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랑 간만에 술마셨다

4년째 친하게 지내고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함께 보내왔으면서도 평생 힘들다는 말 한 번 안하고 진지한 얘기 한 번 안하고 웃기기만 하던 놈이 어제따라 메신저에서 진지하게 힘들다고 얘기하는거다
삶의 의미를 못찾겠고 즐거움을 못찾겠단다 뭘위해 사는지 왜 사는지 모르겠단다

다른 애들이 그 말을 했으면 어땠을지 모르겠는데 이애는 아무리 힘들때도 혼자 속으로 삭이는 성격인 거 아는터라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얘가 갑자기 왜이러나
   
게다가 겉으로 보기엔 누구나 부러워할 조건을 가진 애고 평생 얘한테 고민거리란 없어보이는 애라서 더

4년동안 서로 갈구기만 하고 그게 서로에 대한 우정의 표현인 사인데
놀라서 메신저로 진지하게 위로를 해줘도 먹히질 않더라 

그래서 만났다
내 상황상 만나기 좀 무리였지만 메신저로만 그러는 건 얼굴이 안보이니까 걱정되고 또 걱정스럽게 전화하는 건 영 오글거리는 사이라서 얼굴보고 괜찮나 어떻나 확인해야 안심될 것 같아서 

언제나 셋이보는 멤버인 같이 친한 모 군도 같이 불러서 셋이 술을 마시는데 남자들끼리는 이런 얘기가 오글거려서 못하겠는지 뭔지 그 둘의 사이는 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셋이 있을 때는 또 예의 장난스러운 태도로 농담이나 하다가 걔가 화장실에 가고 둘만 남으면 힘들다 사는 의미가 뭔지 모르겠다 한다

그리고 위로해주다가 셋이 모이면 그렇게 진지한 방식으로 얘기하는 건 관두고
서로 나좀 위로해줘 하고 대놓고 말하긴 수줍으니까 가난배틀이다 불쌍함배틀이다 뭐다 하면서 자기 힘든 얘기하는데

4년동안 몰랐던 집안속사정도 듣고

 


나는 용까지는 아니겠지만
우리는 그래도 소위 개천에서 난 용이라 하면 맞을 거다
집은 다들 서민인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대학의 좋은 과 다니고
수능 전국 50등안에 들어서 모두가 선망하는 대학의 미래가 보장된, 모두가 선망하는 과 다니는 대학생
한달에 과외를 두개만 해도 웬만한 직장인 월급 뺨치는 대학생
(정작 우리는 그런 과외를 받아본 적이 없는데)  

하지만 요새는 학벌도 세습되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주위에는 돈걱정도 없고 집걱정도 없이 평생 여유있게 살아가는 애들이 넘쳐나는데
우리는 그 애들 앞에서 열폭하는 거다

개천에서 난 용은 태어날 때부터 좋은 연못에서 난 용들이 부러운거다

우리는 부모님 등 휘게 하면서 고생고생끝에 여기에 왔고 이제 그 은혜를 갚아야 하는데
쉬지 않고 공부하고 알바하고 과외하면서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래도 원래 좋은 연못에서 난 용들에게 미칠 수 없는 한계를 느끼고 있는거지

제2의 사춘기라 드는
아니면 술먹은 밤에 드는 부질없는 생각인지


우리는 오늘도 원래 좋은 연못에서 태어난 용들을 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