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느지막이 일어나 빌려놓은 만화책을 보면서 어제 사온 군고구마를 까먹었다. 보다가 슬슬 점심을 먹고 개 두마리를 끌고 동네 공원에 가서 산책을 했다. 산책하는 도중에 만난 아줌마 아저씨가 그분들 개에게 물을 주다가 곤지가 뭔지 궁금해서 다가가니까 곤지에게도 물을 주셨는데 곤지가 으르렁거려서 민망했다. 그리고 집와서 개들 목욕시키고 티비를 좀 보다가 밤엔 친구랑 차 몰고 낚시 갔다. 아직 서툴지만 그래도 운전은 재미있다. 밤낚시하는데 야광찌가 없어서 슬펐다. 야광찌 사야지. 낚시터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그래서 더 좋았다. 날씨는 조금 쌀쌀했지만 패딩을 입고가서 견딜만은 했다. 캔맥주를 마시면서 찌를 바라보는 시간이 좋았다. 남자들의 취미와 물. 두 가지 모두 내가 어릴 때부터 집착하는 것들인데 낚시는 그 둘이 합쳐져 있다. 


2
자다가 오후에 정신과 의사한테 전화가 와서 잠이 깼고, 병원에 가서 뇌MRI를 찍었다. 원래 80만원짜리라는데 난 실험목적이니까 돈받고 찍었다. 생각보다 별 거 없었는데 내 뇌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게 재미있었다. 나는 자기애가 강한지 나에 대한 얘기를 듣는 게 좋다. 뇌 MRI 결과를 듣고 절망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 뇌에 암덩어리가 생겼다거나 그런 사람들. 큰 병원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다. 특유의 무거운 공기는 나를 차분하게 만든다. 그래서 가끔씩 내가 과해질 때는 큰 병원에 가서 로비나 매점 앞에 멍하니 앉아있다 온다. 그 때마다 드는 생각은 집안에 아픈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 안 아픈 게 어디야. 정말. 맞는 말.



쓰고 있던 소설은 더는 못쓰겠고 다음 주까지 쓰겠노라 장담했던 노래 가사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블로그를 볼 작곡가 C님. 미안해. 어떻게든 할게.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 글쓰려고 캔맥주 따서 얼음 잔뜩 넣어서 마시는 중이다. 안주는 찾아봐도 없길래 딸기랑 먹고 있다. 방 불 다 꺼놓고 빗소리 들리는 사이트에서 빗소리 틀어놓고 블로그 글쓰고 있다. 지금 써야 할 글은 이런 게 아닌데. 그냥 가만히 있으면 할 것도 '해야할 것'이 되면 왜 이렇게 하기가 싫은걸까. 게으름 피우다가 젊음이 소멸될 것이다. 쓰던 소설을 더 못 쓰겠는 건 쓰다가 내자신이 봐도 재미 없기 때문이다.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재밌지만 보편적인 이야기. 하지만 재밌지만 보편적인 이야기를 쓰는 건 정말 어렵다. 설정이 보편적이지 않거나 등장인물이 보편적이지 않아야만 이야기가 힘을 갖는다. 내가 아직 글을 못써서 그런 거겠지. 어렵다. 글로 벌어먹을 거 아닌데 대충 써야지 싶다가도 글 안쓰면 힘들어져서 또 쓰고.



개강했다. 가는 내내 버스와 지하철이 제때제때 와서 신이 났다. 게다가 지하철은 방금 지나갔는지 자리도 텅텅 비어있었다. 행복한 한 학기를 알려주는 복선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라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첫 날 들어간 수업은 정원 열 명짜리 수업이었다. 남녀성비 7:3을 기대했다. 교실에 들어가는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남녀성비는 1:9 였다. 여대에 온 줄 알았다. 애초에 신방과에서 남초를 기대한 내가 바보였어. 허나 교수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어쩐지 운세가 좋더라니...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흑흑.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영화제작 수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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