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니 박근혜가 탄핵돼있었다

8명 재판관 다 인용

헌법 재판소 기존 판결들 보면 여론을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것 같아서 충분히 예상된 결과였다

탄핵 안될 거라곤 전혀 상상하지 않았다

아마 탄핵 인용 외에 다른 의견을 낸 재판관이 있다면 

재판관 집앞에서 매일 촛불 집회가 일어나고, 재판관 가족들 신상은 다 털리고, 재판관들은 을사오적과 맞먹는 취급을 받게 되지 않았을까...


아무튼 탄핵이 됐고, 친구들 단톡방에도 불이 나있었다

다들 축제 분위기였다

일이 있어서 못갔지만 급번개를 모집하여 치킨을 먹자는 간만의 회동 제안도 있었다

가족들과도 치킨을 시켜 먹었다


근데 난 왠지 흥이 안났다

그 축제에 신나게 동참할 수 없었다

이유를 모르겠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국민들이 위대하단 생각도 들고

박근혜 같은 사람이 대통령에서 내려와서 다행이란 생각도 드는데 

왜일까


2012년 대선 전에 나는

박근혜 반대 서강 동문 서명에 이름을 올렸다

문재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그만큼 박근혜가 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언론 기사로 이름도 많이 팔렸고, 

페이스북의 보수적인 지인들이 서명에 이름 올린 사람들을 욕하는 걸 보며 상처 받기도 했다 

기사에서 내 이름을 본 친구들의 걱정스런 연락을 받기도 했다

너 이런 데 이름 올려도 되냐고...


친구들의 걱정대로 

내가 거기에 이름을 올려서 여지껏 취직을 못한 건진 잘 모르겠지만(아마 아니겠지)

거기 이름 올린 분들 중에 회사에 다니던 분들은 불이익을 받은 분들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전해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 서명에 이름 올린 걸 후회한 적은 없고

박근혜가 탄핵된 오늘에서는 내가 옳았다는 사실에 뿌듯함도 느낀다


나는 그정도로 박근혜가 싫었다

그러니 오늘 나는 사실 누구보다 기뻐야 한다


하지만

그만큼 충분히 알 수 있던 예측된 미래를 무시하고

박근혜의 토론회에서의 말이나 의정 활동 기록 같은 눈에 보이는 지표를 

수많은 국민들이 박근혜의 배경이나 이미지만 보며

팬심으로 무시한 결과가 

오늘이라고 생각하면 참 많이 참담하다 


오늘을 마냥 좋아하기엔

지난 4년동안 너무 많은 것을 잃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박근혜가 당선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나 죽지 않았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퍽 슬퍼진다


개인적으로는 조금은 사소하지만

박근혜가 당선되지 않았더라면

매해 MBC 공채가 열렸을 것이고,

단통법이 생기지 않아 나는 뽐뿌에서 싼값에 쉽게 핸드폰을 살 수 있었을 것이고,

세월호 때 교사였던 고등학교 동창도 죽지 않았을 확률이 높으니,

그 일로 싸워 헤어지게 된 전남친과 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너무 많이 지나가버린 과거는 주워 담을 수 없다



그래서 자꾸 불안한 생각이 든다

물론 이만큼은 아니겠지만

대통령이 문재인으로 바뀐다고 딱히 뭐가 바뀌지도 않을 것 같단 생각

문재인에게서 자꾸만 5년 전 박근혜에게 느꼈던 불안감이 느껴진다

애초에 대통령 한 사람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기를 기대한다는 게 웃긴 거겠지?

그렇게 생각해야겠다