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I는 처음엔 그냥 친한 선배였다. 키도 작고 못생겨서 외모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처음 봤을 때 뭔가 남자처럼 느껴졌던 것만은 기억이 난다. 처음엔 다른 선배를 좋아했는데, 그 주제로 연애상담을 하다 I와 친해졌다. I랑 그 선배는 친하지도 않았는데.

고1 크리스마스에 I를 만나 같이 술을 마셨다. I가 어디냐고 연락이 왔는데 마침 I가 지하철을 타고 지나던 곳과 내가 있던 곳이 아주 가까웠다. I를 만나 민증검사를 하지 않는 허름한 고깃집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소주를 마셨다. 고2 주제에 소주가 익숙해보였던, 그래서 어른스러워보였던 I는 소주를 마시며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았다. 부모는 이혼했고, 아버지는 열세살 이후로 본 적이 없다나. 그 얘기를 들은 순간 I가 안돼보였고 그래서 좋아졌던 것 같다. I에겐 틱장애도 있었다. I는 자기 입으로 자기가 틱장애라고 말하곤 했다. 그것도 안돼보인 하나의 포인트였다.

우리는 술을 마시고 나서 내가 원래 좋아했던 선배를 불렀다. 꽤 먼 거리임에도 선배가 왔고, 셋이 술을 몇 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I가 취해서 길에 토를 했다. I와 선배는 집 방향이 같아서 선배는 I를 데려다주기 위해 온 셈이 됐다. 나는 알아서 집에 갔다. I와 선배가 지하철 반대방향으로 내려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날 이후 그 선배와는 끝이었다.

그 때는 좋아하면 잘해주는 것만이 능사라고 느꼈기 때문에 나는 I에게 무척 잘해줬다. 생일도, 수능 100일도 챙겨주고. I도 나한테 받을 수 있는 건 받고 싶었는지 어쨌는지 잘 받아줬다. 나는 I의 친구들과 친해져서 같이 놀고, 학교 앞에 있던 I네 집도 놀러가고, 같이 닭꼬치도, 아이스크림도 먹으러 다녔다. I가 사라지면 I의 친구들이 나에게 전화해서 I를 찾을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고3이었던 I가 상황 때문에 더 이상 나에게 잘해주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건 아니었고, 그걸 I의 수능이 끝난 후에야 깨닫게 돼서 배신감이 들었다. 그래서 킴스클럽 지하에서 같이 돈까스를 먹으면서 넌 나쁜 새끼라고 돌려 말하곤, I가 떠난 후에 혼자 펑펑 울었다. 

I의 수능이 끝나고, 내가 예비 고3으로 학교에 밤 12시까지 남아 공부를 하던 날, I는 할 말이 있다며 잠깐 학교 앞으로 나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근데 마침 부모님이 나를 데리러와서 나는 나가지 못했고, 그 이후로 I와 개인적으로 연락한 적은 없다. 10년이 지난 아직도 그 때 내가 나갔더라면 I가 무슨 말을 했을지 궁금하긴 하다.

졸업하고도 다른 사람들과 다같이 만난 기회가 종종 있었다. 그 때마다 I는 아무렇지 않은 척 나를 대하고, 난 그 모습이 꼴뵈기 싫어 모임에 안나가게 됐다. 어린 날의 그 기억이 꽤나 상처였던 것 같다. 다른 자리에서 I는 나를 일컬어 '추억의 이름'이라고 했다나. 그에겐 내가 어떤 추억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망한 연애의 첫 페이지로 기억되어 있다.


2.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나게 된 L은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선배였다. L이 인턴을 하던 회사에서 주최한 행사에 내가 (언니에게 끌려서) 가게 됐고, 거기서 나와 함께 갔던 언니가 인터뷰를 하게 됐다. L덕에 공짜표를 얻어 행사를 보고 있던 친구는 스크린에 잡힌 (언니 옆) 내 모습을 보고 나에게 연락을 했다.

이런 이유로 친구 덕에 L이 나의 존재를 알게 됐고, 나와 친해지고 싶다며 L은 친구에게 술자리를 주선하라 했다. 친한 선배 한 명 없이 아싸로 지내고 있던 나에게도 괜찮은 제안이라서, 친구와 L과 나는 셋이 함께 족발을 먹게 됐다.

