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한 사람은 얼마나 무게를 두고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한 번 듣고 마음에 박혀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다. 

 
1/
스무살 때 알던 애가 사람은 모두 다 외롭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처음 듣는 순간 평생 안고 있던 마음의 짐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그 애에게 되물었다. "그럼 너도 외로워? 정말?" 그 전까지는 나만 언제나 외로운 것인줄로 알았다. 나는 왜 주위에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어도 외로운지 이해가 잘 안됐고 그것 때문에 항상 힘들었었다. 어찌보면 바보 같지만 정말 그랬었다. 저 말이 당연한 걸지도 혹은 틀린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나에게 저 말은 진리처럼 마음 속에 남아 지금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 그래. 나만 외로운 게 아니야. 그리고 그 인간 본연의 외로움은 결국 타인이 해결해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덕분에 나중에 "넌 누구 없이도 잘 지낼 애인 것 같아."라는 뼈아픈 펀치를 맞기도 했지만.) 
 
2/
두번째 명언도 1을 말한 그 애였다. 참 생각이 많은 애였네 싶다. 이 말도 스무살, 그러니까 내가 삼수를 할 때였다. 내가 힘들어 하면서 빨리 원하는 대학에 가고 싶다고 말을 했었는데 그 애가 말 없이 한참 내 투정을 다 듣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니가 원하는 그 대학 그 과를 가고 나면 행복할 것 같냐고. 그 행복은 한 학기, 잘해야 일 년 갈거라고. 나라고 아예 몰랐던 바는 아니었지만 원하던 대학에 간 그 애 입에서 그 말을 들으니 그 말이 더 일리있게 느껴졌다.결국 행복은 환경이나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의 문제라는 것. 아주 오래 전부터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해온 말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고 행복해지기 위해 자기의 상황을 바꾸려고만 노력한다. 마음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행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먹기이다. 나에게 그것을 일깨워 준 것은 바로 저 한 마디의 말이었다. 

3/ 
"언니, 얘는 먼저 연락을 잘 안해. 나만 맨날 먼저 찾는 것 같아서 자존심 상하고 짜증나. 친구하지 말아버릴까?" "친구 사이에 누가 연락 먼저하고말고가 뭐가 중요해. 보고싶고 얘기하고 싶으면 니가 먼저 하면 되지."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였나 언젠가 언니가 해준 말이다. 그 이후로 친구관계에서 저 말을 언제나 마음에 새겼다. 연락 안한지 오래된 친구에게 먼저 연락하기 조금 멋쩍어도 했다. 덕분에 지금 나는 오래된 깊은 친구가 많다. 언니의 말을 마음에 새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친구들 중에는 저 말이 없었다면 이제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됐을 친구들도 많다. 언니의 말 덕분에 좋은 친구들을 오래 만나고 있다. 연락으로 자존심 상해하지 말고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먼저 연락하는 것. 내 인생의 모토 중 하나이다.

4/
이것도 스무살 때 들은 말이다. 토요일이었고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토요일은 지하철이 일찍 끊기니까 한창 놀다 일찍들어가야 하는 게 짜증났던 나는 "주말은 왜 지하철이 평소보다 더 일찍 끊기는거야. 노는 사람들도 많은데. 더 늦게 끊겨야 되는 거 아니야?" 그러자 옆에 있던 애가 한 말. "일하시는 분들도 주말인데 일찍가서 쉬셔야지." 이건 정말 충격의 한 마디였다. 그렇게 노동자를 배려하고 세상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말하고 다녔던 내가 저런 사소한 생각도 못했다는 게 부끄러웠다.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했다. 지금도 세상을 볼 때 하나의 시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들게 해준 말이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 그걸 일깨워준 한마디였다.

5/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새벽에 오랜 친구 중 한 명의 문자가 와 있었다. "100년 후엔 사라질 내 친구야 사랑한다." 공교롭게도 또 스무살 때구나. 웃으며 가볍게 넘길만한 친구의 술주정 문자였지만 앞에 붙은 '100년 후에 사라질'이라는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 날 나는 저 문자를 보고 '
100년뒤엔 너도 없고 나도 없고 우리모두 없어질거고우리가 친구를 하건 사랑을 하건 뭘하건 10년 아니 3년 뒤라도 우리가 모두 살아있을지 안멀어질지 평생 못보게 될지 모르는 건데 뭘 그렇게 인간 사이 복잡하게 생각하면서 생각이 많고 지금 바라는대로 행동하지 못하면서 살아가야하는건지' 하는 일기를 썼다. 지금도 인간관계에 있어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하지 못하고 마음 속으로 삼켜야 할 때면 저 생각을 한다. 어차피 100년 후엔 지금 알고 있는 사람 중 아무도 이 세상에 없을텐데. 우리가 아무리 오래 봐야 세상 전체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기껏해야 100년인데.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나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하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충실하게 현재를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6/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들은 마음에 남는 한마디다.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다. 연출 수업이었는데 마지막 시간에 교수님은 모든 예술의 근본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진 예술가와 그렇지 못한 예술가의 예술은 천지차이라고. 그러니 한 학기 수업 내내 배운 것을 모두 잊어도 좋으니 저 사실만은 꼭 기억하라고. 그리고 혹 예술을 하지 않게 되더라도 앞으로 언제나 사람을,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살아가라고 하셨다.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앞으로 예술을 하게될지 그렇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평생 저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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