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때 세례를 받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아빠 엄마는 친가로부터 내가 십대 후반이 되고 나서야 겨우겨우 분리되었기 때문에 

(근거리에 따로는 살았지만 감정적으로나 뭐나 분리되지 않고 엄마가 시집살이를 했음)

아빠 엄마의 종교나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세례를 받게 된 것이다


어릴 때는 일요일마다 할머니가 다니시는 교회에 온가족이 가야만 했다

나는 교회 가는 게 재미 없어서 싫었다

대머리 목사님이 졸음이 쏟아지는 설교를 하는 게 예배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리고 기도 시간에 눈감고 다같이 기도하는 것도 싫었음

난 기도할만큼 절실한 게 없었는데 기도하라니까 하기 싫었고, 눈감기도 싫었다

그래서 보통 눈을 뜨고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엄마한테 말을 걸다가 혼나곤 했다

큰 소리로 기도하다 울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어른들이 많았는데 무서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헌금 걷는 시간만 좀 재밌었는데 유일하게 내가 뭔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돈을 넣느라.

끝나고 목사님은 사람들이 봉투에 적은 기도 제목을 쭉쭉 일어줬는데 그 시간도 괜찮았다

할머니나 엄마가 내 관련 기도를 써서 내 이름이 불릴 땐 라디오에서 사연 읽힌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욕망을 듣는 게 재밌었음

요새도 막 어디 행사장 같은 데 가면 나무에 소원 매달아 놓는 곳에 사람들이 적어놓은 소원 구경하는 거 좋아하는데 

그때도 그랬나보다

 

그러다 초2때 친해져서 하이킥의 민호와 범이 수준으로 매일 붙어다니던 베프가 

동네 교회를 다녀서 교회를 따라 다니게 됐다

할머니 교회와는 달리 규모가 좀 있는 교회였고 나는 초등부를 다니게 됨


새로 다닌 교회는 돈이 많아서인지 전도를 하면 선물이 팡팡!!! 쏟아졌다

친구를 한 주 데려오면 미미 인형 한 개, 두 주는 뭐, 세 주 연속 데려오면 미미 인형 큰 세트 뭐 이런 식으로

5주가 최대치였는데 5주 연속 데려오면 대박 선물을 받았음

그래서 난 이 때 친구들과 선물을 나눠 갖자는 딜을 하고 수많은 애들을 교회에 데려갔다

심지어 대전에서 잠깐 우리집 놀러온 친구까지 교회에 데려감;;;ㅋㅋㅋ


암튼 그렇게 전도에 미쳐 지내며 예배 시간이 끝나면 선생님과 함께 성경 공부도 하고 그랬지만

아무리 들어도 신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수긍이 가지 않았다

비판적인 생각만 들었다

'신이 있는지 어떻게 알지? 신이 있으면 왜 세상이 이따위지? 

이 성경 구절은 말이 안되지 않나? 왜 성경 속에선 여자랑 남자는 평등하지가 않지?'

나는 <짱구를 못말려>를 보면서도 

짱구 엄마는 아빠한테 존댓말하는데 왜 짱구 아빠는 엄마한테 반말하는지를 궁금해하던 

젠더 감수성, 인권 감수성이 풍부하던 초딩이었기 때문에

오래된 책인 성경엔 나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너무나 많았다

근데 불행하게도 교회엔 나의 이런 질문에 논리적으로 대답해줄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친구들이랑 놀러만 교회를 갔다


달란트 시장은 재밌었다

근데 교회 활동을 열심히 안해서 달란트를 많이 못 모아서

다른 애들이 좋은 장난감 다 사갈 때 <끝까지 하나님을 믿은 욥>인가 뭔가 하는 그림책 밖에 살 수 없어서 슬펐다

그 만화책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욥이 내내 고통 받는 내용이 인상 깊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하나님이 욥을 시험하려고 무슨 가시덤불을 보내고 뱀을 보내고 해서 욥에게 교통을 줬는데도

욥이 하나님을 믿었더니 욥에게 선물을 내려주었다 뭐 그런 내용임

근데 그 책 읽으면서도 "왜 자기를 믿는 사람을 시험하지? 하나님 졸라 쪼잔하네"라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게 초2~4 때의 생각이니 난 그냥 애초에 신을 믿을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었던 것 같다

