과 함께 나오던 액션 영화의 어리버리한 인물로 각인되어있어서 영화 속에서 다른 배우들과 어우러지지 못하는 느낌을 주지만, 역할과는 꽤 어울렸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뮤즈인 마리옹 꼬띠아르는 정말 분위기 있고 영화랑도 잘 어울리고. 찾아보니 파리 태생이구나. 


설정이 조금 억지스러운 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런 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이 우디 앨런의 내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은 좋지만 이 내용이 소설이나 만화 같은 다른 매체로 구현되는 건 상상이 안 되고, 영화라서 좋은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작년 여름에 갔던 파리를 계속해서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파리엔 5일인가 6일밖에 있지 않았지만. 내가 갔던 곳이 꽤 많이 나왔다. 시테 섬 주변의 세느강변, 노트르담 성당, 팡테온 근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에펠탑, 몽마르뜨, 파리의 여러 거리들. 얼마 전에 007스카이폴을 영화관에서 봤을 때도, 내가 갔던 런던 곳곳이 나와서 작년 여행을 떠올리며 영화를 봤는데, 이 영화는 파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영화여서 그런 생각이 더 했다. 모네의 작품 속 풍경과 완전히 똑같은 영화 속 정원에 못 가본 게 아쉬웠고, 주인공이 현실 세계에서 방문하는 미술관도 내가 못가본 곳이라(찾아보니 '오랑주리 미술관') 아쉬웠다. 나중에 파리를 방문한다면 두 군데 다 가봐야겠다. 


영화의 주제도 공감이 갔다. 사람은 언제나 과거를 바라보고 미화하면서 사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산다. 얼마전엔 작년 생일이 참 행복했었다고 일기를 썼었는데, 작년 생일엔 그 때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었다. 비단 그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겪을 때는 행복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기억 속에 남으면 언제나 행복했던 듯 남는 것 같다. 


영화 속의 주인공과 에드리아나처럼, 나도 그리워하는 시대가 있었다. 1930년대 경성에 태어나 박태원이나 이상과 함께 모더니즘을 논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고, 1970년대 미국에 태어나 히피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했었다. 1970년대 서울도 나쁘지 않고. 하지만 지금의 시대로 훗날의 누군가는 황금 시대로 여길 시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영화를 통해 하게 됐다. (문화적으로 충분히 그럴만한 시대다.)


아무튼 영화 속의 풍경이 참 아름다워서 마음이 좋았다. 파리에 가보지 않았더라면 영화를 보고 마냥 파리를 동경하게 되었을테지. 파리에 가봤기에 영화를 보고도 파리에 다시 가고싶다 하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지만 그래도 영화 자체로 참 아름답고 좋았다. 




작년 여름 파리 몽마르뜨에서, 민성오빠 민지와 함께 마시던 샹그리아. 갑자기 기타를 맨 프랑스 남자가 나타나서 넷이 합류해서 같이 술을 마셨었지. 이 때 참 행복했었는데. 여행을 할 땐 여행이 그렇게 즐겁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즐겁구나. 정말로 사람은 언제나 과거를 바라보며 사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