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떠올리면 생각나는 색깔이 있다
왜 그런지, 무슨 의미인지 나조차도 모르겠지만
단어에서 성격이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추측해본다 (그 때문에 이름이 중요한 것!)
친한 친구에게 말했더니 자기도 그렇다고 해서
한참동안 사람과 색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색깔이 뚜렷이 느껴지는 주위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볼까나
고등학교 선생님인 친한 친구 ㅁㅅ(여)는 왠지 베이지에 가까운 갈색
차분하고, 가을 같고, 성숙한 느낌이다
할머니가 벽난로 앞에 앉아 짜준 스웨터 같다
옆 이미지는 린넨이라 써있었는데 질감마저도 ㅁㅅ 같다
드라마 PD를 준비하고 팟캐스트를 하는 ㅅㄱ언니는 톤 다운된 초록색 deep green
생각과 고뇌가 많지만 왠지 따뜻한 느낌 이지적인 느낌도 있고
언니 생각하면 숲이 생각나는데, 밝고 울창한 여름 숲 말고 북유럽의 판타지적인 숲이 생각남
영화 '더 랍스터'에 나오는 솔로부대가 모여사는 숲 같다
그래서 톤 다운된 초록색
기계과 졸업생 ㅎㅈ이(남)는 gray blue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심연 같은데 막상 내려가보면 아무것도 없이 깔끔할 것 같다
이 색을 마주할 때 난 심연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조심해야할 것 같은 위협을 느끼는데
막상 삼켜져도 별 일 없을 것 같음
안전한 심연
작업복과 수트의 중간 혹은 둘 다. 적고 보니 아빠 색깔과 비슷하네
나는 반말하고 걔는 존댓말하는 선배이자 동생 ㅅㅈ(남)는 밝은 겨자색 mustard
얜 좀 특이한 게 하나도 친하지 않았을 때부터 얘 색이 보였다
멀리서 봐도 겨자색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웃기는 앤데 막상 본인은 크게 웃지 않는다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하는데 애쓰는 느낌도 없고.
한 때 개그맨이 되고 싶었다는데 내 머릿속 KBS 개그맨 느낌에 비추어보면
너무 잘 어울려서 놀랐다. 재밌지만 속깊은 동생.
고1 때 좋아하던 I 오빠 색과 비슷하네 그 오빠가 조금 더 탁한 느낌이지만
고등학교 친구이자 나와 같은 그룹의 일원 ㅈㅎ(여)는 분홍색 light pink 같은 사람이다
사실 요샌 자주 만나지도 않고 얘 생각을 하는 일도 드물어서 딱 생각이 안났는데,
여러 사람을 생각하다보니 주변인이 대부분 무채색이나 톤 다운된 색이라는 생각이 들어
파스텔톤, 분홍색 사람은 하나도 없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ㅈㅎ가 생각났다
ㅈㅎ는 고등학교 때부터 화도 잘내고 짜증도 잘 내고 제멋대로인, '소녀'였다
난 ㅈㅎ가 지금도 소녀 같다고 생각한다
김혜자 같은 사람을 일컬을 때 말하는 '소녀' 말고, 짜증 잘내는 사춘기 소녀
요시토모 나라 그림 중에 눈이 양 옆으로 쭉 올라간 화난 표정의 소녀가 있는데 얠 떠올리면 그 이미지가 생각난다
내 주위에 드문 파스텔톤 사람. 나이 들고부턴 더더욱 없다.
일단 생각 나는 건 이렇게 다섯 명.
쓰다보니 느낀 건,
깊고 톤다운된 색의 친구들과는 단둘이 만나는 게 더 좋고,
함께 술을 마시면 내밀한 마음이나 인간 분석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밝은 색, 가벼운 색의 친구들과는 여럿이 만나는 게 좋고,
함께 술을 마시면 섹드립이나 가벼운 장난, 농담을 나누는 게 좋다.
어느 쪽이 더 좋다고 할 수 없게, 양쪽 다 소중하다.
둘의 밸런스가 맞아야 내 감정이 제대로 굴러가는 것 같다.
색을 느끼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색으로 느껴질지 궁금하다.
이 얘기를 나눈 유일한 친구인 ㅇㅇ이는 내가 진한 분홍주황초록의 츄파츕스 같은 인간이라 했었는데.
알면서도 모르겠다.
파스텔톤이나 톤다운된 색보단 원색에 가까운 인간일 거란 생각은 든다.
어떤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색깔을 느끼고 있으면 신기할 것 같다.
이 얘기를 나눈 유일한 친구는 그랬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 궁금하다. 다른 데서도 이야기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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