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생각 없이 채널을 돌리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오랜만에 시청하게 되었다. 제주어쿠스틱페스티벌이라는 공개 방송이었다. 장필순이 나왔다. 장필순!!! 하면서 채널을 고정하고 음악을 감상했다. 곧이어 후배 가수랑 무대를 함께 꾸민댄다. 누구지? 설마 제주도 사는 이효리? 아, 아이유가 나왔다.



 짜증이 났다. 아니 무슨 듀엣할 어린 애가 아이유 밖에 없냐? 설상가상으로 음향 사정이 안 좋아서 아이유는 박자도 다 틀린다. 하지만 문제는 박자가 아니다. 그냥 아이유 목소리가 장필순 목소리랑 너무 안 어울린다. 붕붕 뜬다. 생각만 해도 빡치는 <너의 의미>가 떠올랐다. 바로 그 <너의 의미> 때문에 장필순에 아이유가 얹어진 걸 본 순간 나는 짜증이 난 것이다. 



 난 꽤 오래 전부터 산울림의 팬이었다. 씨디는 물론, 엘피도 있다. 김창완의 목소리를 들으면 세상 만사가 차분히 가라앉는 것 같다. 뭐라 형용할 수 없을만큼 좋아하고, 김창완이라는 인간 개인에 대한 호감도 엄청나다. 산울림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단연코 <너의 의미>였다. 


  

 아이유가 <너의 의미>를 리메이크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는 궁금했다. 와 이 좋은 노래를 어떻게 새롭게 불렀을까.


 노래를 듣고 나니 화가 났다. 최악의 <너의 의미>였다.  

아이유는 노래 내내 예쁜 척만 하고, 김창완의 목소리는 그 가운데 어색하게 껴 있다. 아이유가 자기 노래에서 보여줬던 아이유의 장점들은 하나도 드러나지 않고, 그저 예쁜 척 하는 목소리만 남아 있다. 한없이 가볍고, 깊이는 없다. 힐링캠프에서 아이유는 많이 고민하고 청춘의 느낌으로 <너의 의미>를 불렀다고 했는데, 그 느낌은 전혀 와닿지 않는다. 노래를 리메이크할 때는 원곡과 같은 스타일이라면 원곡의 독보적인 느낌을 뛰어 넘거나, 혹은 리메이크하는 뮤지션의 스타일로 노래를 재해석해야 하는데, 아이유의 <너의 의미>는 원곡과 같은 스타일이지만 원곡의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 이하의 곡이 되어버렸다. 


 아이유가 <너의 의미>를 망쳤다. 


 나는 아이유를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날>이나 <너랑 나> 같은 아이유 본래의 곡은 좋아한다. <금요일에 만나요>도 참 좋고. 얼굴도 예쁘고 귀엽다고 생각한다. 근데 아이유가 노래를 잘하고, 가창력이 좋다는 것은 알겠는데 아이유의 목소리가 희소가치를 가진 '분위기 있는' 목소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창력보다 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윤종신 못지 않게 '희소 가치'에 환장하는 사람으로서... 아이유는 그렇진 않다. (태연이 아이유처럼 나왔다면, 아이유랑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


 그런데 분위기 있는 목소리의 끝판왕급인 김창완이나 장필순에 아이유를 끼얹으면...아니 왜 그러세요...


 아이유의 <너의 의미>는 어딜 가든 들려서 피할 수조차 없다. 영화관 광고에 나오는 아이유 <너의 의미>가 끝판왕. 노래가 싫은 건 그렇다 쳐도 화면과 노래도 따로 노는 그 이상한 광고...난 생활 속에서 아이유의 <너의 의미> 테러를 당할 때마다 속으로 욕이 나오는 걸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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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포스팅을 하려고 찾아보니 아이유 본인도 <너의 의미>가 리메이크하기 어렵다는 걸 알았고, 김창완의 느낌을 뛰어넘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는데, "그래서" 김창완의 도움을 받았단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이 리메이크가 잘못됐다는 걸 김창완이 몰랐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의 산울림팬 둘(50대 남성, 20대 여성)이 이 노래에 대해 나와 같은 반응인 걸 보면서 생각은 확신이 되고, 무슨 생각으로 이 노래를 이렇게 내놓는 걸 허락했는지 김창완의 머릿속이 궁금해질 지경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생각이었을까. 이게 정말 좋다고 생각해서 내놓은 거라면, 음악가는 나이가 들수록 능력이 급격히 쇠퇴하기 마련이라는, 언젠가 이석원이 했던 말에 격한 동의를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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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유는 <너의 의미>를 비롯해 리메이크 앨범을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채운 것이라고 말했던데, 뭐 그래도 잘 팔리긴 했겠지만, 음악적 욕심이 있는 '프로'였다면 그래선 안됐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노래보단 잘할 수 있는 노래를 리메이크했어야지. 





없는 가창력 바짝 끌어모아 불렀음에도 아이유의 <너의 의미>보다는 만 배쯤 좋은 

2001년 핑클 리메이크 앨범 수록곡 <늘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