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션어 죽여버려

요새 전기자전거 카페를 자주 들어가는데 마치 고향에 온 듯한 편안함이 느껴짐 이유가 뭘까 했는데 글쓰는 사람들이 아저씨들이라 어투가 존니 간결함 좀 전에 질문 하나 했는데 답변 읽고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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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션어에 대한 다른 블로거님의 글을 읽다가 요즘 자주 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언젠가부터 '무해하다', '너 뭐 돼?', '반박 시 니 말이 맞음' 같은 유행어들이 인기다. 친구가 '너 뭐 돼?'라는 유행어가 좋다고 했고,
남친은 '반박 시 니 말이 맞음'이란 말이 좋다고 했다.

근데 난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닌데도
그냥 저 말들이 다 왠지 싫었다.

난 싫은 게 많고, 내가 그게 왜 싫은지 분석하면서 시간 보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 말들이 싫은 이유도 생각해 보았다.

무해하다
사람 사이에 애정을 주는 것만큼이나 폐도 끼치고 상처도 주는 건 당연한 건데
'무해하다'는 말에는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지나친 방어기제가 보여서 싫다.

상처 받는 것, 미움 받는 것에 너무 예민한 세상이 된 것 같다. 내 마음이 너무 소중해서, 그 누구도 내 마음에 상처 주지 않기를 지나치게 바란다.

당장 나를 미워하거나 상처주는 사람이 없는데도 미워하거나 상처주는 사람을 미리 의식하는 게 너무 이상해 보인다.

반박 시 니 말이 맞음 / 지적은 둥글게 / 너 뭐 돼?
모두 비슷한 맥락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많이들 쓰는 말인데, 저 말들을 왜 쓰는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인터넷에서는 누군가 의견을 쓰면 그 의견에 대해 반박하는 댓글이 달릴 때도 있다. 얼굴을 보면서 얘기하면 오해의 소지도 줄어들고, 서로의 감정을 살펴가며 얘기할 수도 있고, 서로 좀 얘기가 통하지 않는다 싶으면 그만 할 수도 있는데, 인터넷에선 그게 안 된다. 그러다보니 자기가 쓴 글이나 댓글에 반박 의견이 달리는 것 자체에 피로감을 느끼고, 그런 상황을 최대한 회피하고자 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그래서 나온 말들인데, 왜 나온진 알겠지만 알아도 싫다.

반박 시 니 말이 맞음
=> 니가 악플 달아도 난 대응할 생각 없다
: 무해하단 말과 마찬가지로 아직 반박한 사람 없는데 미리부터 지레 겁먹고 차단함.

지적은 둥글게
=> 아직 지적한 사람 없는데 지레 겁먹고 먼저 요구함.

너 뭐 돼?
=> 키배 뜰 말빨이나 에너지가 안되니까 메신저 공격하기. 상대방의 반대 의견을 세 글자로 묵살하고 자신이 이겼다는 정신 승리에 빠질 수 있어서 말빨, 논리 약한 사람들이 매우 좋아할 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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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내가 저 유행어들을 왜 싫어하는지 잘 알겠다.
난 사람들 눈치를 너무 보는 겁쟁이나 논쟁에 무논리로 대응하는 사람들이 싫어서 저 유행어들이 싫다.

요즘 유행어들을 보며 느끼는 건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너무 겁이 많아졌다는 거다.

오랫동안 전쟁과 기근 없이 평화로운 세상이 이어지고 있어서 그런걸까? 스트레스가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생존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