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9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수리남을 정주행했다.
쉬지 않고 6회를 이어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하정우, 황정민 다 항상 하는 그 역할 그 연기지만 또 뭐 수육에 김치는 맛을 다 알고 먹어도 맛있는 조합 아니겠습니까. 재미있었지만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다.
윤종빈 감독은 참 작품별로 기복이 심한데 감독 본인의 필모와 비교해보자면 이번 건 평타 정도.
범죄와의 전쟁, 비스티 보이즈 보단 별로고 군도 보단 나음. 근데 보면서 생각한 게 요즘 감독들 왜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 못해 안달일까. 수리남은 후반으로 가면서 점점 괜찮아지는데, 초반 하정우 자기 인생 설명, 박해수의 이전까지의 상황 설명 나레이션 보면서 참...ㅋ

내가 이 조합에 호감 갖고 있었기에 그냥 봤지 아니었으면 아 구려 하고 거기서부터 팔짱끼고 봤을 것임.
넷플릭스 지옥이랑 쿠팡플레이 안나 감독판 볼 때도 느꼈지만 감독님들 진짜 제발 설명 좀 그만하세요!!! 영화나 드라마나 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건 알겠는데 꼭 필요한 내용이 아니라면 다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안 중요한 내용, 필요 없는 내용 좀 다 빼...제발...

'감독님 하고 싶은대로 해'가 꼭 옳을까?

영화든 드라마든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내 블로그 글도 쓰다보면 중언부언 길어진다. 원래 생각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이 밖으로 넘쳐나서 창작이란 걸 하게 되는 거니까. 영화감독들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영화를 영화관에서 하던 시절에는 영화의 러닝타임이 짧아야 했다. 길면 상영 많이 못하니까. 영화가 길다고 돈 더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보니 한정된 러닝타임 안에서 영화를 끝내야 했고, 영화에는 필요한 장면만 들어가야 했다. 감독이 아무리 자기 예술세계를 더 뽐내고 싶어도 투자자들 안 빡치게 하고 제작비 아끼려면 필요한 장면만 딱 컴팩트하게 넣어야 했던 거다. 정~뽐내고 싶으면 가끔 '감독판'이란 게 나왔지. 감독판들의 공통점이 뭔줄 알아? 본 작품보다 러닝타임이 길다는 거다. 근데 어느날 넷플릭스가 나타나 '우린 돈만 줄게, 니들이 만들고 싶은대로 만들어봐'를 시전한 후부터...넷플릭스의 모든 컨텐츠가 '감독판'이 됐다. 넷플릭스는 이용자들의 사이트 체류시간이 긴 게 좋으니 컨텐츠가 길면 오히려 좋았을 거고, 돈도 필요한만큼 줄 수 있었다. 구구절절 설명 과잉 컨텐츠들이 시작됐다.

컨텐츠에 필요없는 내용이 너무 많아졌다. 해석의 여지는 줄어들고, 컨텐츠의 수준은 낮아지는 길이다. 넷플릭스 수리남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넷플릭스 지옥이나 쿠팡플레이 안나 감독판은 너무나 쓸 데 없는 설명, 내용이 많다.

쓸 데 없는 얘기가 너무 많은, 쿠팡플레이 '안나' 감독판

도덕적인 입장 같은 걸 신경 쓰지 않고 쿠팡플레이 안나의 쿠팡편집본과 감독판의 퀄리티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본다면, 쿠팡이 편집한 버전이 압승이다. 감독판은 진짜 쓸 데 없는 얘기가 너~무 많다. 그러다보니 보다 보면 질림. 근데 쿠팡편집본은 속도감과 긴장감이 적절하게 편집돼있어서, 한 번 켜면 웬만하면 끊기 힘듦. 생략된 부분이 많아서 시청자가 상상하거나 해석하거나 채워넣을 부분이 많은데, 사실 그러려고 컨텐츠 보는 거 아닌가? 물론 쿠팡이 안나 감독한테 한 짓은 양아치짓이다만, 쿠팡편집본과 감독판을 비교해보면 영화 같은 대중예술에서 감독 한 명이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게 꼭 능사는 아니란 걸 알게 된다. 영화에서 '투자자', '제작자'가 대체 왜 필요한지.

tvN에서 했던 '신박한 정리'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정신없는 사람들 집을 전문가가 싹 정리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선 집을 깔끔하게 정리하기 위해 물건을 버릴 박스를 제공하고 집주인과 함께 버릴 물건을 추리는 과정이 나온다. 내가 내 물건을 혼자 버리면서 싹 청소하는 건 썩 쉽지 않다. 이건 이래서 버리기 아깝고, 저건 저래서 버리기 아까운 게 사람 마음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선 MC들이 집주인에게 이 물건을 버리자고 설득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영화 장면도 마찬가지다. 감독은 본인이 구상하거나 촬영한 장면을 편집하기가 쉽지 않다. 제3자의 눈이 필요하다.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싹 다 버릴 수 있는 눈.

넷플릭스 지옥, 이해력 부족한 시청자 탓일까

넷플릭스 지옥도 어마무시한 설명충 드라마다. 쓸 데 없는 설명이나 장면이 많아서 욕하면서 봤는데, 네이버에서 연재됐던 원작 웹툰 댓글들을 보고 대체 왜 그랬는지가 좀 이해됐다. 요즘 애들 이해력 딸려서 구구절절 하나하나 설명 안해주면 대체 저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더라...댓글들 탓에 드라마가 저렇게 된건가 싶었다. 어쩌면 구구절절 설명충 드라마들은 OTT말고 시청자들이 만들었을지도 몰라...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의 공통점

이랬거나 저랬거나, 영화나 드라마나, 컨텐츠는 말하지 말고 보여줘야 한다. (참고: https://www.reader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4423) 생략된 공간을 채우는 건 시청자의 몫이다. 그 재미 느끼려고 컨텐츠를 보는 거고. 아무리 이해력 딸리는 시청자가 많다해도, 거장이라는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 영화에선 여전히 항상 보여준다.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할 말이 많아진다. 넷플릭스 지옥의 유아인 대사량과, 세 감독 영화 속 주인공의 대사량을 비교해보자. 그리고...제발 설명 좀 그만하자. 영화를 만든 감독보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이 더 할 말이 많은 영화가 좋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