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 교수를 참 좋아하는 팬이지만
나는 오은영 교수 프로그램 중 금쪽같은 내새끼랑 금쪽상담소만 본다.

오은영 교수가 요즘 너무 이런 저런 프로그램에 나오는데...그 프로그램 중에 MBC 오은영 리포트 - 결혼지옥은 진짜 최악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고딩엄빠랑 결혼지옥은 거의 방식이 같은 프로그램인데 둘다 이해되지 않는 부부, 가정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분노하라고 들이대는 어그로성 프로그램이다. 금쪽같은 내새끼가 솔루션 중심, 아이의 문제행동에 대한 분석과 해결 중심의 프로그램이라면 결혼지옥이나 고딩엄빠는 그냥 한 시간 동안 관찰영상 보면서 ‘응 너 병신~’하고 씹고 뜯다가 끝나는 프로그램이다.

그런 결혼지옥에서 하다 하다 아동 성범죄 의혹이 발생했다.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영상을 보면 이건 계부의 의도를 떠나 분명히 아동 성범죄라는 생각이 드는데 당사자인 계부는 그렇다 쳐도 친모, 오은영 교수, 패널들 모두 이에 대한 지적을 하지 않는 게 좀 어이없다.

아니 애가 싫다잖아...그만하래잖아...

세상에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 친족이 가해자인 성범죄가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나이브할 수 있을까. 이걸 방송에 내보내는 게 말이 되나? 경찰을 불러야지. 오은영 말고 이수정 교수가 필요한 자리였다는 데에 100% 공감한다.

다행히 대다수 댓글을 보면 이 계부의 행동을 성범죄 또는 성범죄 전단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았는데, 친부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행동이라거나, 장난이다, 가족 간 스킨십이다 하는 댓글들도 꽤 있어서 답답함을 느꼈다.

남자의 성욕은 본인도 컨트롤할 수 없이, 이를 데 없이 충동적인 경우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도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사회화된 남성은 성욕이 발생하면 안될 대상과 상황을 잘 알고 있고,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상황을 통제한다.

아빠는 4형제의 장남이라 난 삼촌이 3명 있다. 삼촌들과 참 친해서 어릴 땐 막내삼촌이 우리 집에 얹혀 살기도 했고 다른 삼촌들 또한 혼자 또는 아내와 우리 집에 와서 밤새 우리 엄마아빠와 술을 마시거나 고스톱을 치고 자고 가는 일이 흔했다.

그런데 언니랑 내가 어느 정도 커서 부모님과 따로 방을 쓰고 각자 잘 무렵부터, 엄마는 삼촌들이 집에 오면 언니와 내가 잘 때 우리 방 문을 밖에서 열쇠로 잠궜다. 그리고 우리가 엄마 말을 이해할 나이가 되었을 때, 엄마는 삼촌들이나 아빠 친구들이 집에 오면 꼭 방문을 잠그고 자라고 했다.

우리 삼촌들도 아빠 친구들도 매우 정상적인 사회인들이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범죄 전과는 커녕 그 비슷한 것도 없는 모범적인 사회인들이고.

그런데도 엄마는 남자는 알 수 없고, 술을 마시면 더 알 수 없는 거라며 무조건 방을 잠그고 자게 시켰다. 처음엔 엄마가 오바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나도 나이를 먹고 남자의 성욕에 대해 알게 되면서 엄마가 전혀 오바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남자들이 의심받는다고 기분 나빠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아빠에 대해서도 좀 놀란 적이 있다. 난 어릴 때부터 아빠와 굉장히 친했고 취미도 비슷해 둘이서 놀러다니는 일도 잦았다. 엄마가 워낙 바쁘기도 하고. 이 나이를 먹고도 집에서도 샤워 후에는 옷 입고 나오기가 귀찮아서 “아빠 눈감아” 하고 알몸으로 대충 방까지 뛰어갈 정도로 아빠와 내외하지 않는 편이다.

몇 년 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일본 여행을 가려는데 혼자 가긴 싫고, 엄마는 도저히 휴가를 낼 수 없다고 해서 아빠와 둘이 간 적이 있다. 신나서 여행 계획을 세우는데, 컨디션만 보고 호텔을 알아보는 나에게 계획 세우는 내내 별 관심 없던 아빠가 말했다.

침대가 아무리 커도 너랑 침대 하나를 같이 쓰는 건 안된다고. 무조건 침대 두 개 이상인 곳으로 찾으라고.

그땐 ’아 아빠 왜 오바야~‘ 했는데 생각해보니 아빠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정상적인 남성들은 이렇게 성욕이 생기면 안될 대상과 상황을 잘 알고 이를 경계한다. 하지만 정상적이지 않은 남자들은 남성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물리력이 없는 여성이 스스로, 혹은 자녀를 지키기 위해 경계하는 것을 두고 기분 나빠한다. ‘왜 나를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하냐’,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같은 말로 입막음 하면서.

꼭 성범죄에 대해서뿐 아니라, 우리 모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경계하고 살아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나는 고등학교 때 급식 시간에 교실에 두고 나간 PMP를 도둑맞은 이후로 어디서든 누가 내 물건을 훔쳐갈까봐 신경쓰고 챙기는 편이다. 수년 간 도난사고가 한번도 없었고 믿을만한 사람들만 있는 댄스학원에서도 꼭 지갑이나 핸드폰을 보이는 곳에 둔다. 잃어버리고 나서 그 물건을 찾는 건 너무 번거롭고 힘든 일이란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내가 저런다고 해서 ‘우릴 의심하는거야?’하고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상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독 성범죄에 대해서는 의심하고 경계하는 것 자체를 기분 나빠하거나, 잘못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성범죄에 있어서는 성별간 위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진짜 결백한 사람이라면, 여성이 성범죄 피해를 입을까 경계하고 자신을 지키려 노력하는 행위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떳떳하다면 굳이 기분 나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