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S를 비롯한 범죄를 저지르는 모든 사이비 종교를 극혐하며 종교가 없는 무교인임***
 
넷플릭스 다큐 '나는 신이다'가 볼 만하다는 말을 듣고 주말이 오길 기다렸다가 남친과 함께 보았다.

난 뭔가의 덕후라기엔 관심이 죄다 얕은데, 그나마 내가 깊게 관심을 가지는 것 중에 하나가 인간 심리다. 인간 심리 중에서도 비정상적인 심리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금쪽 같은 내 새끼나 금쪽 상담소 같은 프로그램을 즐겨 보기도 한다.

비정상적인 심리라면 범죄자의 심리 만한 게 없다. 종종 할 일이 없을 땐 인터넷을 통해 각종 범죄 사건에 대해 찾아본다. 사이비 종교에도 관심이 있다. 사이비 종교라는 걸 만든 인간의 심리도, 집단적으로 그 사람에게 세뇌되는 사람들의 심리도 비정상적이므로 관심이 간다.

그래서 나는 다큐를 보기 전부터 JMS에 대해 다른 사람들 보다는 잘 알고 있었다. JMS는 90년대에 끗발이 좋았는데, 그래서인지 엄마 아빠를 비롯한 어른들은 이미 JMS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어릴 때부터 종종 들었고, 나도 따로 찾아봤었다.

JMS의 교주 정명석의 성범죄 사실은 내 기준에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전성기에 비해서는 한 물 간 교주인 정명석을 주제로 지금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면 뭔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겠지 하는 기대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JMS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용기 있게 내놓은 작품이라 생각하며 호의를 가지고 시청을 시작했건만, 기대는 다큐멘터리 시작과 함께 와장창 깨졌다.

2화 중반까지 이제 괜찮은 내용이 나오겠지 하고 참고 보다가 차마 더 보지 못하고 껐는데, 2화 중반까지 보고 기억에 남는 건 오로지 자극적인 성범죄 피해 사실이었다. 유튜브 렉카 보다 더한 옐로 저널리즘이었다. 이건 졸작이다.

감독은 피해자, 탈교자 섭외만 하고 다큐멘터리 준비를 끝내버린 모양이었다. 

내가 본 다큐 2화 중반까지 자극적인 화면과 성범죄 피해 사실이 자극적으로, 끝도 없이 반복됐다. 막말로 '변태 새끼가 만든 거 아냐?'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피해자들의 잔혹한 피해 사실을 일반에 알리고 싶었다지만, 핑계처럼 느껴진다. 성범죄 피해 사실을 너무도 구체적으로 계속 계속 보여준다. JMS 여 신도들이 욕조에 집단으로 앉아서 "주님~!(정명석을 뜻함) 저희랑 놀아요~! 깔깔깔!" 하는 장면은 여신도들의 나체를 모자이크도 하지 않고 대체 몇 번을 보여주던지. 
 
피해 사실을 이렇게 자극적으로 늘어 놓는 건 이미 기성 언론에선 폐기한 방식이다. 자극적인 장면으로 사람들의 공분을 이끌어 내겠다는 명분은 그럴 듯하지만, 사실 이렇게 자극적인 방식은 시청자들이 피해 사실을 자극적으로 소비하게 만들 뿐, 공분을 일으키고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게 하는 덴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명석이 성범죄를 저질렀고, 성범죄 피해 사실이 피해자들과 피해자 가족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정명석이 손을 가슴에 어떻게 넣었고, 섹스를 어떻게 했고 사정을 어떻게 했는지를 하나 하나 디테일하게 알려주는 것은 그저 그 사실을 소비하라는 것밖에 안 된다.

실제 성범죄 피해를 소재로 한 웰메이드 영화 스포트라이트나 밤쉘 같은 작품에서 성범죄를 이렇게 다뤘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까?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단순히 다루기 어려운 소재인 사이비 종교를 다뤘다고 해서, 고민도 노력도 없는 졸작이 칭찬받아서는 안 된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조성현 PD는 누군가 같은 소재로 더 좋은 다큐멘터리를 만들 기회를 빼앗아 버렸다.

성범죄 피해 사실을 내내 자극적으로 다루기만 함으로써 성범죄 피해자와 시청자의 심리적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진다.

사이비 종교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면 사이비 종교 피해자들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나'와는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사이비 종교 피해자가 왜 세뇌될 수밖에 없었는지, JMS는 어떻게 사람들을 포교했는지, 정명석은 대체 어떤 심리적 기전으로 이런 범죄를 끊임없이 벌이는지, 여성들이 정명석에게 성 착취를 당하는 대신 목사로 고속 승진을 하는데도 왜 남성 신도들의 믿음은 깨지지 않았는지, JMS를 탈출한 사람들은 어떻게 탈출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심도 깊게 이야기해야 했다.

