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유투브로 이런 저런 야구영상을 보다가 jTBC에서 올해 wbc 전에 했던 '정수근의 찾아가는 인터뷰'라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정수근'하면 보통 별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겠지만, 나는 그런 사건들이나 그의 현역시절 활약보다도 야구를 좋아하지 않을 때 서세원 쇼에서 봤던 그의 재치있는 입담을 먼저 기억하는 터라 기대를 가지고 보았다.



결과는... 완전 재밌었다. 


대부분의 야구선수들이 후배인지라 반말을 하면서 편하게 대화하는데, 그 모습이 정말 자연스럽고 편해보였고 보통의 리포터들이 하는 인터뷰보다 선수들이 훨씬 편하게 인터뷰에 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수근이 야구선수의 입장을 잘 알기에 야구선수 입장에서 때론 난감할 수 있는 질문도 편하게 잘 물어보고. 한 선수 당 두 편씩 15분 정도 밖에 되지않는 인터뷰임에도 굉장히 알차고 재미있어서 밤새 여러 선수들의 인터뷰를 몰아서 보았다. 



야구를 좋아하는 터라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빼놓지 않고 본다. 우리 팀은 요새 좀 잘 나가는 터라 경기 후에 수훈선수 인터뷰도 자주 있다. 하지만 요새는 수훈선수 인터뷰를 챙겨 보지 않게 된다. 우리 나라 스포츠 방송국들은 보통 수훈선수 인터뷰를 젊고 이쁜 여성 리포터가 하거나, 캐스터와 해설자가 통화하듯이 한다. 캐스터와 해설자가 인터뷰를 할 때도 딱히 재미있게 인터뷰를 잘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젊은 여성 리포터가 인터뷰를 할 때는 정말 최악이다. 구장 인터뷰는 신인급 스포츠 아나운서들이 나가서 더 한 것 같긴 한데, 준비해온 질문지 읽기에 급급한 (가끔은 선수의 대답에 관심도 없어보인다.) 스포츠 아나운서들의 모습에 수훈선수 인터뷰를 보고 있는 내가 다 민망해진다.



야구시청 짬밥을 좀 먹으니, 이제 그 날의 수훈선수 인터뷰를 안보고도 내가 질문지를 작성할 수 있을 것 같다. "0회 타석에 들어섰을 때 홈런을 칠 느낌이 드셨나요?" "홈런을 친 공은 어떻게 노리고 친 건지." "홈런을 쳤을 때의 마음?" "요새 팀 분위기는 어떤가요?" "올해 팀이 가을 야구 할 수 있나요?" 질문이라고는 있는 질문지에 상황에 따라 조금씩 말바꿔서 하는 정도? 정작 수훈선수 인터뷰를 보고 있을 응원팀 팬들이 정말 궁금한 질문을 하는 건 드물다. 선수의 대답에 따라 적절한 후속 질문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고. 물론 그 날 그 경기에 대한 인터뷰인지라 질문이 한정될 수 밖에 없는 건 이해하지만, 그 와중에도 좀 더 재미있는 질문 한 두 개씩을 추가하면서 인터뷰를 좀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스포츠 아나운서고 피디고 그런 노력이 있는지조차 궁금하다. 아니 애초에 그런 노력이 없으니까 스포츠 방송국 4개가 다 비슷한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고, 다 비슷한 야구정보 프로그램을 하는 거겠지. 프로그램을 차별화할 생각은 안하고 반반한 아나운서 얼굴로, 몸매로 쉽게 쉽게 시청률 올릴 생각만 하고.



임찬규 물벼락 사건도 이런 연장선에 있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어제 다저스 경기를 마치고 푸이그가 곤잘레스와 다저스 아나운서에게 파워에이드를 어마무지하게 뿌려대는 걸 보면서 내가 다 시원하고 그 경기를 이긴 선수들의 신나는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는데, 한 편으로는 임찬규 물벼락 사건이 떠올라서 마음 한 구석이 싸했다. 물론 그 사건은 물을 뿌리지 말라는 지시를 무시하고 뿌린 임찬규의 과실이지만, 경기 후 승리의 즐거운 순간에서도 아나운서 눈치보면서 물을 뿌리면 안 되는 한국 방송의 분위기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말로 인터뷰어가 정수근 같은 선수 출신 리포터였어도 경기 후 승리해서 즐거운 맘에 물뿌리는 걸 가지고 그 난리를 쳤을까. 야구 선수 무식에 감전사까지 운운하면서. 시발놈들.



