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모든 공채가 끝난 11월 말쯤 올해도 이렇게 소득 없이 한 해를 마치는구나 

하는 허무한 마음이 가득 했다.

그 때 자주 구경하는 커뮤니티에서 '담마코리아 가보신 분?'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는데 

'아주 힘들지만 보람있다'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곳이기에 호기심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명상센터였다.


그전까지 내가 아는 명상이라곤 초등학교 명상시간에 하던 게 다였다. 

눈을 감고 아주 뻔한 도덕적인 이야기를 들려준 후 그 이야기를 명상록에 적으라는...아주 의례적이고도 지겨운 시간이었는데

명상센터 홈페이지를 보다보니 왠지 끌리기 시작했다.

홈페이지에서 읽은 명상센터의 특징과 규칙은 이러했다.


- 시간표는 밥-명상-밥-명상-휴식-명상인데 시간표를 빡세게 지켜야함.

- 10일간 핸드폰 사용 금지, 책읽기, 음악 듣기, 글쓰기 등 일체의 행위 금지. (속세와의 단절)

- 10일동안 말을 하면 안됨. (묵언수행) 눈짓 등 다른 종류의 소통도 일체 금지. 

- 밥은 오전 6시 30분과 11시 두 차례 먹으며 11시 이후는 금식.

- 채식. 

- 종교적인 색채가 없는, 그저 오래 전해 내려온 수행법임.

- 일단 무료이며, 코스를 마친 후 다음 코스 참가자를 위해 기부하고 싶은 만큼 기부를 하면 됨.


간결했지만 빡셌다. 

명상이 뭔지도 개뿔 몰랐지만 읽다보니 호기심이 생겨났다.


스마트폰 중독자이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늘 핸드폰 없는 세상에 살아보고 싶다던 소망을 이야기했었기에

핸드폰 없는 10일이 궁금하기도 했고

10일동안 말 한 마디 할 수 없는 일상이 궁금하기도 했다.


괜히 안해도 될 말을 해서 망쳐버린 면접과 연애, 술이든 뭐든 절제를 몰라 벌어졌던 수많은 일을 후회하며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명상센터 고유의 목적이 무엇이든, 나는 명상센터에서 스스로를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인지 시험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마침 개설된 코스 중에 12.24-1.4라는! 가난한 백수 솔로에겐 매우 맘에 드는 날짜 구성이 있어 신청했다.

신청할 때까지만 해도 이미 신청이 마감되어 대기자 명단이었기에, 

"되면 그 때가서 생각해보고 말면 말아야지~" 하는 맘으로 가볍게 신청하고...

친구들과 저런 곳이 있다더라 하며 농담으로 "나 명상센터 갈거다~~"하고 입을 털고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연말연시를 앞두고 다들 뭔가 일이 생기신건지^^^*

진짜 대기자가 다 빠져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며, 참가하겠냐는 이메일이 왔다.ㅋㅋㅋㅋㅋㅋㅋ


아 이거 가야 돼 말아야돼?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아 여기 사이비 아냐? 사이비면 어쩌지...날 10일동안 속세랑 단절시켜서 가둬놓고 세뇌시키면 어쩌지...

나는 사이비한테 넘어갈 인간일까? 스스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만약 사이비인데 넘어가면 어떡하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는데ㅋㅋㅋ 그전에 주위 사람들에게 갈 것처럼 미리 말을 던져놓고 다닌 것도 있었고

연말이 다가왔는데도 약속이 거의 없고 크리스마스 계획^^^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ㅋㅋㅋㅋㅋ

그래! 이참에 속세를 떠나보자! 하는 결심에 도달했다. ㅋㅋㅋㅋㅋ

집구석에 앉아 가족들이 틀어놓은 연예대상을 억지로 시청하며

날 떨어뜨린 면접관이나 날 갈구던 인턴시절 선배의 이름을 연예인 수상소감에서 듣는 그 상황이 (작년의 경험임^^+) 

또 찾아오는 게 두려웠다

약속이 있어봤자 바가지 씌운 비싼 술값에 술이나 흥청망청 마시며 보낼 게 뻔하기도 했고.


나는 뜻깊은 연말연시를 보내보자!

후기 보니 채식에 두끼만 먹어서 4kg씩 빠졌다는데 나도 살이나 빼오자!

폰없이 말없이 살아보자! 나도 절제할 수 있어!


이런 

조금은 충동적인 맘으로 

진안 가는 버스를 타고

명상센터로

떠나게 되었다...


두둥-!!!


- 2편에서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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