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되어 드라마를 꽤 봤다. 남는 시간을 보내는 데 드라마만한 게 없다. 내가 여행가있을 때 방영되었던 '골든타임'을 이제서야 보았고, jTBC의 역작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장항준의 작가 입봉작 '드라마의 제왕'과 인기리에 어제 종영한 '학교2013'까지 단기간에 꽤 많은 드라마를 봤다. (본 글에는 위 드라마들의 결말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요즘 드라마' 여러 편을 보면서 느낀 건 언젠가부터 드라마의 엔딩이 굉장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드라마들은 대책없는 해피엔딩이 특징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어두운 분위기의 드라마에는 새드엔딩도 많았지만, 밝은 호흡의 드라마는 주로 해피엔딩이었다. 하지만 요새 드라마들은 다르다. 드라마의 클리셰가 끊임없이 지적을 받고, 시청자들의 놀림감이 되어버린 탓인지. 드라마를 만드는 이들의 고민도 깊어진 모양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트콤 감독 김병욱은 결말로 시청자 엿먹이기가 특기였다. 김병욱 시트콤의 결말은 한결같이 비극적이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대책 없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현재 절망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온 것처럼 절망을 이야기해왔다. 한없이 냉소적인 현실주의자랄까. 심지어 그는 점점 더 절망을 이야기하는 쪽으로 깊어져가고 있다. ㅡ참조: 김병욱 감독 인터뷰 http://talk.imbc.com/news/view.aspx?idx=48087ㅡ 냉소적 현실주의자 김병욱의 결말은 대다수 시청자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곤했다. 드라마에서조차 절망을 이야기하는 현실주의자가 익숙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 외에는 모두들 '드라마는 판타지'라는 드라마의 공식에 충실했다. 하지만, 이제는 김병욱시트콤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드라마들도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드라마의 제왕에서 드라마 제작자인 김명민이 맡은 앤서니 김은 후반에 이르러 눈이 실명되는 병에 걸린다. 미국에서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되고, 그는 운좋게도 새로운 치료법의 시험대상자로 선정된다. 여기까진 기존 드라마의 클리셰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미국에 출국하지 못한다. 자신이 만든 드라마의 마지막을 제대로 끝내야 한다는, 어이없는 사명감도 사명감이지만 '어차피 시험을 받는다해도 내 눈이 완치될 확률은 00% 밖에 안된다.'라는 지나치게 현실적인 이유로. 결국 앤서니는 실명한다.


 20대 남녀의 결혼준비를 다룬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도 처음부터 끝까지 참 현실적인 드라마다. 결혼을 준비하는 연인은 사소한 이유로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모든 일이 장애물이 된다. 우여곡절 끝에 연인은 결혼에 골인하지만 20회 내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혜윤 어머니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잣집인 정훈의 집에서 강남의 아파트를 얻어내주고야 말겠다는 어머니의 욕심은 원래 제시되었던 강북의 아파트조차 얻어내지 못한 채 끝이 난다. '우결수'의 마지막 장면은 결혼에 골인한 연인이 바쁘게 출근을 하고, 욕심을 부리던 혜윤의 어머니(이미숙)가 힘들게 손자를 돌보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혼을 준비하던 혜윤의 언니 혜진 부부도 끝까지 화해의 기미를 보여주면서도 결국 간격을 줄이지 못한 채 이혼한다. 


 골든 타임은 결말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드라마들에 비해 많은 희망을 이야기한 드라마지만 절망을 일부러 피해가지는 않는다. 해운대 세중병원이 추진하던 두 가지 주요한 사업인 보건복지부의 헬기지원도 무산되고, 외상센터 설립 지원도 무산된다. 골든 타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지자'고 이야기하며 비교적 밝은 결말을 보여주지만 드라마 내내 드라마가 보여주는 높은 현실의 벽과, 바꿀 수 없는 의료 체계의 여러 한계들은 충분히 현실 속 절망을 이야기한다.


 절망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어제 인기리에 종영한 학교2013의 결말은 더 큰 절망을 이야기한다. 드라마 내내 아슬아슬했던 문제아 오정호는 여러 주변 이들의 관심으로 이전과 다른 모습을 갖게 되지만 그런 오정호의 앞에는 3학년을 올라가는 것을 막는 더 큰 장애물이 등장한다. 아버지가 아파져 당장 돈을 벌어야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이다. 금전적인 부분을 도와주겠다는 강세찬 선생에게 정호는 묻는다. "선생님이 절 대체 언제까지 도와주실 수 있는데요. 이번 달이요? 다음 달이요? 저 같은 애 또 나타나면 언제나 그렇게 도와주시게요? 전 게다가 어차피 그 돈 갚을 수도 없어요." 문제아가 마음을 잡으면 주변 문제도 덩달아 뚝딱 해결되고, 적성을 찾아 결국 훈훈해지던 기존의 드라마와는 달리, 학교2013은 '종례가 끝나도 정호는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결국,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곧 현실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88만원 세대'의 한숨, 사오정 오륙도의 처진 어깨, 세대에 무관하게 사회 구성원 누구나가 절망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절망으로 물든 마음을 치료해주겠다던 '힐링'담론조차 절망하는 이들에게는 배부른 소리고 기만처럼 느껴진다며, 탐탁지 않아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고 있는 걸 보면 우리는 분명 절망하고 있는 모양이다.

 

 드라마만이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몇 달 전 개봉했던 영화 '피에타'에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높은 권위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기 때문이기도하지만, 그의 이야기가 상을 받은 것부터가 어쩌면 세계적인 '절망'트렌드의 영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김기덕은 절망을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한 도구로서가 아닌 절망 그 자체로 담담히 이야기해온 몇 안 되는 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그동안 많은 대중에게 '왠지 불편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피에타'는 그전 그의 작품세계와 뚜렷이 배치되는 작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많은 대중의 호평을 받았다.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이상 이전만큼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은 현실 속 절망에 익숙해져가는 중이다. 

 

 시사잡지 또한 절망의 최전선에 있다. 어린 시절부터 10년 넘게 읽어온 한겨레21이건만, 대선 이후로 한겨레21을 읽기가 처음으로 힘이 들어 한겨레21을 덮어버렸다. '요새 왜 한겨레21 안보냐'는 아빠의 질문에 저렇게 대답하니, 아빠 또한 동의하셨다. 절망하던 이들이 갈망하던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절망을 조금씩이나마 벗어날 수 있을 거라던 낙관조차 잃어 버렸다. 나조차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인지라, 대선이 끝난 다음 호 한겨레21 전체에 깔린 깊은 절망과 패배의식이 꽤나 불편했다. 드라마나 영화의 절망보다 더 가슴을 직접적으로 후벼파서 그랬던 걸까. 정치적 성향을 떠나, 절망하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어떤 변화이건, 변화가 희망처럼 보이곤 한다. 이명박의 당선도 그런 절망시대의 산물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번엔 오히려 절망은 깊어졌는데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 다들 체념하고 현실은 절망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일까. 희망을 말하는 드라마가 '비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요새 드라마는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