애초에 야구 선수라는 사람들이 연예인들처럼 인터뷰하는 말발 있는 사람들도 아니고 그런 경우엔 인터뷰어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스포츠가 아니라 다른 분야를 봐도 그렇다. 같은 사람을 인터뷰한 거라도 지승호나 김혜리가 한 인터뷰가 다른 기자들이 한 인터뷰보다 재미있고. '설국열차' 관련된 수많은 봉준호 인터뷰를 봐도 봉준호 후배라는 경향신문 기자나 익스트림무비가 한 인터뷰가 그 수많은 인터뷰 중에서도 제일 재미있는 것처럼.     



말빨 좋은 선수출신 수훈선수 인터뷰어를 정해두고 해당 인터뷰어가 인터뷰를 하면 수훈선수 인터뷰가 훨씬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구장 수훈선수 인터뷰 자체가 지금은 짬낮은 애들이 하는 거라는 인식이 좀 있어서 선수 출신이 하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인식이야 바꿔 나가면 되는 거고. 은퇴한 선수들 팬서비스 느낌으로 팬들도 좋고 일자리도 제공해주고 좋지 않나. 



야구장에 여성팬들이 늘고 있다고 하고 실제로 야구장에 가도 체감상 여성 관객이 40퍼센트는 되는 것 같은데 왜 스포츠 방송국들은 야구 경기나 후속 야구정보프로그램의 타겟 시청자를 남자로만 잡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니 시청률 올릴 생각이 있으면 다른 방송국과 차별화하고, 타겟을 넓혀야지. 스포츠 전문 방송국도 어느새 네 개나 되는데, 그 넷은 서로 경쟁할 의지도 없어보인다. 아이러브베이스볼이나 베이스볼투나잇야나 베이스볼S, 베이스볼워너비까지 진행하는 여자 아나운서 얼굴빼고 다른 게 대체 뭔지. (그나마 후발주자인 XTM의 베이스볼워너비가 방청객 시스템도 만들고, 워너비 문자투표도 하면서 노력을 하고 있는데 다른 방송국은 그냥 의지가 없다.) 프로그램 진행이야 여자 아나운서들이 발음도 좋고 진행 전문가들이니 그대로 한다고 쳐도, 수훈선수 인터뷰나 구장 찾아가서 선수들이랑 이야기하고 노는 곁다리 코너까지 걔네가 할 필요는 없잖아. 담벼락 인터뷰니 뭐니 맨날 똑같은 화면 비슷한 내용들 이제 지겹다. 스포츠 방송국 피디들은 경인방송의 '불타는 그라운드'가 왜 성공했는지 생각좀 해봐라.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는 스포츠를 엄청 좋아해서 스포츠 방송을 하게 된 스포츠 덕후들처럼 보이지 않고, 스포츠 프로그램 피디도 마찬가지로 피디가 되고 싶었는데 스포츠 방송국에 입사하게 돼서 그냥 일하는 사람들로만 보인다. 매일 하는 야구정보 프로그램들만 가지고 이런 소리 하는 게 아니다. 얼마 전에 '류현진과 친구들'에 낚인 거 생각나서 또 빡이...친다. 프로그램들을 진정 그 따위로 밖에 못만드나. 물론 제작 환경 상의 한계도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그런 환경 속에서도 더 나은 프로그램을 만드려는 노력들을 좀 했으면 좋겠다. 스포츠 프로그램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없는 건 나뿐인가. 아니 팬 입장에서 스포츠 시장이 얼마나 제대로 된 프로그램도 없는 블루오션인데...팬이 보고싶은 그런 프로그램 하나를 못만들어 주나.   



+)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인터뷰어와 선수 사이에 느껴지는 묘한 권력관계가 불편한 사람은 나뿐일까. 여성 리포터와 선수 사이의 인터뷰는, 말하자면, 섹션 티비 볼 때 김슬기나 황제성 같은 인터뷰어와 톱스타가 인터뷰할 때 느껴지는 권력관계 같은 게 느껴져서 불편하다. 선수 입장에선 '야구도 모르는 애들이 인터뷰하네.' 하는 속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달까. 그에 비해 정수근과의 인터뷰는 그것보다는 '야구 잘했던 야구 선배'와 하는 인터뷰 같이 느껴져서 그런 권력관계가 거의 느껴지지 않고, 보는 사람도 한결 편하다. 인터뷰어는 인터뷰이와 공감대를 가지고 정서적으로 친밀한 사람이 하는 게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여성 아나운서도 그럴 수 있겠지만, 여성 아나운서가 그런 인터뷰어의 역할을 위해 선수들이랑 격의 없이 친하게 지내는 건 한계가 있을테고, 사실상 불가능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