이런 얘기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이 다큐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피해자들이 어리석거나 바보 같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이 이 다큐를 보고 170이 넘는 미인 만 명과 잔 정명석을 부러워 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면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사이비 종교가 창궐하지 않게 만들려면 사회가 어때야 하는지, 사이비 종교에 빠지지 않으려면 개인은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했어야 하는데 거기 쓰였어야 할 러닝타임을 자극적인 성범죄 피해 사실을 나열하는 데만 써버리고 말았다. 피해자들의 용기와 희생이 아깝다.
 


이 다큐에서 만났어야 하는 사람과 담았어야 할 내용

1. 정명석 인터뷰, 어렵다면 JMS 측 관계자 인터뷰 = 대체 어떻게 입을 터는지, 듣기에 그럴듯한지 들어봤어야 함. 대형 로펌인 광장이 정명석 변호 맡았던데 광장 찾아가서 변호사들 인터뷰도 땄어야 함.

2. 정명석 교주 되기 전 지인들 = 저런 사이비 종교 교주는 대체 어떻게 탄생하는지, 왜 저렇게 됐는지 파헤쳐봤어야 함.

3. 이단 전문가 = JMS 교리와 기독교 교리 비교하면서 JMS 교리가 어떻게 사람을 홀리는지 설명했어야 함.

4. 심리 전문가(정신과 의사 등) = 정명석이 87년 대선 때 어떻게 대선 결과 맞춘 건지, 그외에 JMS 탈교자들이 현혹된 정명석의 신적인 행위에 대해 과학적으로 분석, 반박해줬어야 함.

5. 범죄 심리학자 = JMS에서 사람 세뇌시키는 과정의 가해자와 피해자 심리 모두를 분석해서 설명해줬어야 함.

6. 일반인 100명 불러놓고 사이비 종교 교리랑 일반 교회 교리 비교하면서 뭐가 사이비 교리인지 맞춰보라고 실험해볼 수도 있었을 것임.

7. 담당 형사, 검사, 변호사, 취재 기자 등 관계자들 = 왜 정명석이 도피할 시간 벌어주고 만 건지, 정명석이 왜 10년형 밖에 안 받았는지, 정치권과의 유착은 없었는지, 우리 법 체계에서 사이비 종교 처벌에 어떤 함정이 있는지 등을 보여줬어야 함.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내내 성범죄를 어떻게 저질렀고 어디에다 손을 넣었고 하느라 저럴 시간 없음.

피해자 섭외로 모든 걸 끝내버린 너무 게으른 다큐멘터리라고밖에 생각이 안 든다.

이쯤 되면 내가 매번 넷플 컨텐츠를 까게 되는 것 같은데 넷플도 이제 좀 자기들의 제작 방식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넷플 컨텐츠에서는 창작자한테 무한한 자유를 주는 것이 좋은 결과보다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더 많아보인다.


추가적으로 자본이 엄청 들어갔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가 이따구로밖에 뽑힐 수 없는 이유, 이렇게 큰 기회가 이렇게 역량 부족의 감독에게 가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과거 모 영화제에서 일하면서 많은 독립 영화, 다큐 감독들을 만나봤지만 우리 나라는 다큐 시장이 진짜 너무 작다. 단편 극영화, 독립 영화는 전국의 영화과, 연극영화과에서 뽑아내는 물량만 해도 일정 정도가 되는데, 다큐멘터리는 전문 학과가 거의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 같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지망생들은 열심히 시교 PD 준비해서 방송국 가버리지 독립 다큐를 만들지 않으니까.

업계에서 보기엔 막말로 내가 감독인데 데뷔를 하고 싶다면 핸드폰 하나 들고 다큐멘터리를 찍으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주요 영화제에서도 다큐멘터리는 경쟁률이 낮아서, 소재만 좀 참신해도 본선 진출이나 수상이 쉽다.

다큐멘터리에는 인재도 없고, 투자도 없다. 투자가 없으니 인재가 없는 건가? 그나마 투자되는 다큐멘터리는 김어준이 만드는 음모론 다큐들이나 '내가 조국이다'류의 정치적으로 극편향된 다큐들 뿐이다. 저런 다큐멘터리는 돈 대주는 광신도들이 있으니 유지가 됨. 하지만 진짜 괜찮은 다큐는 광신도들 맘에 들 리가 없기 때문에 만들어지기가 어려운 환경이다.

그러다보니 인재도 안 나오고, 괜찮은 작품도 안 나오는 게 한국 다큐의 슬픈 현실인 것 같다. 넷플릭스 다큐는 <레인코트 킬러>나 <나는 신이다>나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한 것 같아서 앞으로 더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왕 만들 거라면 좀 더 능력있는 사람들을 데려다 더 고민하고 노력해서 다큐멘터리를 제대로 만들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