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같다.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정치적 지향에 따라 자신이 지지한 진영을 위해 일할 것이라는 착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회사에서의 업무가 크게 관련이 없을 테니 잘 모를만도 하다. 하지만 정치적 지향과 업무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직업인들도 보통은 자신의 지향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우선시한다. 직장에서 돈 받는 사회인으로서의 직업 윤리.


어쩌다 보니 언론, 정치권, 진보적 시민단체, 문화단체 등 정치적 지향이 꽤나 중요한 여러 단체에 몸을 담아봤다. 그 곳들에서 일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정치적 지향'보다는 '직업인의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게 사는 모습을 보았다.


친구 중에 기자들이 많다. 그들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면서도 그 정당 소속 정치인의 비리를 아무렇지 않게 취재하거나 비판하곤 한다. 반대로 자기가 싫어하는 정당의 정치인이라도 일을 잘하면 그걸 널리 알리고 칭찬하는 기사를 쓴다. 언론사에 다니는 기자들 대부분이 그렇다. 기자의 역할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최순실 특종은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함께 낸 것이었다는 걸 기억하면 이해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판사나 검사 같은 법조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판사가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피고인으로 왔다고 다른 파고인과 다르게 더 가혹하게 판결한다면 그 사람은 판사로서 자격이 부족한 거겠지. 검사도 마찬가지일테고. 


이건 심지어 '당성'이 중요한 국회의원실 직원이나 당직자들에게도 해당될걸? 개인적으로 정당 사람들을 꽤 아는데, '덕업일치'되듯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정당이 너무 잘 맞는 이들도 있지만, 그냥 직업으로서 그 국회의원실 직원이나 당직자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평소에 대통령을 엄청 싫어했다고 해서 청와대 고위 공무원 시켜준다면 마다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삼성전자 직원이 애플을 무척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삼성전자의 핸드폰 신제품을 애플에 유출하진 않을 거다. 

CU 직원이 GS25 매니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GS25에 CU 영업 비밀을 유출하진 않을 거다. 

나뚜루 직원의 최애 아이스크림이 배스킨라빈스 '민트초코칩'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스킨라빈스를 위해 일하진 않을 거다. 


정치적 지향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자연인으로서의 취향이나 정치적 지향과 직업인으로서의 의무는 다른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돈을 주는 직업인으로서 의무에 충실하다. 거시적인 진영의 미래를 생각하고 흐름을 생각하며 일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소수다. 그저 직업인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할 뿐. 


민주당 직원들이 TV조선 기자와 하하호호 식사를 하고, 통합당 직원들이 한겨레 기자들과 즐겁게 차를 마시는 모습은 국회의 일상이다. 정당 직원들은 기자가 자기 정당에 불리한 기사를 쓸 때 표현 수정이라도 해달라고 전화를 걸려면 평소에 얼굴이라도 터놔야 하는 것이고, 기자들은 은연 중 나오는 한마디라도 듣고 기사 거리를 건지려면 얼굴을 터놔야 하는 것이니까. 두 쪽 다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업무에 충실할 뿐인 것이다.


사람들이 진영에 복무한다는 착각을 버리고 봐야 윤석열이나 한동훈 같은 사람들이 이해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너는 어느 진영이냐" 묻는다거나 "정치할 건가 보지?" 하고 잘못된 해석을 하는 이유는 저런 착각을 하고 있어서다. 근데 저렇게 해석하면 도저히 윤석열, 한동훈이 박근혜 국정원이나 이명박 형도 수사했었다는 게 설명이 안 되지 않나? 


오늘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윤석열이나 한동훈처럼 그저 직업인으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