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골(反骨)이다. 어디서나 그래왔고 지금도 어느정도 그러하다.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생 때는 웬만큼 공부를 잘하면 담임선생님들이 좋아해주었다. 난 공부잘해서 가만있으면 중간은 갔을텐데 담임한테 끊임없이 반기를 들었다. 남자 변태 할아버지 담임이었는데 내 일기 코멘트에 너는 너무 불만이 많다고 했다. 그러자 내가 그다음날 일기에 썼다. 이 세상은 불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여기까지 발전되어온 것이라고. 시계가 없는 게 불만이던 사람이 시계를 만들었고 고기를 생으로 먹는 게 불만이던 사람이 고기를 구워먹기 시작했다고. 담임이 거기다 뭐라고 코멘트를 달았는지는 기억 안난다.

그 이후로도 기억하고 싶지않은 녹색어머니에게 따져서 담임한테 까인 사건(이 역시 초딩때. 좀 버릇이 없었다.), 아담과 하와이야기로 매 수업을 시작하며 이라크 침공은 미국이 이라크에 은총을 베푸는 것이라 했던 기술선생이랑 수업시간에 맞짱 뜬 사건(중딩때), 정형근 국회의원실에서 전화온 사건(역시 중딩때), 만우절날 후배들이랑 반바꿨는데 용납못한다고 후배 한 반 포함 우리 반 모두를 때리고 기세등등하게 벌세우고 나서 불만있는 사람 손들어 하는 담임한테 불만있다고 손들고 나간 사건(근데 그사건으로 너 같은 학생은 처음이야 효과인지 담임이 날 매우 좋아하게됨) 등등 반골의 사례들은 끝이 없음.

근데 나도 어느 시점부터인지 사회의 부조리함에 눈을 감게 되고 나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살아가는 모난 것이 싫은 소시민이 되어버렸다. 저렇게 파이터 본능도 이제는 피곤하고 어쩌고. (물론 때되면 또 나오겠지 성질이 어디가나/ 하지만 이제는 어디서 성격 둥글다는 소리를 가끔씩은 들을 정도가 되었다) 무튼 그러자 반골기질은 다른 분야에서 더 드러나게 되었다. 

크고나서는 내가 좀 오타쿠라고 여겨지는 분야에서 반골기질이 빛을 발한다. 좋아하다가도 그게 뜨고나면 그걸 좋아하다는 말이 어쩐지 꺼려지고 마음이 떠난다. 대표적으로 데뷔전 그와 내가 모두 중딩일 때부터 좋아했던 지드래곤과 YG(빅뱅으로 나오고 첫 앨범 별로일 때까지는 앨범도 사면서 응원했는데 뜨고나자 안티비슷하게 돌변함), 수많은 밴드들...최근에는 10cm, 조국...아 난 뜨기 훨씬 오래 전부터 팬이었어! 아직도 좋지만 뭔가 짜게 식는다. 

그래서 엄청 좋아하는 무언가는 남에게 잘 안알려주려고 한다. 요새는 이미 알 사람은 다 알기는 하지만 윤성호 감독. 내 주위 잉여들은 모르니깐...

반골기질의 끝은 야구. 우리아빠 OB원년부터 팬. 삼촌들도 다 두산팬. 아빠따라 두산팬되었으면 편했을 것을. 올림픽,wbc 끝나고 다들 우루루 두산팬으로 대거 몰려갈 때 왠지모를 반골기질이 또 발동한듯. 언니가 중학교 때 흘리듯이 LG팬이라고 했는데 그 때부터 나는 LG팬이라고 말하고 다니고 개뿔도 몰라서 남들 갈 때 따라서 두산팬으로 바꿨어도 아무도 뭐라안하고 본인도 기억못 할 상황인데 잘나가는 두산 모두가 갑자기 신생팬이 되어가는 두산 싫더라. 반골 발동. 엘지팬입니다요 에헤헤...
뒤늦게 알고보니 언니는 말만 엘지팬이었지 선수가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나만 엘지광팬되서 매시즌 속썩고 있다. 

이외에도 요새는 스마트폰과 트위터에 대한 반골기질이 극에 달하고 있다. 트위터랑 페이스북도 주위에 다른 애들 아무도 안할 때 먼저 알아서 혼자 잠깐 했었는데, 개인정보 문제때매 금방 관뒀지만 별 생각 없다가 누구나 다 하고나서부터 더 싫어진듯.

암튼 반골 얘기 하다보면 끝없겠다. 대세를 거스르고 싶어하는 이놈의 본능은 가끔 무리수가 되기도 하고 승부수가 되기도 한다.

아 오늘 결국 쓰고 싶었던 말은 내가 반골인 것의 큰 책임은 우리 엄마한테 있다는 거다. 내 이름은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에 나오는 동학농민운동에 앞장서는 절름발이 농민의 이름에서 따왔으니까. 이름부터가 반골한테서 따옴. 엄마 또한 내 이름을 이렇게 지어서 네가 그렇게 권력에 저항적이고 대세에 부정적인 반골인 애가 된 것 같다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하셨다. 이름 바꿀 생각 없냐며.

어렸을 땐 이런 내가 삐뚤어졌다고 생각해서 불편한 점도 많고 난 왜 둥글지 못할까 자책도 많이했는데. 이러저러하게 커가면서 사적 관계에서 반골기질을 많이 덜어낼 줄 알게 된 후로는 나와 남이 다르다는 특별함만 느끼게 되어서 행복해졌다. 가끔 불편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좋다. 내가 반골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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