L과는 대화가 잘 통했다. 기자를 준비하던 L은 왕년의 정치 덕후였던 내가, 옛날 정치 얘기까지 다 아는 걸 신기해 했다. 어릴 때 작곡가가 꿈이었던 나는 L이 취미로 작곡한 그럴듯한 노래들이 신기했다. 마침 친구가 교환학생을 가서, L과 내가 둘이서만 이야기를 하는 날들이 길어졌다. 나와 L은 메신저로 새벽까지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러다 둘이 만나 술을 마셨다.

L은 어머니가 병에 걸려 지방의 병원에 누워 계신다 했다. 막장 양아치였던 남동생도 있었다. 아버지와 L이 돈을 벌어야 했다. L은 돈을 벌기 위해 나이트클럽에서까지 일했던 얘기를 해줬다. 나한테만 하는 얘기라 했다. 너무 담담해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또, L이 좋아졌다.

L은 내가 뭔가 성과를 내는 걸 좋아했다. 나만큼 자랑스러워 했다. 내 작품을 가장 대단하게 생각했던 것도 아마 L이었던 것 같다. 내 작품이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때, L은 내가 따로 부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인턴하던 회사에 거짓말을 하고 영화제에 왔다. GV에서도 나에게 질문을 했다. 나도 L의 작품을 좋아했다. L이 만든 팟캐스트도 열심히 듣고, L에게도 열심히 피드백을 해주고. 우리는 좋은 동지였던 것 같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며 서로를 응원하기만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어느 날, 술을 마시고 L과 모텔에 가게 됐는데, 당시 경험이 없던 나는 L과 잘 수가 없었다. 그런 날이 여러 번 반복되자, L과는 사이가 멀어졌다. L은 어느 날 SNS에서 나를 차단했다. 친구를 끊은 것도 아니고 자기 게시물만 못 보게.


3.

김영하의 퀴즈쇼를 읽으면 한 사람이 생각난다. K다. 싸이월드 배경음악 검색으로 음악을 찾아 듣던 때가 있었다.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에 나왔던 생각의 여름의 말이라는 노래를 찾아 들으려다 떴던 미니홈피가 K의 미니홈피였다.

K의 음악취향은 나와 비슷했다. 장르도 시대도 산발적이지만 대부분 겹쳤다. 그래서 K의 미니홈피를 열심히 구경했다. 사진은 없었지만 그가 쓴 글은 있었다. K는 글을 잘 썼다. 나와 생각도 비슷했다. 나처럼 밴드에서 베이스도 쳤다. 여러가지가 겹쳐서 신기했다. 그리고 K는 꽤나 힘든 환경에 놓인 사람이었다. 다이어리를 보니 온갖 알바는 기본이고 나도 안하는 생동성 알바까지 했던 모양이었다. 난 또 얼굴도 모르는 K에게 마음이 갔다. 

K의 미니홈피 주소는 전화번호였다. 몇 날 며칠 K의 미니홈피를 구경하던 나는 K에게 문자 한 통을 남겼다. 그래서 일촌을 맺었고, K와는 2년동안 간헐적으로 방명록만 주고 받았다. 내 미니홈피엔 내 사진들이 있었기에 K는 내 얼굴을 알았지만, 난 그의 얼굴을 모른 채로.

그렇게 2년이 지난 어느 날 K는 나에게 만나자고 했고, 그래서 홍대 입구역 9번 출구에서 만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도, 키도 별로였지만 그 때 난 누가 나왔더라도 그에게 반했을 것이다. K와 나는 그 날 서로의 존재를 안지 2년만에 말을 놨다. 막창을 먹고, K가 아는 이자카야에 갔고, 24시 카페에 가서까지 밤새 이야기를 했다. 그냥 같이 얘기하는 게 너무 즐거웠다. 그땐 그랬다. 마치 운명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K는 자신의 불행을 애정을 사는 데 이용하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K가 다른 사람과는 달랐던 것 같다. 조급한 내 탓에 그 관계도 금방 끝이 났지만.

K의 아버지가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가장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알게된 것은 관계가 끝난 후였다.


그들의 불행을 덮어주고 싶었던 영웅 심리였는지, 그들의 생존력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