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nate.com/view/20110124n25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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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에 대해 고민하는 남학생의 사연에 대한 이윤석의 상담


'남자의 자격'의 오그라드는 자막이 드디어 한 건 했구나.
시청률이 그렇게 높다는 1박2일은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도 남격은 나름 꼬박 챙겨본다.


나는 무한도전의 팬인데 뭐 무한도전을 베꼈느니 마느니 보다도 무한도전과 거의 동일한 포맷이면서도
다른 구성원들이 가지는 나름의 맛이 있어서 즐겨보는 편이다. 이경규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런데 자막에 관해서는 평소에도 오그라들고 자막이 저프로를 망친다 하는 느낌이 자주 들었었다.
올드한 느낌? 대체 남격 자막은 누가 쓰는 걸까.했었다. 내가 너무 무한도전 자막에 익숙해서 그런가?하면서.


사실 이성애자의 입장에서 이윤석의 저정도 발언("어렸을 때는 그럴 수 있다. 나도 그런 친구들이 있는데 크고나서 다들 여자좋아하고 잘산다"정도의 발언)은 어느정도 용납되는 수위가 아닌가 싶다.
이윤석이라는 사람 자체가 좀 마초적이거나 가부장적인 면이 강하고, 방송에 나오는 여타 연예인보다 예술적인 성향이 약한, 생각의 폭이 좁은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고.
저정도 수위는 동성애자들이 받아들이기에도 이성애자인 이윤석의 개인의견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어느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위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윤석의 발언보다도 공영방송이라는 KBS의 간판 예능프로그램이라는 (프로그램의 이경규가 2010년 대상을 받기도 했고, 요새 나오는 KBS광고에도 남격 합창단 얘기가 맨앞에 나오는 걸 보아하니) 남자의 자격에서 저 자막이 적절했는가다.


동성애자도 사회의 구성원이다. 그들도 공영방송을 보고 수신료를 낸다.
KBS가 공영방송 공영방송 노래를 부르면서 자기들한테 내는 수신료 아까워하지 말라고 광고를 하면서
대표 간판 예능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대놓고 동성애자를 배척하는 자막을 내보내는 것이 옳은 걸까?


대놓고 밝힐 수 있지만 나는 여자고, 이성애자다.
어떤 사람들은 '게이물 좋아하는 여고생or여대생아님?' 쯤의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
나는 여자고, 이성애자고, 게이물 정말 싫어한다.
아 또 여기서 주위에 레즈비언이나 게이있으면 역겨워할거면서 인터넷에서만 인권변호사인양 군다고 시비걸고싶나? 미안한데, 아닌데?

내 친구들 중 한 명은 레즈비언이고, 그애와는 오래된 친군데 친구가 된 지 꽤 지났을 때 나한테 커밍아웃을 했다. "뭐?!진짜?" 하는 놀람의 과정조차 없이 그전과 전혀 변함없는 사이로 여전히 좋은 친구로 지낸다.
내가 대단하고 비범한 사람이라서?
막상 당신들도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동성애자라면, 그걸 혐오한다면서 그들을 내칠 수 있을 것 같나?
동성애자를 싫어하던 사람들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동성애자라면 받아들이고, 그들의 편이 되어줄걸? 적어도 내친구의 주위사람들은 나뿐 아니라 모두 그랬다.
내가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쓰는 데는 내 친구의 존재도 한 몫 하니까."누가 내친구한테 욕해!" 같은 거지.
난 이제 친구 여자친구 얘기도 듣고, 친구 여자친구랑 놀기도 하고... 뭐그렇게 잘 지낸다.

물론 걔가 이쁜 여자보고 좋아할 때나 그럴 때 은근히 짜증?어색함?을 느낄 때도 있다.
나도 인간이니까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본질적인 거부감이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다.


근데 그게 뭐? 내가 때때로 그런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그걸 표출하는 것이 옳은가? 그렇지 않다. 내가 그 순간순간 기분이 별로라고 해서 친구의 정체성 자체에 상처를 줄 순 없는 거다.
자기가 사회 속에 있는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싫어하고 그 사실을 표출할 권리가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누구에게도 남을 단지 그 사람이 어쩔 수 없는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싫어하고, 대놓고 그사람들을 무시하고, 그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권리는 없다.



심정적으로 싫어하는 것과,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달라야 하지 않나?


아무리 우리가 동성애자들이 맘에 안들고 싫다해도 동성애자들은 사회에 다수 존재하고, 그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런 사회에서 어떤 존재에 대해 비정상이라고 규정하고, 혐오하는 것. 그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인가?


소수자,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는 것이 바로 파시즘의 시작이다.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토대가 아닐까.
소수자들을 배척하는 것이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은 폭력이 되버린 것 같은 우리 사회가 조금 무섭다. 




SBS 예능프로 '밤이면 밤마다'에 남격 출연자 중 한 명인 김태원이 출연해 말했지.
"도대체 정상과 정상이 아닌 것의 기준은 뭡니까? 그런 게 존재합니까?" 라고.


국가가 규정한 불법행위인 마약반입을 저지른 범법자인 김성민에 대해서는 다같이 나서서 탄원서를 내주고
불법행위인 마약복용을 해서 두 번이나 수감되었던 김태원에 대해서는 고정멤버로 받아들이는 정도의 열린 모습을 보여주는 남격 제작진이
(이러한 남격 제작진의 기존 태도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심정적으로 평소에 동조하는 부분이 많았었음.)

왜 불법행위도 아닌 동성애에 대해서는 유독 이렇게 무지하고 최소한의 교양조차 없는 자막을 내보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남격의 자막은 평소에도 오글거리고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될 정도도 종종 있었지만
이번 자막은 특히나 공영방송의 자막으로서 적절하지 못했다.
상담을 요청한 저 아이가 실생활에서 '게이'라고 놀림받고 상처받거나, 실제로 동성애자가 되어서 자기가 대놓고 비정상취급받았던 저 상담의 기억을 인생의 상처로 여길 가능성은 차치하고서라도.


 프로그램의 자막은 자막을 쓴 PD(혹은 스탭) 일개 개인의 의견이라기보다, 그 프로그램 전체의 의견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수자를 배척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항상 하는 착각이 있는데,
평생 그들 자신은 소수자가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평생 살면서 자기자신이 동성애자가 될 일은 없을지 몰라도, 당신의 자식이 동성애자가 될 수도 있으며
굳이 동성애자가 아닌 수많은 종류의 소수자들 중 한 편이 될 일이 자신한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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