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불키고 있다가 해가 뜬 걸 알아채고 불을 끄는 순간이 싫다. 그치만 새벽을 포기할 수가 없다. 사실 새벽이 좋아서 새벽에 안잔다는 의지의 문제는 아니다. 그냥 내 몸이 그때 그때 하고 싶은 대로 냅두고 싶은 것 뿐이다. 말로는 일찍 자야지 자야지 하는데 방학의 제일 좋은 점은 사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중학교 때쯤 누가 꿈을 물어보면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면서 사는 것'
이라고 대답했었는데 학교를 졸업하면 그렇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고민이다. 지금은 대학 시간표도 내가 맘대로 짤 수 있고 방학이 있어서 견딜만 하지만. 친구네 집에서 잠이라도 자는
날엔 졸려도 자기 싫어서 친구가 불을 꺼도 계속 말을 걸지만 그런 특별한 경우가 아닐 때는 졸리면 자야 한다. 근데 이상하게 평생을 밤에는 안
졸리고 낮에 졸린다. 말못하던 아기 때부터도 밤에 안자고 일곱시간씩 울어서 새벽에 나 업고 동네 돌아다니는 게 엄마의 일이셨다고 하니 이것은 타고난 기질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 설은 '아침형 인간'이 누구에게나 통할 수는 없고 누구의 몸에나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건강을 유지하는 법이고 피부는 새벽에 재생하며 몸의 리듬도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자야한다는 것이 이전까지의 통념이지만, 이것은 인공 빛이 발달한 이래로 맞지 않는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인공 빛이 발달하자 세상에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올빼미형 인간'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들은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으며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하는 것이 몸의 리듬에 맞는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저녁형 인간 본능을 억제하고 살지만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 중 '올빼미형 인간' 유전자를 가진 아기들의 비율은 해가 거듭할 수록 높아지고, 도시일 수록 그 비율이 높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세상이 쉬지 않고 2교대로 돌아가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낮 생활자와 밤 생활자가 따로 존재하고 밤(새벽)에도 밖에 나가면 지금의 낮과 같은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다. 주식 시장도, 은행도. 전통적인 아침형 인간 유전자를 보유한 낮 생활자들은 같은 회사의 낮에 일하는 직업에 지원을 하고 밤에 잠들며, 저녁형 인간 유전자를 보유한 밤 생활자들은 같은 회사의 밤에 일하는 직업에 지원을 하고 낮에 잠드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러한 시대가 아직 오지 않은 전통적 '아침형 인간'들이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시대에 나는 눈치 없이 '저녁형 인간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가설이다.
두 번째 설은 캐나다에 간 친구가 우리나라에 있을 때는 나와 같은 올빼미 인간이다가 캐나다에 갔더니 아침형 인간이 다됐다는 말을 듣고 생각한 설이다. 그저 단지 내가 한국에 시차적응을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 평생 시차적응을 아직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몸이 저 지구 반대편 어느 나라의 시간에 맞게 잘못 프로그래밍 되어 태어났고 그래서 결국 내 생체시계는 이 나라와 시간이 안 맞는다는 가설. 그래서 지구 반대편 어느 나라에 가면 시차적응이고 뭐고 없이 곧장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해보았다. 마치 내 몸은 북극성과 같아서 겉으로 보이는 낮과 밤의 구분을 따르는 것이 아닌 언제나 같은 절대시간에 잠들고 절대시간에 일어나게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내가 생각해도 좀 헛소리긴 하지만.
올빼미형 인간이라서 괴롭다. 아침형 인간이었다면 편했을텐데. 올빼미형인간이라 집에 있는 걸 더 좋아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다. 밤에는 밖에 나가기가 무서우니까. 어쨌든 올빼미형 인간들이 하루 빨리 늘어나 세상에 그들의 목소리를 내야한다. 다행히 현재 올빼미형 인간들의 소비력이 나날이 커져서인지 까페 패스트푸드점 등 점점 24시간 영업하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학도 하루 빨리 24시간 수업을 해서 올빼미형 인간인 교수들이 새벽에 강의를 하고 올빼미형 인간 학생들은 새벽 수업으로 시간표를 짜서 듣고 하는 시스템이 정착된다면 좋을 텐데. 어쨌든 글의 제목에 맞추어 올빼미형 인간들을 위해 변명을 해보자면, 우리가 올빼미형 인간인 것은 우리가 유흥을 즐겨서도 아니오, 게을러서도 아니라 우리의 유전자의 작용일 확률이 있다는 것이다. 규칙적으로 아침에 자서 오후 세시인가 다섯시엔가에나 일어난다는 가수 송창식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에서 봤는데, 내 생각에 그는 시대를 앞서 태어난 올빼미형 인간의 시조급 인물이다. 남들보다 너무 빨리 진화된 인간이었던 것이다. 아, 1교시 한 개에 2교시 두 개인 이번 학기가 두렵다. 올빼미형 인간의 자유도 열흘 남았구나. 아, 또 여섯시네, 이제 자야겠다. 끝.
낮이라 그런지 졸고계신 올빼미님. 이름이 '몰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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