남은 달란트로는 컵떡볶이를 사먹었다

그 때 달란트로 산 책을 구글에서 발견


또 교회에 대한 좀 별로인 기억 중에 하나는 교회 수련회를 갔던 것이다

엄마는 매번 방학 때가 되면 나를 어디론가 떠나 보내고 싶어했다

할머니댁이라든가, 수련회라든가, 캠프라든가, 청학동 예절학교라든가

(여긴 진짜 중학교 때까지도 제발 좀 가라고 했는데 티비에서 보고 내가 절대 안간다고 난리쳐서 안감)

난 캠프란 캠프는 다 싫어하는 초딩이었기 때문에 절대 집을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교회 수련회는 엄마와 절친 엄마의 합작 작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한 번 가게됨


수련회에 갔는데 제단이 있고 무슨 호박신 탈쓴 사람이 있었음

호박신이 음산한 bgm에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를 틀고는 무섭게 굴었다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호박신의 목소리는 

너네들 집에서 버르장머리 없이 엄마한테 대들지~ 어쩌고 하면서 우릴 혼냈고, 

뭐 그러더니 가족들이 다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면 자기한테 절을 해야 한대

초딩들 일동 쭈뼛거리니까 계속 절하라고 다그침


그 때 내가 초3인가였는데 비판적 사고력이 기형적으로 뛰어난 '삐뚤어진 어린이' 시절이라

저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절 시켜놓고 우상숭배라고 혼내는 거 아니야?'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근데 뭔가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낼 분위기가 아니길래 나도 그냥 남들이랑 같이 절을 했다

그러자

정말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호박신이 호박머리 벗었더니 교회 선생님이었고 다른 교회 선생님들까지 몰려 나와서 우리를 혼냈다 우상숭배하냐고


와 진짜 억울했음 

지네가 함정 파놓고 걸렸다고 난리여

시험 해놓고 시험에 든다고 뭐라하는 심보는 무엇인가

하여튼 이렇게 신에 대한 믿음은 멀어져만 갔고, 

그냥 심심해서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 같은 거 좔좔 외워 말하면서도

성경에서 말 안되는 부분만 찾는 매의 눈을 장착하게 되었다

그 결과 4학년이 되고 같이 교회 다니던 절친이가 이사를 가면서 나도 미련없이 교회를 그만두게 되었다


근데 교회에서 진짜 뻥 안치고 1년 넘게 날 쫓아다녔다

매주 일요일마다 우리집 찾아와서 초인종 누르고 나오라하는 건 기본이었고

엄마랑 내가 안 나가고 자는 척 하고 있으면 전화도 마구함

1년 넘게 여러 명이 그렇게 돌아가며 우리 집을 찾아왔다 이러면 천국 못간다 협박도 하고 뭐라 말도 하고

우리 엄마가 내가 잔다고 돌아가시라고 좋게 말해도 

문틈새로 날 겁나 크게 불러대고 하여튼 사람을 질리게 함

동네를 맘대로 못 돌아다닐 지경이었다 

돌아다니다가 교회 선생님이나 전도사라도 마주치는 날에는 길바닥에 서서 훈계 20분 듣는 게 기본이었음

교회 전도사 중에 다리 저는 장애인 전도사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의 목발은 공포의 아이템이었음

그 아저씨 목발을 500m 밖에서도 알아보고 길을 뺑 돌아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사람이나 추노꾼에게 쫓기는 노비의 심정이 그랬으려나

친구랑 같이 길가다 교회 사람 보이면 친구한테 미안하다고 먼저 가라고 하고 숨는 게 일상이었다

왜그러냐던 친구들도 나중엔 다 알게 돼서 그 교회 사람이 보이면 나에게 알려주고 같이 숨어주고 쇼를 했다


말 그대로 '들어올 땐 맘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를 체험한 1년여의 시간이었기에 다시는 함부로 교회에 발을 들여놓지 않게 되었음


그치만 이후로도 할머니 교회에 주요 기념일마다 동원돼야 했던 건 변함이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삼촌들과 함께 가족 찬송대회에 참석하여(동원되어) '나는 주의 어린 양~~'을 불렀던 기억도 생생

아 보신각 종 실제로 보는 게 꿈이었는데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 시간엔 항상 교회에서 송구영신 예배를 하면서 카운트 다운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도 교회 끌려가고 아악


교회 추억이 참으로 많구만

그립진 않다

글을 쓰다보니 나같은 본투비 무신론자가 이렇게 오래 교회를 끌려다녔다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아무튼 이래서 교회 개그만 나오면 빵빵 터진다 교회를 아니까

윤성호나 릭앤모티나 교회 개그 나오면 웃음보가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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