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블로그 유입 키워드가 '자살'로 도배되고 있다

아마도 나랑 같은 입장일, '친구가 자살했다'는 키워드도 많이 보이고  (네이버 상단에 올라간 모양이다) 

시기가 시기이고 내가 사반수를 했기 때문에 삼수 자살, 수능 자살 같은 키워드도 많다(사반수한 저는 잘 살아남아있습니다)



나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강박적으로 대면하려는 속성이 있다

상처를 받으면 없던 일처럼 굴거나, 회피하거나, 잊으려 노력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꺼내놓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상처를 계속 건드려서 덧나고 덧나게 만들고, 심지어 농담의 소재로까지 사용해서

언젠가 상처를 봐도 무감하게 만드는 것 

그게 내가 상처를 극복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경우도 있긴 했지만, 최소한 그럴 때는 나 자신에게라도 솔직해지려 했다

일기에 쓰든, 블로그에 쓰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든



친구가 자살했다는, 이번 일도 난 똑같이 대했다 

친한 친구들과 일대일로 만난 자리에선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내 생각을 더하고

그렇게 이성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게 될수록 괜찮아지는 것 같다



다들 너무도 의외로, Y를 빨리 잊고 있다

물론 그 '다들'엔 나 또한 포함된다

그 애가 죽은 그 주엔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나서 당황스러웠다 

잘 지내다가도, 그 애의 죽음엔 내 책임이 어느 정도 있다는 후회와 죄책감이 밀려오곤 했다

깊이는 각자 다르겠지만 아마도 같은 충격과 상처를 받았을 친구들은 아무도 섣불리 이 얘기를 다시 꺼내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 그리고 Y 모두와 가장 친했던 H와만 이 얘기를 다시 나눴다

다른 친구들과는 그 날 이후로 연락도 한 번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고 있다

다들 어째야할지 모르겠는 건지, 잘 극복하고들 있는건지... 서로를 마주하는 게 상처를 되새김질하는 일이 될까봐 두려운건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얻을 수 있는 힌트는 Y의 SNS는 여전히 휑하고 Y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사람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시간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못 잊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음, H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은 진짜 같았다 



이성적으로 Y를 이해하려 노력하게 된다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것일지 모르겠지만, 내겐 너무도 갑작스러웠던 그 애의 죽음을 납득하고 싶은 것이다

그 애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왜 마지막엔 그런 말을 남겼을까

나는 그 애가 남기고 간 단서들을 자꾸만 짜맞추게 된다

맞는지 아닌지 결국 확인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내 방식대로라도 그 애를 이해하고 싶어서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웹툰 닥터 프로스트 시즌3을 보게됐다 

시즌 1, 2는 못봤는데 3은 무료이길래 그냥 생각없이 보고 있었다

보면서 문득 자꾸만 Y 생각이 났다 



닥터 프로스트는 심리학자인데, 자신에게 상담을 했었던 첫 내담자가 자살하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 일련의 이야기를 아주 학문적이고 이론적인 관점에서 읽고 있으려니 Y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웹툰을 읽다 생각하게 된 것은 Y가 '경계성 인격장애'였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경계성 인격장애가 무엇인지 찾아보면서 Y의 생전 모습이 너무도 많이 겹쳤다



불안정하고 격렬한 대인관계, 충동성, 반복적 자살행동 혹은 자해행동, 만성적 공허함, 부적절하게 화를 내거나 화를 조절하지 못함, 우울증상 등

성인기 초기에 시작되며 10%의 자살률을 보인다는 보고도 있다



이런 증상을 많이 보고 겪었으면서도, 나는 Y가 그냥 자존감이 낮고, 그래서 이상하게 어이없는 순간에 화를 낸다고만 생각했었다



나는 그 애를 어떻게 대했어야 했을까

그냥 피곤하다고 내버려뒀다 화를 내도 왜 화내냐고 관심 한 번 보인 적 없다

나와 같은 친구들의 무관심에 Y도 점점 더 절망해갔겠지-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학창시절을 거치며 여러 곳에서 배우게 되기 때문에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무례를 범하게 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지만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나를 비롯해서 사회가 너무 무지한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정신적 장애를 가졌어도 그 장애를 알아보지조차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아프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혹은 알아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몰라 너무도 서툴게 대한다 

정신적 면역력이 약한 당사자는 그 과정에서 더한 상처를 받게 되고, 점점 더 절망하게 되는 것 같다 



얼마 전 사촌오빠와 술을 마시는데 내가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사촌오빠가 먼저 자신의 친구가 몇 달 전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것도 그렇고 내 블로그만 봐도 '친구가 자살했다'는 글이 꾸준한 유입 키워드인 걸 보면, 자살률이 엄청난 나라답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하고, 그들의 친구들이 괴로워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 모나더라도 이상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나에게 의미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죄책감을 겪지 않을테니까

사람을 싫어하지 말아야지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보아야지



오늘도 그런 생각을 했다 

아직 나 자신조차도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진짜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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