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가 세다
기가 세다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단어로 가족을 설명하자면 저 단어가 적절할 것이다
엄마 아빠 언니 나
하나 같이 자기 주관이 강하고, 상대방에게 부러 져주는 일따윈 없으며, 자신의 감정 표출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작은 싸움도 큰 싸움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이런 집안에서 자란 나는 표면상 서열이 4위인 집안의 막내였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맘놓고 화를 낼 수 없었다
설사 다른 가족이 나에게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내가 어느 정도 이상의 화를 내면 가족들은
"아무리 내가 잘못했어도 이게 이렇게 화낼 일이냐?"
는 비판과 함께, 내가 낸 것보다 더 큰 화를 내기 마련이었고,
때문에 나는 화를 내고 싶어도 웬만해선 화를 낼 수 없었다
엄마는 자주 나에겐 사춘기가 없었다는 말을 하는데
사춘기를 맞아 부모에게 반항을 하고, 이유 없이 혹은 사소한 이유로 화를 내는 보통의 청소년과는 달리
나는 청소년기에도 가족에게 화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가장 공감가지 않는 이야기가
밖에선 착하면서도 만만한 가족에게 화풀이를 한다거나 하는 류의 이야기인데
나에겐 제일 만만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족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화를 낼 수 없어, 화가 나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예전에 친구가
결정적인 순간부터 허락해주지 않는 여자친구를 1년 만나다 발기부전이 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나의 화가 바로 그런 것이다
화가 나도 낼 수 없으니 화가 나지 않는 인간,
나는 그렇게 후천적 평화주의자로 자라났다
사람한텐 화가 거의 안 난다
그대신 상황에 혼자 화나는 경우는 있다
예전엔 자기 검열 탓에 그럴 때도 화를 표출하지 못했었는데
언젠가부터 이럴 땐 화를 내고 살아야 정신이 좀 건강해질 것 같아서
그럴 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예컨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개똥을 밟고 문지방에 발가락을 찧고
화장실에 발을 씻으러 갔는데 미끄러져 넘어진다거나 하는 상황
이럴 땐 크게 썅욕을 하며 심하면 엉엉 울기까지 한다
약간의 개운함을 느끼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사람에게 화를 못내는 대신
불만이 있거나 맘에 안드는 게 있으면
웃으며 비꼬기를 잘한다
약자의 표출방법인 셈이다
아무튼
맨정신에 화를 시원하게 확 내는 사람이 신기하다
욱해서 다 뒤집어버리고 사람들이 자기 눈치 보게 만드는 사람들
가끔 이런 성격이 손해처럼
혹은 머리 아프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아마 못고칠 것이다
사실 이제 그렇게 큰 불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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